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詩話叢林後

 

玄默子 癖於詩 癖者病也 古人有泉石膏肓烟霞痼疾 夫泉石烟霞 豈可為人之膏肓痼疾者 而苟使惑好之 則能為疾若此 況詩之可喜可愛 不翅泉石烟霞 則其膏肓痼疾於人者 不旣大矣乎 玄默子於詩 沈濳淪溺 耽嗜之不已 古今諸詩 旣自飫觀 而熟 復乃於東方詩大家名家 有集行世者 皆包括無餘 凡雜出傳記及傳誦街巷者 搜遺鉤匿 唯恐有失 以至小儒 賤流 緇黃 媍孺 數句一語之可取者 靡不採掇 細加評隲 目之曰 小華詩評 更續以補遺置閨 又復上自麗代 下至今日 裒聚文人韻士譚詩瑣說 輯為詩話叢林四册 余得而徧閱之 掩卷而歎曰 美哉 詩話之作 蔑以加矣 此可與元美巵言 元瑞詩藪 繼武並駕 亦足誇示中華藝苑之功夫 豈小哉 然而玄默子之癖 可謂病矣 苟非膏肓痼疾 其竭力殫心 奚至是耶 余少也 亦有是病 始草漫錄若干語 聞玄默者所著已成 輟不復為 今觀是書 余之漫錄 混收入焉 為之一笑 是亦不可以已者耶 噫 詩者 陶寫性情者也 只可吟咏遣懷而止 何必窮探極索 耗精弊神 而後快哉 余老而覺其病 盡去其癖 而悔其晚也 今玄默者之癖 至老不休 其所撰錄 贍悉弘博 傳後無疑 而第其癖則病也 老子曰 夫惟病病 是以不病 余旣自病其病 而今不病矣 玄默子盍亦病其病 而以求不病也哉 甲午暮春 水村愚拙翁任埅大仲書

 

현묵자는 시를 몹시 좋아하는데 그것은 병이다. 옛사람들에게는 천석고황이니 연하고질이니 하는 것들이 있었다는데 무릇 천석과 연하가 어찌 사람의 고황의 고질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정말 혹할 정도로 좋아한다면 능히 이처럼 고질이 될 수도 있다. 하물며 시를 좋아하고 사랑함이 천석이나 연하에 그치지 않으니 사람에게 고황고질이 되는 것이 이미 크지 않겠는가.

현묵자는 시에 푸욱 빠져들어서 즐겨 마지않는다. 고금의 여러 시들을 이미 스스로 널리 보아서 익숙해졌고, 다시 우리나라 시의 대가와 명가의 문집 중에 유행하는 것은 다 남김없이 포괄하였고, 무릇 전하는 기록에 섞여 나온 것과 거리에서 전하여 외워지는 것들까지 찾아다니면서 끌어모아 오직 빠뜨릴까 저어하였다. 이름없는 선비, 천류, 승려, 부녀자 등의 시구 중 두어 구절이나 한마디 말이라도 취할 것이 있으면 빠뜨리지 않고 채취해서 철하고 자세히 비평을 했다. 이를 지목하여 소화시평이라 하고, 다시 이어서 보유를 두었다. 또 다시 위로는 고려시대부터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이나 시인들의 담시쇄설을 수집해서 편집하여 시화총림 4책을 만들었다.

내가 얻어서 두루 열람해 보고는, 책을 덮고 탄식하기를, 훌륭하도다, 시화의 저작이여! 더할 것이 없도다. 이는 가히 원미 치언이나 원서의 시수와 나란히 달려갈 수 있겠고, 족히 중국 예원의 본령에 과시할 수 있으니 어찌 작다고 하겠는가라 했다.

그러나 현묵자의 시를 좋아하는 버릇은 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말 고황고질이 아니면 그처럼 힘과 마음을 다함이 어찌 이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나도 어릴 때 이런 병이 있어 만록의 약간을 초록하다가 현묵자의 저서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만두고 다시는 하지 않았다. 이제 이 책을 보니 나의 만록도 섞여 들어가 있어서 한바탕 웃었는데,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시란 성정을 갈고 닦아 만들어 보이는 것이기에 다만 읊조려서 회포를 드러내면 그만이지 어찌 끝까지 탐구해서 모두 찾아내 정신을 소모시킨 뒤에라야 시원하겠는가. 내 늙어서야 이 병폐를 깨달아 다 버렸는데 그것이 늦어 후회스럽다.

이제 현묵자의 시를 좋아하는 버릇은 늙어서도 그치지를 않아 그가 편찬한 책은 풍부하고 자세하고 크고 넓어서 후세에 전해질 것이 틀림없다. 다만 그 버릇은 병이다. 노자는 무릇 병이 병인 것을 알면 이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내 이미 스스로 그 병을 병이라고 여기므로 이제는 병이 아니다. 현묵자는 어찌 그 병을 병이라고 여겨서 병이 아니기를 구하지 않는가.

갑오 삼월 어리석고 못난 늙은이 임방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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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默子 少也學詩于鄭東溟 東溟亟稱之 蓋其天分旣高 乂得之大方家 其所涉獵泛濫 出入精粗巨細之間者 自足為一代具眼 又能屛棄世事 惟以文墨自娛 專精攻業 故凡於詩學率迎刃而中窾焉 所著小華詩評 盛行於世 為諸文士所稱賞 金柏谷得臣序之曰 于海自髫齔 學於東溟鄭君平 君平謂余曰 于海律格淸峻 頗有唐韻 又曰 見得高明 善於評點 洪晚洲錫箕序云 鄭東溟君平 文章冠當世 甞稱于海采蓮曲詩曰 酷似盛唐韻語 于海之詩評 宜見重於世 而其傳之遠也 可知矣 噫 此皆可以見玄默者詩學之大略耳 至若詩話叢林一書 則又是就前輩小說中 拈出其詩話 而袞輯者也 語其精 則披沙而揀金焉 語其富則囷積而雲委焉 上自白雲小說 下訖玄湖瑣談 瑣談則余所述者 委瑣俚蕪 無足取者 而猶且見錄 可見其搜羅靡遺也 書旣成 余謂玄默子 此固不刊之書也 世之喜詩者 其將家玩而戶誦 無疑矣 今復以小華詩評 彙合而渾成 為一全書 無亦可乎 玄默子 以其自述嫌 不肯編列 仍要余作跩語 余觀其弁卷語 自道之甚賅 無容更贅別談 獨惜其所謂小華詩評者 單行而獨傳 不得與此書 包括為一 故為之娓娓不巳 蓋欲使世之觀是書者, 更互參攷, 相與表裡, 得以悉其首尾, 而仍揭栢谷晚洲序語之肯綮 以著夫玄默子之深於詩學 有素云爾 歲甲午亻中春下浣 玄湖居士任璟景玉書

 

현묵자는 어려서 정동명에게 시를 배웠는데 동명이 매우 칭찬했다. 그의 천분이 아주 높은 데다가 대가를 얻을 수 있었고 그가 섭렵한 것이 넘쳐나고 세세하고 거칠고 크고 작은 사이를 들고났으므로 스스로 한 시대의 안목을 갖춘 사람이 되기에 충분했다. 또 세상 일을 버리고 오직 문묵만으로 스스로 즐기며 정밀하게 전업할 수 있었으므로 무릇 시학의 끝에 올라 막힘이 없었다. 저술인 소화시평은 세상에 크게 성행해서 여러 문사들이 칭찬해 마지 않았다. 백곡 김득신이 서문에서, 우해는 어려서부터 동명 정군평에게서 배웠는데 군평이 내게 말하기를, 우해는 격률이 맑고도 엄격하여 자못 당시의 운율이 있다. 또 견해가 높도도 밝아 비평을 잘한다고 했다. 만주 홍석기는 서문에서, 동명 정군평은 문장이 당대의 으뜸인데 일찍이 우해의 채련곡시를 칭찬하기를, 성당의 시와 운율과 시어 아주 가깝다고 했다. 우해의 시평이 당연히 세상에서 중시되고 오래도록 전해지리라는 것을 알 만하다. , 이 모든 것이 현묵자 시학의 대략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시화총림이란 한 책에 이르르면 또 전배들의 자질구레한 글 중에서 그 시화를 골라내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 정밀한 것으로 말하면 모래를 헤쳐 금을 가려는 것이고 풍부한 것으로 말하자면 노적가리를 둥그렇게 쌓아 구름이 모인 것 같다. 위로는 백운소설로부터 아래로는 현호쇄담까지 수록하였다. 쇄담은 내가 저술한 것인데 자질구레하고 속되고 거칠어 취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오히려 수록되었으니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수록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이미 완성하자 내가 현묵자에게, 이 책은 정말 간행될 수 없는 책이다. 세상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읽고 외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제 다시 소화시평과 모아 합해서 한 전서가 되면 옳지 않겠는가라 했다. 현묵자는 그것이 스스로의 저술이었기에 그렇게 편집하기를 싫어했다. 그리고는 내게 발어를 요청했다. 내 그의 서문을 보건대 스스로 아주 완벽하게 말을 했으므로 다시 췌언을 달라는 다른 말이 용인될 수가 없었다. 다만 애석한 것은, 말하자면 소화시평만이 단행본으로 달리 전해져서 이 책과 함께 할 수 없는 점이다. 포괄해서 하나가 되면 도도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보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 참고하여 서로 표리가 되게 하여 처음과 끝을 자세히 다 얻었으면 한다. 그래서 백곡과 만주의 서문의 핵심을 실어 이 책으로써 현묵자가 시학에 깊은 것은 그 유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갑오년 이월 하순에 현호거사 임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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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文章雖曰小技 業之最精也者 蓋非麤心大膽之所可易言 而世之言唐者 斥宋曰 卑陋不足學也 學宋者斥唐曰 萎弱不必學也 茲皆偏僻之論也 唐之衰也 豈無俚譜 宋之盛也 豈無雅音 只在吾自得之妙而已 今世啁啾之輩 自謂超宋越唐 詩尚毛詩選詩 文尙虞書秦漢 而究其所詣 則無音響 無意味 可笑不自量也 芝峯類說云 人有身居堂下 眼在管中 而妄論古人優劣 或聞人所言 而定其是非 如此者 非有眞知實得者也 至其所自為詩若文 則不惟不及古人 有若小兒之學語 擧子之常談而已 自識者見之 豈不憐且笑哉 芝峯此言 必有所激而發 今並錄此 以為妄論者之戒

 

글쓰는 일을 잔재주라고들 하지만, 일 중에서도 가장 정밀한 것이다. 마음이 거칠고 대담한 사람이 쉽게 말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당시를 말하는 이는 송시를 배척하며, 비루해서 배울 것이 못된다라고 한다. 송시를 배우는 이는 당시를 배척하며, 위약해서 배울 것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편벽된 논리다. 당시가 쇠하면 어찌 속된 글이 없을 것이며, 송시가 성할 때 어찌 아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만 내 스스로 그 묘미를 체득하는 데 있을 뿐이다. 요즈음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무리들은 스스로 송시를 뛰어넘고 당시를 뛰어넘어 시는 시경과 문선을 숭상하고 글은 수서진한을 숭상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 조예를 따지고 보면 아무런 음률도 뜻도 없으니 자신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가소롭다.

지봉유설에, 사람들이 몸은 마루 밑에 있고 눈은 대롱 속에 있으면서 망령되이 옛사람들의 우열을 논한다. 어떤 이는 남의 말을 듣고서는 옳고 그름을 정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참으로 실체를 얻어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지은 시와 문에 이르러서는 옛사람들에 오히려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과 같고 과거를 보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일 뿐이다. 아는 이들이 그것을 보면 어찌 불쌍하다고 웃지 않겠는가라 했다. 지봉의 이 말은 틀림없이 마음에 격발한 것이 있어서 한 말일 것이다. 이제 이 말을 함께 수록해서 망령되이 논하는 이들의 경계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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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凡纂書者 必攷據精實 勿之有疎 然後可以傳信 而朴汝厚泰淳 尹廣州也 刊行許筠所纂國朝詩刪 其中酒泉縣七律 乃申企齋光漢詩 而係於奇服齋遵 蓋詩刪元本 服齋詩 次在企齋之上 想汝厚誤錄企齋名於其第二作 故此詩自爾上係服齋之作矣 企齋此詩 旣昭載於本集 且釘板於縣壁 而其謬如此 且七絕中 題僧軸詩 疎雲山口草萋萋 夜逐香烟到水西 醉後高歌答明月 江花落盡子規啼之詩 首係於權石洲 而考之石洲集中 而無有 余家有詩刪舊本 此乃李嶸詩 而次在石洲之上 此亦汝厚誤漏李嶸名 故通係於石洲 疎率甚矣 且其所稱栗谷初出山詩 乃許筠贋作 自註曰 本集不載 似為三四諱之 其意不難知 而汝厚刊正 而不刪此詩 兼錄其註 到有訾謗 自朝家竟命毀板 纂書者宜戒之

 

무릇 책을 편찬하는 사람은 반드시 근거를 살펴 실제에 정확하고 소홀함이 없어야 전하는 것을 믿을 수가 있다. 여후 박태순이 광주 부윤이었을 때 허균의 편찬한 국조시산을 간행한 적이 있다. 그중 주천형칠율은 기재 신광한의 시인데 복재 기준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시산 원본에 복재의 시가 기재의 시 위에 있어서, 생각컨대 여후가 기재의 이름을 그 두 번째 작품에다 잘못 기록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가 복재의 작품으로 위에 그냥 붙어버린 것 같다. 기재의 이 시는 이미 분명히 본집에 실려 있고 또 현의 벽에 못을 박아 걸어놓았는데도 그 잘못이 이와 같다. 또 칠언절구의 제승축시.

 

성긴 구름은 산어귀에 끼었고 풀은 우거졌는데

밤에 향그런 연기 따라 강의 서쪽에 이르렀네.

취하여 소리 높이 노래하니 밝은 달이 대답하고

강가의 꽃은 다 이우는데 두견이 울어대네.

 

는 머리에 권석주의 작품으로 되어 있으나 석주집을 상고해 보니 있지 않았다. 내 집에 시산 구본이 있는데 이는 이영의 시로 석주의 시 다음에 있어서 이 역시 여후가 이영의 이름을 누락시켰기 때문에 석주의 시에 속하게 되었으니 소략하고도 경솔하기 그지없다. 또 율곡의 시라고 실린 초출산시는 곧 허균의 위작인데 스스로 주를 달아, 본집에는 싣지 않은 것은 삼구와 사구를 꺼려서 그런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의도를 쉽게 알 수 있다. 여후가 바로잡아 간행하면서 이 시를 빼지 않고 그 주까지를 같이 수록해 놓았다. 그래서 비방을 당했고 절로 조정에서 끝내 절판하도록 명했다. 책을 편찬하는 이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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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詩家最忌剽竊 古人曰 文章當自出機杼 成一家風骨 何能共人生活耶 此言甚善 而先輩亦多犯之 李容齋詩 一身千里外 殘夢五更頭 用唐顧況詩 一家千里外 百舌五更頭之句 林石川 江月圓還缺 庭梅落乂開 用金克己 多情塞月圓還缺 少格山花落乂開之句 蔡湖洲 荒林秋盡雨 窮店夜深燈 用唐司空圖詩 曲塘秋盡雨 方渚夜深船之句 三人皆沿襲前人詩 蔡又有贈僧詩云 法門有三乘 最下是輪回 去從何處去 來從何處來 盡用佛家語也 金河西麟厚詩 載續靑邱風雅 其詩云 來從何處來 去從何處去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許 蔡下句 全用金上句 此李相國所謂拙盜易擒體歟 金息菴斯百 甞以接慰官 至東萊府 登海雲臺 俯瞰滄溟浩浩漫漫 一碧萬里 賦詩一絕曰 錦帳出季倫 古人尙云侈 誰家碧綾羅 鋪盡千萬里 蓋出於麗朝崔拙翁瀣 咏雨荷詩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如何碧玉斗 竟日量明珠 金乂於滄海中 見時有微波獨湧雪色亂洒 咏一絕曰 聞道海觀音 高拱蓮花座 怳有白玉童 擎出雙雙朶 蓋出於宋楊大年 咏白芙蓉詩 昨夜三更裡 姮娥墮玉簪 馮夷不敢受 捧出碧波心 皆模倣古作 終無痕跡 眞得奪胎之法 為詩者 宜可戒可法

 

시인은 표절을 가장 꺼린다. 옛 사람들은, 글은 응당 자기 틀에서 나와서 일가의 풍골을 이루어야 한다. 어찌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라 했다. 이 말은 아주 옳다. 그러나 선배들도 이를 범한 이가 많다. 이용재 시.

 

이 몸은 천 리 밖에 있는데

오경 벽두에 새벽꿈 꾸네.

 

는 당나라 고황의 시,

 

집은 천 리 밖

새벽에 떼까치 우네.

 

라는 시를 쓴 것이다. 임석천의,

 

강에 떴던 달 둥글었다 다시 이그러지고

뜨락의 매화는 이울었다가는 또 피네.

 

라는 시는 김극기의 다음 구절을 쓴 것이다.

 

다정한 변방의 달은 둥글었다가 이지러지고

소격산의 꽃은 졌다가 또 피네.

 

채호주의,

 

거친 숲에 늦가을 비 그치고

시골 주막 늦은 밤에도 등불 켜놓았네.

 

라는 구절은 당나라 사공도의 시,

 

굽이진 못에 늦가울 비 그치고

네모난 깊은 밤에 배 띄우네.

 

라는 구절을 쓴 것이다. 이 세 사람 다 앞 사람들의 시를 답습한 것이다. 채의 증승시,

 

법문에는 삼승이 있나니

가장 낮은 것이 윤회로다.

가기는 어디로 가며

오기는 어디서 오는가.

 

는 불가의 말을 쓴 것이다. 하서 김인후의 속청구풍아에 실려 있는 시,

 

오는 것은 어느 곳에서 오고

가는 것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오감이 정해진 자취가 없는데

유유히 한평생 살아가려네.

 

에서 채는 아래 구절을, 김은 윗 구절을 그대로 쓴 것이다. 이것이 이상국이 말한 졸도이금체라는 것이 아닌가. 선비 김식암이 일찍이 접위관으로서 동래부에 이르러 해운대 올라 푸른 바다를 굽어보니 넓고넓어 푸른 바다가 만 리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는 절구 한 수를 지었다.

 

비단 장막은 계륜에게서 나왔다지만

옛사람들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했네.

누가 푸른 비단을

천만 리에 펼쳐 놓았나.

 

아마도 고려조 졸옹 최해의 영우하시에서 나왔을 것이다.

 

후추 팔백 섬을 갈무리했다가

그 어리석음은 천 년이나 조롱당했네.

어떤 푸른 옥국자 같은 것으로

종일 맑은 구슬을 헤아리는가.

 

김이 또 푸른 바다 가운데서 잔잔한 물결 속에서 유독 흰색이 솟아올라 어지럽게 뿌리는 것을 보고는 절구 한 수를 지었다.

 

듣자 하니 바다의 관음보살이

높이 연화대를 받들었다 하대.

하물며 백옥동이 있어

쌍쌍이 꽃송이를 받들고 오네.

 

아마도 송나라 양대년의 영백부용에서 나왔을 것이다.

 

어젯밤 삼경녘에

항아가 옥비녀를 떨어뜨렸는데

풍이가 감이 받지 못하여

받들어 푸른 파도 가운데 두었네.

 

모두 옛 작품을 모방한 것인데도 끝내 흔적이 없어 참으로 환골탈태의 묘법을 체득한 것이니 시를 쓰는 이들이 마땅히 경계하고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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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象村晴窓軟談云 趙瑗妾李氏詩一句 江涵鷗夢濶 天入鴈愁長 古今詩人 未有及此者 余見唐人項斯詩曰 水涵萍勢遠 天入鴈愁長 李氏此句 全出於此 象村豈不見項斯詩耶 余見許氏蘭雪送其兄荷谷謫甲山詩五言律頸聯 河水平秋岸 關雲斂夕陽 卽是唐人全句 無一字異同 此可謂活剝生吞者也

 

상촌의 청창연담에서, 조원의 첩 이씨의 한 구절.

 

강은 갈매기의 꿈을 안아 널따랗고

하늘은 기러기의 시름을 들여 멀기도 하구나.

 

를 고금의 시인들이 이에 미칠 이가 없다고 했다. 내 당나라 사람 항사의 시를 보니,

 

물에는 부평초가 아득히도 떠 있고

하늘에는 기러기의 시름을 들여 멀기도 하구나.

 

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씨의 이 구절은 모두 여기에 나온 것이다. 상촌이 어찌 항사의 시를 보지 못했겠는가? 내 허난설헌의, 그녀의 오빠 하곡이 갑산으로 유배가는 것을 오언율시 경련을 보니,

 

강물은 가을 언덕에 잔잔하고

변방 구름은 석양에 걷히려 하는도다.

 

라는 이 구절은 당나라 사람의 시 그대로 단 한 자도 다른 것이 없이 같다. 이것을 산 채로 벗겨서 생으로 삼킨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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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南壺谷龍翼所選箕雅 載余族會祖慕堂 挽栗谷詩 七言律 而其頷聯曰 洛下政逢司馬日 蜀中新喪孔明時 改孔明二字 為臥龍 豈壺谷誤聞而然耶 司馬臥龍為巧對 故抑以其私見改之耶 不聞於其子孫 而改下則謬矣 慕堂亦豈不知司馬臥龍之為巧對 而乃曰 孔明者 非但取其響韻 臥龍則隱時之稱 旣為漢相以後 不當用此號也 余堂叔泛翁 亦常曰 儷語云 孔明不死 雖復漢而何難 召虎再生 此興周之有望 龍虎之對 不為不巧 而儷中以為不對 王父不曰臥龍 而曰孔明 亦用此也 此豈非明證乎 且金柏谷得臣 龍山一絕 起句曰 古木寒雲裡 秋山白雨邊 壺谷選入此詩於箕雅 而以寒為黃者 亦何耶 豈以黃與白色對而然耶 余與柏谷最相善 故慣聞此詩 其所著詩話及本集中 載此詩 而亦曰寒雲 然則箕雅之誤錄 可知也

 

호곡 남용익 가려뽑은 기아에 실려 있는 내 족증조부 모당의 칠언율시 율곡 만시의 함련.

 

낙양에서 바로 사마를 만난 날

촉중에서 막 공명을 잃은 때로다.

 

를 고쳐 공명 두 자를 와룡으로 했으니 어찌 호곡이 잘못 듣고 그런 것인가? 사마와 와룡을 교묘한 대구를 위해서 일부러 그가 그렇게 바꿔본 것인가? 그 자손에게서도 듣지를 못했으니 아래 글자를 고친 것은 잘못이다. 모당 역시 사마와 와룡이 교묘한 대가 된다는 것을 어찌 몰랐을 것인가? 이는 곧 공명을 쓴 것은 다만 그 향운만을 취한 것이 아니다. 와룡은 은거했을 때의 칭호니 이미 한의 재상이 된 후에 이 호를 쓰는 것이 부당하기 때문이다. 내 당숙 범옹도 늘, 대우에서는 공명이 죽지 않았으면 비록 한을 다시 일으키는 일도 어찌 어려웠겠는가? 소호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는 주를 일으킬 희망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용과 호의 대구가 공교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대우문 중에서는 대가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와룡이라 하지 않고 공명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어찌 명확한 증거가 아니겠느냐라 하였다. 또 백곡 김득신의 용산이라는 절구의 기구.

 

고목은 차가운 구름 속에 있고

가을 산은 부연 비 저편에 있네.

 

호곡은 이 시를 기아에서 뽑아 넣었는데 한을 황으로 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어찌 황색과 백색이 대가 된다고 여겨서 그런 것인가? 나는 백곡와 아주 잘 지냈으므로 이 시를 귀에 익도록 들었다. 그가 지은 시화와 본집 중에도 이 시가 실려 있다. 그러나 역시 한운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즉 기아가 잘못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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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自古選詩者 非博識宏量 固難乎取舍精覈 近世 南壺谷龍翼 雜摭我東風雅 詩刪 詩話等書 且取近代諸詩 輯成一帙 名曰箕雅 自撰其序 歷論前輩所選之失 蓋自許其所選之精也 然以余觀之 取舍失於名實 好惡偏於親踈 未免為薰蕕錯雜 至於作者名姓 亦多錯錄 其中所謂閨秀趙瑗妾李氏 春日有懷詩 卽蘭雪軒許氏詩也 載於本集 其詩云 章臺迢遞斷膓人 雙鯉得書漢水濱 黃鳥曉啼愁裡雨 綠楊啨裊望中春 瑤階寂歷生春草 寳瑟涼閉素塵 誰念木蘭舟上客 白蘋花滿廣陵津 金萬英咏西瓜詩 卽玉壺子鄭星卿 兒時所作 亦載於本集 詩云 色似靑天初霽後 形如太極未分前 劈破丹心香露滴 相如從此懶尋泉 且權鞈殷山詩 首陽亦周土 薇蕨累淸風 若解殷山在 應先箕子東 此詩 不載於石洲五兄弟聯珠錄 一家諸孫 亦莫有知者 壺谷從何得之 而選入於此耶

 

예부터 시를 가려뽑는 이가 널리 알고 아량이 넓지 않으면 참으로 취사선택에 깊이 통하기 어렵다. 호곡 남용익이 아동풍아 시산 시화 등의 책에서 주워모으고, 또 근대의 여러 시에서 취해서 한 질로 엮어 이루어 이름을 기아라고 했다. 스스로 그 책의 서문을 쓰고 선배들이 가려뽑은 잘못을 낱낱이 논하였는데 아마 스스로 자신이 가려뽑은 것이 정확하다고 자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내 보건대는 취사가 명성과 실질을 잃어버렸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친분에 치우쳐 훈현이 서로 섞여 버리는 것을 면하지 못했고, 작자의 성명에 이르러서도 잘못 기록된 것이 많다. 그중 조원의 첩 이씨의 춘일유회시라 한 것은 난설헌 허씨의 시다. 본집에 실려 있는 그 시.

 

장대는 아득히도 멀어 남의 애를 끊는데

잉어 한 쌍이 한수 가에서 글을 전해주네.

꾀꼬리 새벽에 울고 시름 속에 비는 내리는데

갠 하늘에 푸른 버들가지 한들거리니 임 기다리는 봄이로세.

옥 같은 섬돌에 쓸쓸히 봄풀은 돋아나고

보배로운 거문고 처량히도 뽀얀 먼지로 뒤덮였네.

눌 생각는고, 놀잇배에 탄 나그네여.

흰 마름꽃 흐드러진 광릉 나루에서.

 

김만영이 읊조린 영서과는 곧 옥호자 정성경이 아이 때 지은 작품이다. 역시 본집에 실려 있는데 그 시.

 

색깔은 비 갠 뒤의 푸른 하는 같고

모양은 태극이 나뉘기 전과 같네.

붉은 속을 쪼개니 향그런 이슬 방울지니

상여는 이제부터 샘 찾기 게을러지겠네.

 

또 권협의 은산시.

 

수양산도 주나라 땅이거니

고사리가 맑은 기풍을 더럽히도다.

만약 은산이 예 있는 줄 알았던들

기자보다 먼저 동으로 왔을 것을.

 

이 시는 석주오형제연주록에 실려 있지 않고 그 집안의 자손 누구도 아는 이가 없다. 호곡이 어디서 그것을 얻어서 뽑아넣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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