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延興府院君 夏日 設宴于南山挹白堂 一時文章詞伯大會 東皐崔岦 亦與焉 酒瀾 主人出華牋 各置座前 要諸公吟咏 諸公勸崔先題 崔累辭不獲 遂援筆而成七言近體一首曰 避暑風流傾北海 衝泥車馬簇南山 身忘國舅衣冠右 其取家人鼎俎間 桂醞盞愁蕉葉脆무를취 氷羞盤訝水晶頑 佳招只爲憐能賦 白首其如夢錦還 五峯月沙以下皆閣筆 以今觀之 東皐之作 圓渾雄贍 固是傑作 而以五峯諸公之才 至於閣筆者 何哉 盖兩公 皆具眼者 眞知其善故耳 世之粗解押韻者 强次人韻 自以爲能 良可哂비웃을신也
연흥부원군이 여름날에 남산의 읍백당에서 잔치를 베풀자, 당시의 문장 대가들이 많이 모였는데, 동고 최립 역시 거기에 참석했다. 거나해지자 주인이 시를 쓰는 종이를 꺼내어 각기 자리 앞에 놓고는 여러 사람들에게 시 짓기를 청하자 여러 사람들이 최립에게 먼저 지으라고 권하였다. 최립이 여러 번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드디어 붓을 잡고는 칠언근체시 한 수를 지었다.
더위를 피하는 풍류 북해를 기울인 듯하고
먼지 뒤집어쓰고 수레는 남산에 모였네.
자신이 국구라는 것도 잊고서는 선비들을 높이고
집안의 음식을 모두어 차렸네.
아름다운 술잔 파초잎 같아 걱정인데
소반의 차가운 음식은 수정인가 의아했네.
초대는 시를 잘 짓는 이들을 위해서인데
늙은이가 꿈속에서 비단 옷을 입고 돌아오는 꼴이라네.
오봉 월사를 비롯해서 모두가 붓을 놓았다. 지금 그 시를 보니, 동고의 시는 원만하고 조화를 이루고 웅장하고 넉넉하여 참으로 이는 걸작이다. 그러나 오봉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재주로도 붓을 놓게 된 것은 왜일까? 아마도 두 사람은 다 시를 볼 줄 하는 이들이어서 정말 그 시가 잘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에서 압운을 좀 아는 이들이 억지로 남의 운자를 차운해서 스스로 잘 지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