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설기를 데리고 뒷산에 올라 빗방울 맺힌 수풀을 헤치고 찰칵을 들이댔다. 결과는 별무신통. 초점이 대부분 맞지를 않아 예쁜 며느리밥풀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아이구, 아까워......."

이질풀-9801.jpg

이질풀

참취-9810.jpg

참취

사진을 손질하는데 따르릉이 울린다.

"접니다. 좀 일찍 가도 될까요?"

"얼마나 일찍요? 물론 좋아요. 11시"

정신을 피시에 쏟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부른다. 황선생이시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다. 9시반에 따르릉을 받았으니 한 시간 반이 그 사이에 금방 가 버린 거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다가 그만 "아니 벌써?" 그러고 만 거다. 한 곳에 빠지면 학생때부터 내가 그렇다.

황선생께서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신다. 내 눈에 그래머 여성이 색안경을 끼고 있는 포즈다. 보여 주시면서 황선생 왈,

"하도 황당해서 말좀 들려드리려구요."다.

듣고 보니 참 황당하기도 하다. 황선생 표현대로 '들이대는' 막무가내타입 그 자체인 게 분명해 보인다. 민속놀이 현장에서였다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따끈한 커피 한 잔씩을 하고는 찰칵을 챙겨들고 출발.

장성육교를 넘어가다가 그만 얘기에 정신이 팔려 제 길을 놓치고 말았다. 그 촌스런 조명을 한 다리를 건너 좌회전을 해서 가는데 내 눈에 붉은 꽃잎이 들어온다. 한참을 지나쳐서 내가 황선생께 부탁.

"시간도 많은데 차를 돌려 그 꽃을 좀 구경하고 가시지요."

"그러지요."

<둥근잎유홍초>

둥근잎유홍초8-9825.jpg

 

둥근잎유홍초5-9822.jpg

 

나팔꽃

나팔꽃-9829.jpg

 

다리에 돌아오니 강에는 어리연이 멀다. 24-70렌즈밖에 없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어리연-9842.jpg

 

다리 곁에서 황선생께서 땅개비 부부를 발견하시었다

땅개비부부-9837.jpg

 

또 길에는 동부가 보인다. 황선생께서 내 말을 듣고 껍질을 벗기니 까만 동부알이 보기도 좋다.

동부손-9836.jpg

가는 길에 문화원에 들러 예의 그 사진을 맡기고 가자신다. 나는 차 안에 남아서 그 짧은 시간에도 무료해서 한 컷 찰칵. 누구의 찰까?

문화원1-9811.jpg

 

황룡시장에 오니 오늘은 시장같다. 제법 사람들이 복작인다. 참 다행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느냐고 황선생께서 길을 달리 잡으신다. 내가 잠시 뻥했더니 황선생 왈,

"제가 바로 참샙니다." 하신다. 얘긴즉슨 생선가게에 들르자는 거다. 스윽 돌아보시더니 기분 좋으시댄다. 첫눈에 가게 아주머니가 보고는 웃었단다. 오늘 같은 날은 복권을 사야 한다고 농이시다. 갈치를 만 원어치나 사들고, 맨날 가는 할머니를 찾아가서 마늘도 한 보시기 사고, 호박도 하나 사로 그러고는 돌아서 국밥집으로.

가서 자리를 잡자마자 웬 4분의 나이 듬직하신 어르신들이 들이닥치는데 아마도 전주가 있으신가 꽤는 떠들썩하다. 주문을 하시는데 네 분이 각자 말씀을 소리높여 하시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달덩이 주인께서 한 마디로 정리하시고 가신다.
"국밥 안주 하나에 소주 한 잔 하시겠다고라우?"

한 마디에 그만 그 시끄럽던 주문이 조용하다. 황선생과 나는 서로 보고는 씩 웃고 만다.

우리도 황선생 소시적 얘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걸치고 국밥을 만나게 먹고는 일어서는데 내 눈에 배추더미가 들어온다. 가만 있을 수 없지 뭐. 찰칵도 손에 있겠다. 그냥 한 컷.

배추-9843.jpg

참 맛있게도 생겼다. 포샵을 잊어서 한쪽이 그렇다

 

달구지를 찾아오니 천변에 물이 아니 하수구에서 하얀 물이 쏟아지고 있다. 냄새는 나는데 그 물 빛은 맑다. 밑에 가라앉아서 그럴까? 해오라비 한 녀석이 그만 다리 사이로 숨고 만다. 아쉽다.

배추-9844.jpg

 

커피바리스타를 찾다가 없어서 성당 으로 가기로 의견일치를 보고 출발. 차에서 내리니 삼대(? 황선생 표현)가 눈에 들어와 또 한 컷. 만족스럽지 못하다.

삼대-9848.jpg

삼대가 뭘 말하는지는 퀴즈다. 아시면 댓글에 올리시기를..........

 

계단 앞에 와서야 생각이 미친다. 월요일은 쉬는 날인 걸. 미련없이 돌아선다. 역앞 옛 미월당 자리에 있는 커피집으로. 가서 커피는 황선생께서 사시고............. 그냥 어쩌다 역사 얘기가 나와서는 어줍잖은 실력으로 그만 <삼국사기> <삼국유사>까지 언급하고 말았다.

 

황선생께서는 나를 우리 마을 정자 앞 다리까지 데려다 주시고 가시고,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설기가 길길이 뛴다. 놀아달라는 거다. 잠시 들여다보고 돌아서니 포기가 빠른 설기도 돌아서서는 먹이를 먹으러 간다.

다섯시 반에 설기를 데리고 슬슬이를 타고 나서는데 빗방울 하나둘 듣는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기왕 나선 길 --- 짧게 한 바퀴 돌고 와도 설기는 좋단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가고 이렇게 후기를 남긴다. 황선생께 감사.

출처 : 문례헌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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