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4박5일 동안 안내해 줄 가이드 졸라양이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밝은 두 애기 엄마란다.
우리가 4박5일 동안 타고 타닐 애마 24인승 승합차 가나가 운전기사다. 교통지옥의 도로를 잘도 끼어들어 우리를 안전하게 안내하느라 무진 애를 쓴 가나. 어떤 때는 아찔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가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웬만한 접촉사고는 서로 금방 해결하고 헤어진다고 한다. 오래 시간을 끌면 교통방해로 양쪽 모두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접심을 먹고 승하자를 타고 가다가 차 안에서 저런 간판이 눈에 들어와 반가와 찰칵 한 컷. '외국에 가면 누군들 애국자가 아니랴'라는 말에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Korean Food
'한국 25' 반갑고야 한국식품 가게라니
외국에서 살다보면 그리움에 사무쳐서
내 나라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난다더니
박물관 건물과 현관 앞에 비치된 쇠종이다. 몽골의 역사가 시대별로 펼쳐져 있어 그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소천이 내게 왈,
"이곳에서 그 먼 나라까지 쳐들어가는 멍청한 짓거리를 왜 했을까? 참 멍청한 놈들 아닌가?"
두 번, 세 번 듣다가 내가 왈,
"사막지대고 초원이어서 유목민족인 그들에게는 먹거리와 생필품이 모자라 약탈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노획물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한 거지요. 약탈을 방조한 게 아니라 권장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던 전쟁. 약탈물의 대부분은 재물 그리고 여자였다오."라 했더니, 소천이 고개를 끄덕끄덕.
달리는 버스에서 찰칵한 것이라 정상적으로 대상을 다 담지 못했다. 부분을 연결해서 봐야 한다. 제9대 밧드가 거처하던 집이란다. 우리로 말하면 宮殿에 속한다고나 할까. 고색이 창연한 유일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이었다. 마지막 지배자, 티벳으로 말하면 마지막 다라이라마와 같은 지위를 가진 이가 살던 궁전이란다.
그리고는 우리는 국립백화점엘 갔다. 마지막 날에 다시 쇼핑을 할 거라는 가이드의 약속은 안 지켜져서 백화점 안을 다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1층 식료품부만 둘러보며 쇼핑으로 만족. 저들은 모두가 수입한 과일들이란다. 내 아내는 포도가 정말 맛있다고 감탄 감탄 또 감탄. 어디나 그렇듯 백화점 안에서는 찰칵을 꺼려한다. 여기도 마찬가지여서 사진이 이게 다다. 아쉽다.
백화점 정면이고 그 앞에 선 우리 일행들이다. 누군가는 빈 손, 누군가는 뭔가 비닐봉지도 들고 있다.
여기는 백화점 건너편 광장이다. 모두가 뭔가 한가락씩 하시는 분들 같다. 멋지다.
광장의 5인
쇼핑도 마쳤겠다 마음도 가벼워서
너도나도 질세라 선그라스 끼고서는
보무도 당당 경쾌히 전진전진 또 전진
우란바타르 기차역이다.
우란바타르 거리의 집들로 차 안에서 찰칵한 풍경. 울긋불긋 모두가 새집들이다. 이제 막 개발하는 시가지여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