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호남지방에 폭염주의보가 발령중인 날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덥다. 아침을 먹고는 태지 군에게 따르릉을 했다. 우리집 수도가 새서 그에 대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전화를 하자마자 일이 잘 되었다고 그냥 수리하랜다. 사연인즉 이렇다.

 

지난 겨울을 서울에서 지내고 오니, 태지 군이 우리집 수도 계량기가 이상하단다.(태지 군은 정년을 하고서 참 열심히 일을 한다. 참 보기가 좋다.) 어딘가 물이 새는 거란다. 그런데 가울에 검침의 편리를 위해서 대문 밖으로 계량기 검침기를 꺼내는 공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계량기를 열어 본 적이 없다. 물이 샐 거라는 이야기에도 그럴 리가 없다며 집안만을 점검했었다. 그런데 몇백 톤의 물을 사용한 걸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태지 군은 평소의 우리가 사용하는 양에 준해서 요금을 매겨온 거다. 보름 전에는 그 얘기를 듣고 계량기를 열어 보았다. 계량기에는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곳에 옷가지를 잔뜩 넣어 놓고 있었다. 그 옷가지를 꺼내자 물이 새고 있는 게 아닌가?

 

 

근본적으로 공사를 잘 못한 거다. 그걸 나는 모르고 그냥 무심히 지낸 거다. 그래서 수백 톤의 물이 그냥 샌 거다. 가만히 있으면 그걸 내가 다 책임을 져서 수십 만원을 물요금으로 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사실 얘기를 태지 군에게 했더니 와서 사진을 찰칵하고는 군 수도관계자에게 올린 거다. 그래서 한 열흘을 그대로 물을 쓸 때는 열고, 안 쓸 때는 잠그고를 한 거다. 많이도 불편하더라. 어쩌면 군에서 인정을 않을 수도 있으니 수리를 미루고 대기하잔다. 사연이 그렇게 된 거다.

 

오늘 아침에 수리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득달같이 도구를 챙겨 덤비니 잘 안 된다. 그래서 종재를 부르고, 건너편 형댁에 가서 렌찌를 빌리고 야단법석을 해서 겨우 풀어냈는데 집에 있는 ㄱ자 연결고리가 맞지를 않는 게 아닌가! 잘 났다고 앞부분을 쇠톱으로 잘라도 봤지만 맞지를 않는 걸 어쩔 것인가!

 

몽땅 보류하고 오늘이 장날이니까 장에 가서 부품을 사오기로 하고 ㄱ자를 챙겨들고 단념. 땀은 비오듯하고.....

 

12시. 황선생이 올 줄 알고 기다리다 6분이 되어도 소식이 없어 혹시나 하고 따르릉을 했더니 그만 일에 빠져 시간이 그렇게 간 줄을 몰랐단다. 금방 오겠대서 나는 찰칵을 들고 이것저것을 기웃거린다. 그 결과물.

 

이건 여우팥

이건 개상사화

한참을 기다리니 황선생 드뎌 도착. 감물 들인 것을 자랑 좀 하고. 시장으로 출발.

 

시장에 도착면서 나는 또 잊을까 봐 설기밥을 이따가 사자니, 황선생께서는 지금 가잔다. 직행해서 9000원짜리를 사고.

 

 

예의 그 ㄱ자를 시장바닥을 다 훑으며  찾아도 없다. 철물점, 심지어는 모터수리점까지 가도 없단다. 그래도 모터수리점 아저씨가 참 친절도 하시다. <태열>에 가 봐서 없으면 광주로 가얀단다. 참 고마운 친절이다. 이제는 장성 사람들의 무뚝뚝함을 이분들을 생각해서 잊어야 할 것도 같다.

 

그 친절한 아저씨가 운영하는 <성진모터>가 다리 아래로 보인다

그리고는 황선생과 함께 오늘의 메인 메뉴 국밥집행.

 

이거는 길에 있는 간판이고

이거는 창에 새겨져 있는 간판이다

오늘은 참 덥다. 진짜로 덥다. 그냥 덥다. 황선생도 나도 남방이 땀에 젖어 온다. 막걸리 한 잔을 하쟀더니 오늘은 황선생께서 내키지 않으시댄다. 나도 그만 참기로 하고, 황선생께서 구름꽃을 피우시는 동안 나는 태지 군에게 전화.

도저히 구할 수 없으니 군의 그 시행업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봐 달라고. 그럼 거기 가겠다고 했더니 태지 왈,

"형님 제가 알아보고 전화 드리지요."다.

태지 군 감사, 감사 또 감사.

혹시나 하고 갔더니, 태열에도 역시나 없다.

말은 안 해도 실망하고 낙담하고, 이 여름에 저놈의 수도를 어쩌나 하는데, 집에 와서 황선생과 냉커피를 마시니 좀 더운 게 가신다. 다시 그래도 조립하기로 하고, 물이야 새거나 말거나........... 우선은 씻어야 하니까.

 

황선생은 나를 데려다 주고 커피 한 잔을 하고는 가고, 그래도 수도는 임시방편으로 조립을 해 놓고 졸려서 한 잠을 자는데 태지왈, 따르릉으로 집에 있냔다. 있대니까 온댄다. ㄱ자를 구했다는 야그다. 벌떡 일어나 대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니 그가 와서는 그 귀한 ㄱ자를 주고 서늘하면 하라며 간다. 그 뒷꼭지가 얼마나 예쁘던지............. 감사 감사 감사.

 

서늘해지면 하마고 그러마고 대답을 하고서도 좀이 쑤셔서 그냥 그 햇볕 따 쪼이며 낑낑대며 결국은 조립을 해서 고쳐놓고는 아버지께 자랑한다.

"아버지 수도 다 고쳤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

우리 아버지 왈.

"쉽게 고쳤구나. 다행이다."

 

쉽게 고치기는요. 고생고생했구면요. 그래서 이렇게 고쳤다.

 

 

이것이 오늘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한 일이다. 무엇보다 고마운 사람은 태지 군이다. 정말 고맙다. 그 무더운 날 시원한 사워에 쏟아지는 찬물만큼이나 고맙다. 복 받으시라, 태지군.

 

그리고 덤 하나.

 

아마도 다섯 시를 넘겼을 성싶다. 따르릉이 하는 말,

"집에 계세요? 5분 후에 가도 됩니까?"

황선생이시다. 그리고 5분 후에 도착해서는 <사미인주>를 열 병이나 주시고 갔다. 나는 5분 후에 온대서 아버지께서 따 놓으신 호박 두 개 중에 하나를 주어 보내겠다고 생각을 해 놓고서도 그만 까맣게 잊고 그냥 보내고 나서야 생각이 나는 걸 어쩌나?

아버지께 사미인주를 조금 따라 드렸더니 참 좋은 술이라신다.

그리고는 따르릉을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황선생 왈,

"내일을 호박 가지고 오시는 걸 잊지 마세요."다.

 

암 안 잊고 말고. 잊으면 절대로 안 되지. 그렇지? 안 되지...............

 

그렇게 오늘 하루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살아 있는 거에 감사.

출처 : 문례헌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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