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戊午歲 梅溪充聖節使 赴燕都 還至遼東 聞七月之事 事在叵어려울파마침내파測 人皆危之 予爲訪得遼東卜士鄒源潔卜之 其繇詩曰 千層浪裡翻身出 也須岩下宿三宵 旣至 辨明 止於遠竄 而終未喩下句之意 嗚呼 豈知有甲子仲冬之變乎 叢話云 辛丑歲 奉使關西 仍歷黃海 覆審邊邑農事 辛狀元季琚 時爲黃海幕客 迓마중할아于黃州 自鳳山 偕向安丘 渡延津 題一絶于亭上 屬季琚和之 蕭蕭蘆葦滿汀洲 却恐前呵起白鳩 徙倚江亭空悵望 烟波渺渺晩山愁 辛詩忘未記憶 歷黃鳳安豊殷長瓮海延白諸州 晝則聯鞍諧謔 夜則共榻同眠 名區勝景 吟詠酬唱甚多 明年季琚入玉堂爲修撰 與予扈뒤따를호만연할호從箭串 以事俱被劾 未幾 季琚得末疾 竟不起 予以詩哭之 有箭串春風同扈駕 延津落日共題詩之句 季琚雅有器局 志節異常 士林咸惜其不遠到
무오년에 매계 조위가 성절사로 뽑혀 연경에 갔다 돌아오다가 요동에 이르러 7월의 일을 들었다. 사태를 예측할 수 없어서 사람들이 다 위험하다고 했다. 나는 요동의 점쟁이 추원결을 찾아가서 점을 쳤는데 그 노래 시는 이렇다.
천 층 파도 속에서 몸을 뒤집어 나왔건만
또 모름지기 바위 아래서 사흘 밤을 자야겠네.
이미 도착하여 사실을 밝혀 멀리 귀양가는 것으로 그쳤지만 끝내 아랫구절이 의미하는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아, 어찌 알았으랴! 갑자년 한 겨울에 사화가 있을 줄을. 용재총화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신축년에 관서지방으로 사신을 갔다가 이어 황해도를 거쳐 변방 고을의 농사를 살펴보게 되었다. 장원급제한 신계거가 그때 황해도사였는데 나를 황주에서 마중하여 봉산에서부터 함께 안악을 향했다. 연진을 건너다가 정자 위에 절구 한 수를 쓰고 신계거에게 화답을 재촉했다.
우수수 갈대 물가에 모래톱에 많기도 한데
갑자기 앞으로 가 갈매기를 놀래킬까 두렵구나.
강가 정자 위를 바장이며 창망히 허공을 바라보니
안개 낀 물결 아득하여 해질녘 산이 수심 가득하네.
신계거의 시는 잊어버려 기억하지 못한다. 황주 봉산 안악 풍천 은률 장단 옹진 해주 연안 배천 등 여러 고을을 거치면서 낮이면 안장을 나란히 하며 농지꺼리를 하고 밤이면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잤는데, 경치 좋은 곳에서는 시를 읊조려 주고받은 것이 아주 많았다. 다음해에 신계거가 옥당으로 들어가 수찬이 되어 나와 함께 살곶으로 임금을 따라갔다가 사건이 있어 함께 탄핵을 받았다. 얼마 되지 않아서 계거가 몹쓸 병을 얻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시로써 그를 슬퍼했다.
살곶이 봄바람에 함께 임금 수레를 따랐고
연진 석양에 함께 시를 지었었네.
계거는 본디 기량과 재간이 있고 뜻과 절개가 남과 달라 사림이 모두 그 원대한 포부를 펴지 못한 것을 애석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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