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크리스마스. 10시 반 당숙모를 모시고는 미사에 다녀와서 하루 종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는 9시. 커텐도 내리고 보던 티비도 끄고 막 내 방에 들어가려는데 따르릉이 울린다. 반가운 소식. 회장님께서 내일은 출사를 가자신다. 가까운 어디 호수를 수소문하시겠단다. 나야 不敢請이언정固所願이라. 만약 곁에 내 안 식구라도 있어서 날 봤다면 또 그랬을 거다.
"그냥 얼굴에서 빛이 나고 눈이 반짝반짝한다니까요."
황고에게 5시 반까지 우리집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고는, 대충 짐을 꾸리고 일기예보를 보니 중부지방과 서해안에 밤에 눈이 온단다. 걱정반, 기대반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3시 반이다. 마치 내가 옛날 어릴 때 소풍간다고 잠을 설치는 식 바로 그 꼴이 아닌가!
5시 반까지 온다던 황고는 소식이 없고, 6시가 다 되어 가는데 회장님께서 따르릉. 곧 도착하신단다. 황고에게 전화하니 집이란다. 금방 출발한다는 걸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성 IC 못미쳐 있는 주유소에서 동승. 그리고는 나주 삼한지로 출발.
새벽의 깜깜한 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서 찾아가니 생소하기 그지없다. 그곳에는 사암지는 있어도 삼한지는 없다. 어둠 속에서 헤매기를 한 20여 분 하고 나니 암담하다. 사람이 없어서 물을 곳도 마땅히 없다. 갈대가 무성한 둑방길을 돌고 마을 길을 돌아도 결국은 사암지다. 회장님 기지를 발휘하시어 무슨 촬영장 앞에 차를 대고는 약도를 살피신다. 그 사이 황고는 곁에 있는 팻말에서 그곳 어느 음식점 전화번호를 보고는 그곳에 전화해서 비로소 갈 곳을 찾는다.
아까 갔던 길로 다시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나오고 찾던 사행천이 눈에 들어오고 산위의 촬영지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찾던 바로 그곳. 날은 밝아오고, 저 멀리 산 위에 부연 햇살 기운이 보이기는 한데 구름이 끼어 일출은 기대난이지 싶다.
사행천 뒤로 부연 하늘에 해가 솟아오르려 하나 보다
蛇行川
질펀한 논밭이여 그 젖줄 한 줄기가
새벽 기운 가득 안고 흘러서 가노라니
삼한의 어린 넋들아 이제서야 오르나
물안개가 피어나서 사행천을 휘감아 저 멀리 촬영장의 누각까지 올라오는 날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섰다. 아마면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할까나?
찰칵을 거두어들고는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돌아서 모퉁이 안고 도니 그곳에 정자 하나 우뚝도 솟아 있다.
그 앞에 서서 황고가 하는 말.
"저 예쁘게 찍어 주실 거지요?"
그래서 한 컷 찰칵.
모두들 산길을 오르는 모습이 가관이다. 손들이 없지 않은가! 춥다 춥다는 얘기다.
그래도 비탈길을, 통로라고 아마도 시에서 나무들을 잘라 길을 터 주었던 모양이다. 여기 저기 잘린 소나무가 널려 있다. 이 소나무들은 나이들은 많은 것도 같은데 하나같이 작달막하다. 아마도 바람탓에 자라기를 더디 하나 보다. 황고와 회장님 찰칵에 여념이 없으시다. 아마도 황고는 멀리 있는 누각과 산을 잡을 것이고, 활빈당님은 찰칵하는 우리를 몰래 잡으시는 모습이리라. 나무에 숨으신(?)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저렇게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기대면 떨림을 줄일 수 있다. 그게 바로 삼각대 대신 찰칵하는 방법이다.
산 위는 전망이 참 좋다. 차가운 공기면서 상쾌하기만 하다. 내려오는 길에는 겨울 산이라서 오로지 청미래열매만이 여기저기 빨갛다.
삼한지는 연못이나 호수가 아니다. 땅이름이다. 삼한지라는 호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걸 호수라고 알고 간 우리의 선입견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걸 연못이라고 한참을 그 어둠 속에서 찾아 헤맸으니 말이다.
날이 훤이 밝아서 돌아 나오는 길에서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햇살이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받으시는 우리 회장님 말씀.
"누가 언제 저 구름을 찢어 놨나 봐요!"
그래서 빛이 샌다는 이야기다. 달리는 찻속에서 창도 안 내린 채 찰칵한 사진이니 양해하시기 바란다.
인제 귀로. 한참을 가다가 회장님 핸들을 잡으신 이후로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하신다. 차 방향이 이상하다는 거다.
'장성 가는 길 맞는데요?" 했더니 회장님 왈,
"아니, 여기까지 와서 기냥 간다고요? 영산포 강을 따라가며 여기저기 널린 모래섬들이라도 구경하고 가야지요."다. 그런데 이정표가 이상하다. 자꾸 영암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는 거다. 알고 보니 나주에서 영암 가는 길과 광주 장성 가는 길이 갈라지게 되어 있었다.
영산강 변에 다다르니 그곳에 친절하게도 찰칵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강을 내려다보며 감탄하고 있다가 눈을 드니, 저 멀리 산이, 하늘이 다가온다.
물오리
강물 새 노니다가 잠깐 새 날아올라
맵시도 우아할사 사뿐히 내려앉아
강물에 원을 그리는 그 솜씨야 물오리
경치에 취해 있는 사이 우리 회장님 찰칵에 여념이 없으시다. 하필이면 그곳에 갇혀 있으실까? 멀리 파랗게 보이는 것이 유채다. 가을에 심어서 겨울을 나고 나면 이른 봄에 노랗게 꽃을 피워 아마도 강변을 장관으로 바꾸어 놓으리라.
그제서야 배가 소식을 보내왔나 보다. 회장님 왈,
"오새 곰이 비쌉니까?"
내가 무슨 말인지를 몰라 뻥하니, 빙그레 웃으신다. 곰탕 한 그릇 하자시는 말씀이시다. 내가,
"아점으로 하시지요." 하니, 부리나케 먹을 것을 찾으신다. 빵도 드시고, 커피도 드시고, 과자도 드신다. 이따 아점 맛이 없을 거라 해도 막구가내시다. 내 기억에 회장님은 평소에 아침은 거르시고 점심으로 떼우셨는데, 식습관을 바꾸셨나?
평림댐 아래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상상하고 왔더니 아니 이게 웬 말? 바빠서 안 된단다. 두부 만드시기에 여념이 없으시댄다.
"아뿔사! 평소에는 미리 전화도 잘 하고 오더니만 오늘은 그냥 왔더니 이렇다."
황고 왈,
"그러게요."
배는 고프지 다음 들를 곳이 '요월정'이니 동화에서 해결해야 했다. 추어탕. 배가 고프니 맛이 좋을 수밖에. 한 그릇씩을 뚝딱 해치우고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출발.
한 번 와 봤다고 눈에 익숙하다. 솔숲 사이에서 요월정이 우리를 반긴다. 머리에는 눈까지 아직 얹고 있다. 그 아래 그나마 남아 있는 강물과 절벽이다. 朝鮮第一黃龍里라는 고사가 이제는 무색하다. 강물이 없고 하늘과 숲만 있으니 격이 떨어지고 말았다. 거기다가 인공이 가해져서 볼상 사나와지고 말았다. 그곳에 송덕비가 웬 말인가! 차라리 그대로 두고 훼손이나 말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어쩔 것인가! 체념하고 왼쪽으로 돌계단을 밟으며 오르니 이런 소나무 갈비가 쌓인 오솔길도 나온다. 그나마 감지덕지.
그 길을 돌아드니 반가운 요월정이 눈앞에 버티고 섰다. 단청도 산뜻하다. 달을 부르는 정자라! 얼마나 달맞이가 기막혔으면 저런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요월정이라, 요월정이라!
앞마당에 올라서니 잘 단장해 놓은 무덤과 비와 문무백관상이 무성한 소나무숲 사이에 자리잡고 앉았다.
소나무 굵은 몸매 사이로 저 멀리 산들이 웅자를 뽐낸다.
그곳을 관리하는 분이 오늘은 출타 중이신가 보다. 다 잠겨 있어 차 한 잔 못 얻어 마시고 돌아나오는 길이 어지럽다. 시멘트로 범벅이 되어 있는 길.
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지나친 정비가 오히려 본래 모습을 손상시키는 일이 다반사니 이를 어쩔 것인가! 그들은 다 잘 한다고 하는 일일 터인데, 한번 훼손이 되어 버리면 영영 복구는 불가능. 신중에 신중, 고증에 고증을. 그것이 우리 후손이 할일이리라.
내황마을에서 황고는 내리고, 비끼촌에 수국도 내리고, 나는 구산마을에서 내리고, 회장님은 또 북하로. 오늘도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감사. 늘 건강하고 행복 속에 편안히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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