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데 따르릉이 울린다.

"네에....."

"접니다."

"아, 네에... 사진 고맙습니다."

"지금 뭐 하세요? 사진 찍으러 안 가시게요?"

"전 어제 찍어서 찍을 꽃이 없는데요?"

"아니 그게 아니구요. 폼폼사 출사요."

"그거 문화원 이사 때문에 안 간댔는데요?"

"지금 아홉 분이 와 계십니다. 얼른 오세요."

"예,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준비해서 출발하지요."

 

부랴부랴 성당에 차를 대고 가니 미안스럽게도 아홉 분이서 차에 타고 나 하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참 미안하고 면목없다. 내가 잘못 안 거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가는 폼폼사 출사와 사진반 출사를 혼동한 거다. 거기다 나는 정식 회원이 아닌 까닭에 문자도 못 받은 거다. 그러니 천연덕스럽게 집에 앉아 있을 수밖에.

 

어쨌든 차 두 대. 열 사람이 출발. 나는 행선지가 어딘지도 모른다. 그냥 따라나선 거다. 장성아이시를 지나 남행. 창평이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다 보니 구불구불 진짜 촌길로 들어선다. 그게 아마도 지름길인 모양이다. 이때까지도 나는 목적지를 모른다. 도착해서 보니 鳴玉軒苑林이다. 호수 가운데 배롱나무 한 그루가 동그랗게 자리잡고 그 뒷쪽으로 온통 배롱나무숲이다. 오른쪽 길에는 커다란 적송 두 그루가 길 안내를 맡고 있다. 아쉬운 건 그 적송 중간에 전신주가 떡 버티고 서서 경관을 그만 망쳐버리고 만 거다.

 

우리 일행은 제각기 찰칵에 여념이 없다. 鳴玉軒苑林이라! 苑林은 외부와 단절하는 담이 없는 숲이란다. 담이 있으면 園林.

 

배롱나무 연못을 앞에 두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 아마도 집을 지은 이가 배산임수를 머리에 두고 못을 팠으리라. 인공으로 명당을 만들었다는 뜻이리라.

 

배롱나무숲 사이로 처마가 삐죽이 보일락말락이다. 이곳에서 선비들이 공부를 했단다. 우암을 들먹이는 걸 보니 아마도 노론소론이렷다. 조선조 300년을 걸쳐 권력을 휘두르며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일제에 빌붙어 살았던 그 알량한 선비정신! 주자에서 벗어나면 斯文亂賊이라 했던가? 이처럼 맑은 정기 속에서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괜한 후손의 한탄이다.

 

명옥헌 앞에 이르니 우람한 비가 하나 내 앞을 가로막는다. 이 비만큼 업적(?)을 남기긴 했을까?

 

명곡 오희도의 유적비

나는 어디를 가면 비문을 꽤는 잘도 읽는다. 한문비석도 끙끙대며 읽으려 덤빈다. 그런데 왤까? 이 비석은 국한문혼용인데도 읽을 생각조차 않고 말았다. 그들이 한 행적을 보면 경치가 아깝다는 말이 과할까? 보나마나 좋은 내용만 늘어놓았을 것 아닌가? 내 마음이 비뚤어져설까? 조선조 유학자들이 한 짓거리(?)들을 보면 울화가 나도 모르게 치민다. 그들이 하느님처럼 신봉한 사서삼경에는 나쁜 말이 단 한 줄이나 있던가? 언행일치라 했는데.......... 그만하자. 건강에 해롭다.

 

鳴玉軒이라. 일단 이모저모로 둘러본다. 찰칵도 곁들이고.....

 

글씨가 참 얌전하다

  

이렇게 흐르는 물소리가 명옥헌에 앉아 있으면 더 크게 들린다고 해서 집 이름을 명옥헌이라 했단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물량이 더 풍부했을 것이려니! 우리는 폼폼사 찍사들이니 사진으로 돌아가서 왼쪽 사진보다 오른쪽 사진의 타임이 길다. 그 효과다.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三顧                                 세 분이 참 즐겁다. 세 분만 보이시면 눈이 안 좋은 분이시고 

 돌아서 나오는 길에는 맥문동이 길가에 외롭고, 곁에서는 배롱나무꽃이 붉기도 하다.

 

 

 

鳴玉軒嘆

빼어난 풍광 속에 홀로 앉아 듣는 소리

옥구슬 구르듯이 경쾌도 했으련만

孔孟의 明明德親民을 마음에나 두었을까

 

 

 

예전에 그랬거늘 다를까 이제라고

풍광이 좋다고야 사람까지 좋을까

나그네 괜스런 걱정 저 꽃에나 묻으리

 

그리고 우리 일행은 소쇄원으로.

 

그곳에는 다리도 있고 광풍각도 있고 제월당도 있었다. 개울 따라 올라가니 그곳에 다람쥐란 녀석이 같이 놀잔다. 그러더니 찰칵을 갖다 들이대니 그만 줄행랑이다. 샘도 하나 있고.

 

 

 

 

비온 후의 맑은 날의 달이라!

헌대 가다보니 이상한 일주문이 있다. 이름하여 <머리조심>문?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이걸 보고 웃는다. 편액이 좀 부실하기는 해도 붉어서 눈에 확 들어온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이 편액이 안팎으로 걸려 있다는 것이다.

 

 

<소쇄처사양공지려>라? 이게 그들에게는 초막인가? 그럼 당시 백성들이 들어가 살았던 초가삼간은 뭐란 말인가? 움집인가? 巢라고라도 써야 한다는 말인가? 過恭은 非禮라 했다.

 

내려오는 길에 기념촬영을 하고 이제는 입이 즐거울 시간. 주차장에 오니 차선생께서는 커피를 좋아하신다면 한 잔 하신다. 메밀이냐, 흑두부냐 하다가 내가 그만 메이일..... 해 버렸더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메밀을 양껏 먹고, 아니 그 전에 물만두로 입맛을 달래고, 쇠주도 한두 잔 하고...... 오늘은 강선생께서 손수 소주 세 병까지 사 오시고(그곳에서는 술은 안 판단다) 점심 빨랑카까지 하셨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운전하신 두 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감사, 또 감사.

 

 

 

 

 

출처 : 문례헌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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