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排律於初唐 沈宋 四傑諸人之作 皆妙 至老杜 至于百韻 則已患其多 弇州輓滄溟之作 亦百韻 而不無疵病 麗朝李文順 巨筆滔滔 而亦不過三百韻 任踈菴 乃有七百十六韻 此古今所無 而韻字多有韻書所無者 嘗欲自註其出處 而未果云 奇則奇矣 然亦未必奇也 又以觀漲為題 押强韻 至七排百韻 而以一意三次之 尤奇 盖任踈菴之詩 不及儷文 而惟溫李體酷肖
배율은 초당에 시작되었다. 심전기 송지문 사걸 등 여러 사람의 작품이 모두 절묘하다. 두보에 와 백운에 이르렀는데 그 많음을 이미 걱정할 정도였다. 엄주의 만창명이라는 작품도 백운이었으나 흠과 병통이 없지 않다. 고려 때 이문순공은 긴 글을 짓는 솜씨가 물흐르듯 하였다고 하나 불과 삼백 운에 지나지 않았다. 임소암이 곧 칠백 운에 이르렀으니 이는 고금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운서에도 없는 운자가 많다. 일찍이 그 출처를 스스로 주를 달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고 하니 신기하고 신기한 일이지만 역시 꼭 신기한 것만은 아니다. 또 관창을 제목으로 삼아 강운으로 압운하여 칠언배율로 백운에 이르렀고 한 가지 뜻으로 세 번이나 차운했으니 더욱 신기하다. 아마도 임소암의 시는 변려문에 미치지는 못해도 유독 온정균과 이상은의 체와 아주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