설기야 막걸리 사와라

 

우리 앞마당에는 강돌과 쇄석이 섞여서 좍 깔려 있다. 지지난해에 강돌을 한 차 구해서 깔았는데 그만 내 판단이 못 미쳐 두 차였으면 풍족했을 강돌이 모자라 지금은 앞마당이 미완성이다. 볼 때마다 아쉽다. 순간의 판단이 두고두고 아쉬움을 가져다준다. 문제는 강돌을 채취하는 곳을 이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일 것이다. 돌이 모자라 군데군데 풀들이 기승을 부린다.

종제 집으로 통하는 문 즈음에는 어성초가 해마다 그 돌들 사이에서 잘도 자란다. 지난해까지는 그게 보기 싫어서 없애 버리려고 무던히도 고생을 했다. 뽑아도뽑아도 소용이 없다. 저 밑바닥에 뿌리가 그대로 남아 다시 올라온다. 남에게 뽑아 가라고도 해 보고 내가 뽑기도 하기를 수없이 했다. 그래도 때가 되면 무성하게 솟아 올라온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약초공부를 하다 보니 그 귀찮기만 했던 어성초가 천연항생제의 첫째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만 귀하신 몸으로 둔갑을 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한련초와 함께 섞어서 효소를 담갔다. 그래서 지금 잘 마시고 있다. 그런데 먹기에는 좀 역겨운 맛이다. 약으로 먹는 것이니 감안하고 먹어야 한다.

효소를 담그는 데는 꽃이 막 피기 시작할 때가 가장 적기란다. 바로 지금이다. 단오 바로 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맘을 단단히 다지고 덤볐다.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시작했다. 그것을 손으로 다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12시에 시작한 일이 5시에야 끝이 났다. 땡볕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곁에는 설기를 데려다 놓고 차근차근 뽑아 수레에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날은 덥고 햇빛은 쨍해서 목이 마르다. 그래서 옆에서 심심해하는 설기더러 막걸리 한 병 받아오라고 부탁을 했다.

설기야, 막걸리 한 병만 받아다 주라.”

설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제 할 일만 한다. 집안을 한 바퀴 돌더니 어디서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는 곁에 주저앉아 그거 먹기에 온 정신이 다 팔려 있다. 그러니 내 말이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설기야, 막걸리이........”

해도 소용이 없다. 잠시 있다가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는 뭘 가지고 돌아와 내 곁에 주저앉아 먹기에 여념이 없다. 내 말 따위는 들은 척도 아니 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레에는 비릿한 어성초가 쌓여가고 내 목은 점점 말라 오고, 설기는 막걸리 받아올 생각은 애시당초 없고 그러니 슬그머니 설기가 미워진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제 밥 챙겨 줘, 물도 수시로 가져다 줘, 운동도 시켜 줘, 그런데 그 녀석을 막걸리 한 병 사다 달라는데도 신척도 안 한다.

설기야, 아 참 돈을 안 줘서 그러냐?”

그런가 보다. 제가 돈이 어디 있겠는가? 입만 아플 것 같았지만 계속 사정을 하다 보니 이제는 타령조가 되어 힘도 아니 든다.

설기야아, 막걸리이 하안 벼엉만 받아다 주우라.”

약모밀은 점점 줄어들고 수레 안은 점점 차 간다. 담벼락 차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것까지 다 거두고 나니 수레가 가득이다. 아마도 두 항아리는 될 것 같다.

뒷마당 수도가로 옮겨 씻어서 잘게 잘라 설탕 한 켜, 어성초 한 켜 이렇게 다져가며 담는다. 밀짚모자를 썼다고는 하나 그래도 햇볕이 따갑다. 목은 더 마르다. 설기에게 사정하는 타령조는 이제는 가락이 붙어 흥이 덤으로 얹힌다. 그래도 내 그늘에 들어와 앉아 놀기는 해도 막걸리 받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는 설기다.

씻고 자르고 넣고 설탕 치고, 그러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예상대로 두 항아리 가득이다. 설탕 한 푸대가 다 들어갔다.

마치며 손에 묻은 설탕을 설기에게 선물하고 나니 일이 끝이다. 그 녀석은 깨끗이도 핥아 먹는다. 달기가 설탕이니 그럴 수밖에.

나는 저녁을 차리러 들어오고 설기는 제 집 앞에서 말 그대로,

오뉴월 개팔자다.” 강돌 위에 축 늘어져 있다.

그렇게 내 시골의 하루는 지루한 줄 모르고 설기 덕에 또 지나간다. 설기야 고맙다. 막걸리는 안 받아와도 곁에서 얼쩡거리는 게 어디냐?

출처 : 문례헌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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