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虎孝子碑

肯鉉晩寓鈴泉之南牧虎院, 牧虎之云, 甚奇且恠矣. 問諸同里崔鶴舜, 得其槩焉, 繼而金東湖光祜至, 說此事載閔南磵檃遺集中, 借來讀之, 其畧曰,

此地舊有院. 院直忘其姓名, 性孝奉母誠勤. 一日有事, 諭荻嶺行, 遇一老僧, 僧曰, 奚之夕, 虎將食而母. 雖然, 如是如是, 庶可免矣. 孝子涕泣徑歸, 齋沐汎掃, 固扃鐍而守之, 果有大蟲咆哮而至. 孝子以身當之, 投衣裳, 設糜糊而諭之, 虎乃止啜糜. 自後三年如一日, 馴服如家畜, 母亦幸康以天年終. 此名之所由始也.

嗚呼! 古來以孝名者何限, 而未聞有此事. 若使斯人生士大夫家, 得位與名, 此奚但雀鯉故事? 而地賤命單, 千古懿蹟, 將歸湮滅, 僅僅傳於草茅寒儒寂寞數行語, 可慨也.

今距南磵且數百年矣. 若復幾年, 故老已盡, 殘編斷爛, 則又將如何? 南磵所謂, 或久而不傳, 則林下闕文之誚, 將有所歸者, 眞曠世同感. 而况今彝倫斁喪, 大防盡壞, 肯鉉豈敢以林下自待? 但懼至行之易泯, 祈風化之有補, 竪石表出, 理性所均, 其有觀感而興起者乎.

嗚呼! 孰無父母, 孰非人子? 古人曰, “天下無道, 公論在野.” 後之覽斯文者, 又有以知老婆心苦也否? 牧虎院, 今丹光里也.

昭和十五年(1940)庚辰春五月日

光山後人, 碧湖金肯鉉記

靈光後人, 敬庵金漢禧書

호랑이를 기른 효자의 비

긍현이 만년에 영천의 남쪽 목호원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었는데, ‘목호(호랑이를 길렀다)’라고 한 것이 심히 기이하고 괴상하기만 하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최학순에게 그 이유를 묻고서야 그 대강을 알게 되었으며, 이어서 광호 김동호가 이르러서 이 일이 민남간의 은유집 속에 실려 있다고 말하는지라 그것을 빌려와 읽어 보니, 그 대략은 이렇다.

이 지방에는 옛날에 ()’이 있었는데, 원지기는 그 성과 이름은 잊혀졌지만 성품이 효성스러워 성심을 다해 부지런히 어머니를 봉양하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일이 있어 적령을 넘어가는 길에 한 노승을 만났는데, 스님이 말하기를, “아무 날 저녁에 호랑이가 너의 어머니를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비록 그렇다하더라도 이러이러하면 거의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효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곧바로 돌아와 목욕재계하고 두루 청소를 한 다음 문빗장과 걸쇠도 단단히 걸고서 지키고 있었는데, 과연 호랑이가 포효하며 이르렀다. 효자가 몸으로 막으며 저고리와 치마를 던져 놓고는 싸래기죽을 차려서 달래니, 호랑이가 곧 멈추고서 죽을 먹었다. 이로부터 그러기를 삼년을 하루같이 하였더니, 호랑이가 길들여져 마치 가축처럼 복종하였고, 어머니 역시 행복하고 건강하게 천수를 마쳤다. 이것이 () 이름이 유래된 시초이다.

오호라! 예로부터 효로써 이름난 이가 어찌 제한이 있겠느냐마는,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음을 아직 들어 본 적도 없다. 만약에 이 사람을 사대부가에 살게 하여 벼슬과 명예를 얻게 하려면, 이 어찌 다만 참새와 잉어의 고사(故事)뿐이겠는가? 그러나 지위도 천하고 운명도 박하여 천고의 아름다운 효행이 장차 흔적도 없이 없어지려고 하고, 겨우 초야의 빈한한 선비의 적막한 두서너 줄의 말에나 전해지고 있으니 개탄스럽도다.

이제 남간과 시간적으로 수백 년이나 떨어져 있는데, 만약 다시 몇 년이 지나 옛일을 잘 알고 있는 노인네들이 이미 다 돌아가신다거나, 책 중의 일부가 없어지고 책장이 찢어져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또한 장차 이를 어찌할 것인가? 남간의 말한 바가 혹시 오래되어 전해지지 않는다면 글을 빠뜨렸다는 초야의 꾸짖음으로 장차 귀착될 것이라는 것은 참으로 온 세상이 동감할 것이다. 하물며 지금 떳떳한 인륜이 부서지거나 상실되어 큰 방어막조차 다 무너졌으니, 긍현이 어찌 감히 초야의 은퇴한 선비로서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다만 지극한 효행이 쉽게 없어지는 것이 두렵고, 풍습의 교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비석을 세워 드러내나니, 사람의 이성은 같은 것인지라 아마도 보고 느껴서 감동에 떨쳐 일어나는 이가 있을 것이다.

오호라! 누구인들 부모가 없을 것이며 누구인들 남의 자식이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하에 도가 없으면 공론이 초야에 있다.”고 하였으니, 후세에 이 글을 보는 사람 역시 이런 노파심의 고충을 아는 이가 있을까 없을까? 목호원은 지금의 단광리다.

소화 15(1940) 경진 봄 5월 일

광산후인 벽호 김긍현이 짓고

영광후인 경암 김한희가 쓰다





孝婦孺人晉州蘇氏之墓

 

孝婦蘇氏甫踰筓歸金永允越五年戊辰十二月五日庚申急痞而歿

得年二十一其舅碧湖金肯鉉甚悼惜之不欲其同於凡墳而謀所以

表之者石旣具請於余曰新婦性溫靜語言有度步履以正一言蔽之

曰不凢善事我而宜家人閨門之內和氣藹然雖婢背有大過止曰汝

何失常度而已不出惡言以詈亦不言畜生此文饒之所難吾嘗患痢

一晝夜十餘上厠夜則新婦伺吾起如持燭立圖外容光以照內盖慮

登降跧躓也病且滿三月食性全失如嚼絮然新婦雪裏採菜菜蔬魚

肉一案十數合亦冀吾隨合下箸以或有可口者未嘗有一日間古語

云孝則生福心中期以唐夫人緣吾祗薄失此賢哲痛矣乎哉余曰夫

子以人不問其父母昆弟稱閔子之孝今於孝婦孰能問其舅之言孝

旣如此而天且無育誰尤尤眞宰乎蘇氏晉州著姓父禹永祖前度支

部主事錫斗大提學陽谷諱世讓后永允光山大姓黃龍湖又名家序

次世德實行系以銘曰

嗟哉孝婦天性芳玆胡秀不實長令舅悲至行難泯石以揭辭戒爾櫵

牧無或近之

歲庚午正月下休

濯新金漢穆撰

少石奇東衍書



호랑이를 기른 효자의 비

긍현이 만년에 영천의 남쪽 목호원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었는데, ‘목호(호랑이를 길렀다)’라고 한 것이 심히 기이하고 괴상하기만 하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최학순에게 그 이유를 묻고서야 그 대강을 알게 되었으며, 이어서 김동호, 광호가 이르러서 이 일이 민남간의 은유집 속에 실려 있다고 말하는지라 그것을 빌려와 읽으니, 그 대략은 이렇다.

이 지방에는 옛날에 ‘원(院)’이 있었다. 원직(원에 근무하는 아전)은 그 성과 이름을 잊었지만 성품이 효성스러워 어머니를 봉양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일이 있어 유적령 가는 길에 한 노승을 만났는데, 스님이 말하기를, “어느 날 저녁에 호랑이가 장차 너의 어머니를 잡아먹을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이러이러하면 거의 면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효자는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근무하던 院直조차) 사임하고 급히 돌아가 목욕재계하고 두루 청소도 하고 문빗장과 걸쇠도 단단히 하고서 지키고 있으니, 과연 호랑이가 포효하며 이르렀다. 효자가 몸으로 막으며 저고리와 치마를 던져 놓고 그 위에 죽을 차려서 타이르니, 호랑이가 이에 멈추고서 죽을 먹었다. 이로부터 이러기를 삼년을 하루처럼 똑같이 하였더니, 호랑이가 길들여져 마치 가축처럼 복종하였고, 어머니도 또한 행복하고 건강하게 천수를 마쳤다. 이것이 (院의) 이름이 유래된 시초이다.

오호라! 예로부터 효로써 이름난 자가 어찌 한이 있겠느냐마는,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음을 아직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만약에 이 사람으로 하여금 사대부가로 살면서 지위와 명예를 얻도록 한다면, 이 어찌 단지 참새와 잉어의 고사(故事)로 유명한 효자 왕상(王祥)뿐이겠는가? 그러나 지위도 천하고 운명도 박하여 천고의 아름다운 (효의) 행적이 장차 흔적도 없이 없어지려고 하고, 겨우 초야의 빈한한 선비의 적막한 두서너 줄의 말에 전해지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지금 남간과 시간적으로 수백 년이나 떨어져 있다. 만약 다시 몇 년이 지나 옛일을 잘 알고 있는 노인들이 이미 다 돌아가신다거나, 책 중의 일부가 없어지고 책장이 찢어져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또한 장차 이를 어찌하겠는가? 남간의 이른 바, 혹시 오래되어 전해지지 않는다면 은퇴한 선비의 글을 빠뜨렸다는 꾸짖음이 장차 돌아갈 곳이 있으리라고 한 것은 참으로 세상에 보기 드물게 동감하는 말이다. 하물며 지금 떳떳한 인륜이 부서지거나 상실되어 큰 방어막조차 다 무너졌으니, 긍현이 어찌 감히 임하의 은퇴한 선비로 스스를 대우하겠는가? 단지 지극한 효행이 쉽게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풍습의 교화에 도움이 있기를 기원하며, 비석을 세워 드러내나니, 사람의 이성은 같은 것인지라 아마도 보고 느껴서 감동이 떨쳐 일어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오호라! 누구인들 부모가 없을 것이며 누구인들 사람의 자식이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하에 도가 없으면 공론이 초야의 민간에 있다.”고 하였으니, 후세에 이 글을 보는 사람도 또한 이렇게 애쓰는 노파심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목호원은 지금의 단광리다.

소화 15년(1940) 경진 봄 5월 일
광산후인 벽호 김긍현이 기록하고,
영광후인 경암 김한희가 쓰다.


* 인곡 박선생께서 번역하신 글이다. 감사 감사 또 감사.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또거길갔다16차  (0) 2017.02.19
020광화문14차  (0) 2017.02.08
6차촛불  (0) 2016.12.05
또 갔다  (0) 2016.11.27
거길갔다  (0) 2016.11.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