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금요일 밤. 딸아이와 통화.
"낼 5시 경복궁역 6번 출구에서 만날랴? 그때 그 선생님들이랑 만나기로 했거든!"
"그 선생님들과 만날 거면 전 싫어요. 그리고 그길로 내려가시려구요?"
"아니, 그럼 딸이랑만 만나지 뭐?"
"기냥 내려가실 거잖아요?"
"아니, 그럼 집에 가지 뭐?"
"그래요, 그럼 나갈께요."
참 비싸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한 밤을 자고, 아니 그길로 버스 예약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11시 반 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터미널에 도착한 것이 15시. 3호선을 타고 가면서 딸아이에게 전화.
"터미널이당! 경복궁역 6번 출구에서 몇 시에 만나랴?" 카카오톡질
"5시용!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께요."
3호선 전철을 타고 안국역에 내리니 3시 40분.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광화문쪽으로 세월아네월아 하며 걷는다. 길을 건너고 또 건너고 그래서 민속박물관 입구로 들어가 경복궁을 돌아본다.
"티켓이 필요합니다."
"저 경로인데요."
"뭐 보여주실 거 있으신가요?"
주민등록증을 내보이자 그냥 들어가란다.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유난히 우리옷 차림의 아가씨들이 많이 보인다. 무슨 날인가 싶을 정도였다. 곱게 차려 입은 우리옷 맵시가 예쁘다. 나도 인증샷을 한 컷 하고.
이들은 아마도 연인 사일거 같다. 두 손을 꼭잡고 나들이. 어느 외국인 관광객의 눈에도 예뻐 보였나 보다. 기념촬영을 부탁하는 그들에게 참 친절히도 응해 준다. 하는 짓도 예쁘다. 다만 둘의 겉옷과는 달리 안에 받쳐 입은 옷과 신발이 격(?)에 안 맞아 아쉽다.
경복궁0204-8019.jpg
경복궁을 나와 광화문 밖에서 찰칵한 인증샷.
광장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직은 시간이 일러 조용하다. 무대 앞에 벌써 깔개를 놓고 앉아서 기다리는 이들도 많다. 깔개값 1000원.
왔다갔다 하는 품이 모두가 여유롭다. 분주하게 오가는 이가 없다. 다들 조용하다. 간간히 확성기 소리가 들려올 뿐 조용하기 그지없다. 차소리도 숨을 죽이는가 보다. 세종대왕은 무슨 죄가 있어 저러고 손을 든 채 벌을 서고 있는 걸까? 벌써 몇 해 몇 날째일까? 벌이 끝나는 날이나 있을까?
한 시간 반 세종로를 오락가락하며 찰칵. 노란 풍선과 커다란 굴리개공이 이채롭다.
5시가 다 되어 기다리던 경복궁역 6번 출구에서 딸아이를 만났다. 그리고 둘이서 세종로를 다시 누비고 다녔다. 그러면서 딸아이가 찰칵해준 인증샷이다. 뭐가 그리 좋다고 내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저러고 있었을까?
세종로 길을 걸어걸어 광화문 네거리에 이르러 종로통으로 들어서서 걷다가 우리는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가는 곳은 청진동.
걷다보니 피맛골이다.
옛 기억을 더듬어 '청일집'을 찾아드니 먼저 온 이들이 많다.
서울막걸리 한 병, 빈대떡 한 접시.
그렇게 시켜 딸아이가 따라주는 한 잔을 들이키고 나니 시원타. 뭘 더 바랄까?
서울막걸리 한 병 더. 그리고 황태탕 하나 추가.
황태탕을 시켰었는데 그만 굴탕이 나왔다. 군말 없이 바꾸어 준다. 세상 참 많이도 달라졌다. 그냥 먹겠다는데도 궂이 바꾸어준다.
참 시원코 맛도 좋다. 우리 둘은 연신 감탄 또 감탄.
청일집 텁텁한 술 빈대떡 한 젓가락
황태탕 고소한 맛 천상에서 왔으려니
딸이랑 둘 마주앉아 잔 기울여 웃노라
차차 어둠이 내려깔리기 시작하고 형광불빛도 하늘을 가른다.
어느 먼 훗날훗날 자신에게 미소하려
당일치기 세 번을 했다고 말했더니
화들짝 수구꼴통이 해대는 말 '미쳤냐'
아래 두 사진을 파노라마.
광화문0204-8057.jpg
저 여인네가 든 촛불이 타올라 기름장어를 구워버렸다 했다. 거짓말쟁이는 구울 수 없는 것일까?
딸아이와 총리공관까지 행진을 하는 대열에 끼어들었다. 삼청동 길 거기도 내가 낸 세금을 쓰는 경찰이 우리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세상은 참 엉터리다. 세금을 낸 사람은 힘을 못쓰고, 그 세금을 써대는 이는 큰소리치고 산다. 그것도 입만 열면 거짓말.
삼청동 길에서 막혀 딸아이와 나는 돌아서고 말았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나 속시원히 뚫리는 날이 올까?
한 세상 모두가 왔다가 가는 것을
뭐 그리 가질 게도 많다고 아웅다웅
욕심을 부리고서도 모자라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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