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색시가 하는 말,
"여보, 낮에 칼국수 먹으러 가요."
색시는 어제 저녁도 속이 불편하다며 안 먹었다. 그래서 아침도 못 먹은 차에 뭔가가 허전한가 보다.
"그러지요. 어디로 갈까요?"
"정읍이요. 아니 황선생님도 모시고 가요. 그리고 오선생님께도 전화해 보세요. 언니가 오늘 모임 있댔으니까 오선생님 혼자 계시면 모시고 갑시다."
그래서 내가 오선생께 따르릉 신호를 보냈다.
"여보세요!"
"예 저 진운데요. 오늘 두 분이 같이 가시나요?"
"예, 부부모임이요."
"형님 혼자 계시면 모시고 점심 사드리려고 했는데........ 그럼 잘 다녀오세요. 우리끼리 갑니다."
그래서 황선생과 '솟집'(사연이 있다. 좀 웃기지 않는가? 소고기 가게가 있는 집을 말한다면서 언뜻 떠오르지가 않아 급한 김에 솟집이라 했더니 색시가 깔깔 깔.) 앞에서 11시 반에 만나기로 했다.
그제 주문한 찰칵이 택배로 온다기에 확인차 전화. 한 시간 내로 온단다. 그러면 11시 전에 온다는 야그.
그런데 색시에게는 수리했다고 했다. 또 찰칵을 바꾸면 비용이 드니 염치가 없어서다. 중국여행비용 300만 원 거기다 찰칵 100만 원이 더해지면 우리 형편에는 무리다. 그런데 찰칵을 고치고 망가진 후드를 구입하려면 아마도 몇십만 원이 들거다. 그러느니 차라리 그걸 보상받고 새로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그래서 소니 RX10-2로 바꾸려 했더니 우영사장이 Leica를 추천해 준다. 값 차이는 겨우 20만 원. 그래도 대중용이라고는 하지만 라이카가 아닌가! 그래서 응했다. 그 찰칵이 온단다.
택배를 받아서 급히 조립. 11시 20분에 출발.
그 '솟집'에 도착하니 황선생이 이미 와서 하차중이다. 우리 차로 옮겨타고 국도를 타고 출발. 국도변의 가을경치가 참 좋다.
사거리까지는 별 무리 없이 잘 가다가 갈재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그만 이정표를 잘못 해독하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리고 우리 셋 씨익 웃고. 갈재를 구불구불 넘으니 저수지상류가 나온다. 가물어서 입암저수지에도 물이 없어 바닥을 거의 드러내놓고 있다. 황선생 왈,
"호수와 저수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내 말이,
"호수는 물이 그냥 자연적으로 고인 큰 물웅덩이고, 저수지는 물을 이용할 생각으로 사람이 막아 만든 물웅덩일 겁니다."
"양평에 가면 湖沼라고 써 있어요. 호소는 뭐지요?"
"소는 아마도 늪을 얘기할 겁니다. 함 찾아볼게요."
그 답. - 湖는 큰 못, 沼는 늪인데 曲池란다. 내 설명이 대충 맞은 셈이다.
네비아가씨가 알려주는 대로 가니 우리가 목표로 했던 중국요리집 '양자강'이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조그만 그 음식점 앞이 난리굿이다.
줄을 서서 대기중인데 그 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치며 멍한 눈으로 구경 그야말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언론의 힘이 아니 언론의 병폐가 저렇듯 크다는 말인가! 하기사 우리도 그걸 먹으러 온 족속 중의 하나였으니까.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기는 하다. 그만 우리는 포기하고 차를 돌렸다. 그리고 정읍 시장통으로 가다 차를 어디다 세워두고 두리번두리번 마땅한 음식점을 찾았다. 길가의 전자제품을 수리하며 파는 할아버지께서 참 친절하게도 안내를 해 주신다.
"저어기, 저 골목을 돌아 들어가면 거기가 바로 시장토이랑께."
"감사합니다."
눈을 들어 저어기 저 골목 어귀를 보니 입간판이 우리를 부른다.
<장터목>의 문을 밀고 들어서니 아담하다. 조용하다. 그래서 칼국수 3인분, 비빔냉면 하나를 주문.
냉면도 칼국수도 먹을만하다. 깎두기 갓김치가 맛갈스럽다. 주인과 종업원이 장성에서 왔다니 반색을 한다. 황룡어디어디를 아느냔다. 황룡이 고향이란다.
양자강 왔다가는 문전박대 당하고서
장터목 왔더니만 칼국수 맛갈스러
한두 입 먹었더니만 남산만한 내 배야
이제는 두 번째 갈길이다. 주인이 알려주는 대로 <쌍화차거리>를 찾아가면서 시장거리에서 한약상도 지나고 옷점도 지나고 그러다 보니 정읍여자중학교 앞에 쌍화차거리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길로 돌아드니 거기 다방도 있고 찻집도 있다. 한 곳을 찾아 들어가니 그곳이 대나무집이다.
쌍화차 세 잔 금 7000 x 3= 21000원.
뜨겁고 무거운 몽돌잔을 뚜껑을 여니 세 잔 중 하나가 다르다. 동동 뜨는 은행알이 한 잔에는 없는 거다. 왜 그러냐니까 종업원 왈,
'아마도 끓이면서 넣는 걸 빼먹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넣어서 다시 끓여다 드리지요." 하고는 잔을 들고 간다. 색시가 왈,
"한 잔만 시켰음 은행알이 없는 줄도 모르고 먹었을 거 아닌가!"
먹는 요령이 있단다. 뜨거우니까 내용물 곧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건져먹다 보면 차가 식어서 딱 마시기에 좋게 식는단다. 숟가략으로 떠먹어도 먹어도 밤이 나오고 대추가 나오고 은행이 나오고 그러더니 다 건져먹었다 싶으니 정말 마시기에 딱 알맞게 식어있었다. 우리 셋이 하는 말,
"참 맛있다!"
그곳 등이, 호박이 유별나게 눈에 들어온다.
차를 말 그대로 배불리 먹고, 아니 마시고 나와서, 그 차거리 골목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그곳이 문제의 그 <양자강>이다. 그런데 2시가 지난 그 시간까지 장사진이다. 아직도 음식을 먹을 차례가 오려면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참 미쳤다.
한 마디로 정읍은 거리도 깨끗하고 넓고 컸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다.
돌아오는 길에 오선생댁엘 들렀다. 황선생께서 땅콩을 전해 드리는 것으로는 못잊어 손수 찌는 시범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구실을 앞세워서다. 오선생내외 참 반갑게도 맞이하시더니 이약이약하다가는 저녁을 먹고 가야 한다면서 고창 콩나물국밥집으로 데리고 가신다.
베불리 먹고 빠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