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10분 전. 탐사준비를 하고 부르릉 출발. 내가 나가도 설기는 시큰둥이다. 그는 내가 지를 데리고 갈지, 아니면 나만 갈지를 귀신같이 안다. 그래서 차를 가지고 움직이면 본 체 만 체다. 그야말로 가거나 말거나다.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해서 느릿느릿 가니 뒤에서 오는 차가 속이 터지나 보다. 추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빵빵거리기도 그런가 보다. 성산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없다. 지난 번에 버스로 떠났기 때문에 나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그러나 황선생과 충식 군은 한우집 마당에서 기다린 모양이다. 10분이 지나도 보이지를 않아서 따르릉을 하니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서 내 차에 동승하고 출발.

 

천천히 가면서 내가 묻는다. 삼거리 길에서,

"오른쪽으로 갈까요? 왼쪽으로 갈까요?"

충식 군왈,

"당연히 오른쪽 길이지요."

그래서 나는 새로 난 1번국도로 올라섰다. 내색시가 좋아하는 길을 따라 남창계곡길로 접어드니 한산하기 그지없다.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차 한 대가 없다. 다만 우리뿐이다. 주차를 해 놓고 도로로 올라서니 그곳에 고마리가 지천이다.

고마리-9963.jpg

다리를 넘어서려는데 왼쪽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황선생께서 물으신다. 무슨 나무냐고? 내 눈에는 누리장나무처럼 보여서 그랬더니 그 밑에 수명표가 붙어있다. '예덕나무' 씨앗도 까많게 달려 있다. 내 눈에는 비슷해서 항상 헷갈린다. 그 말은 아직은 확실히 알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계곡길로 접어드니 여기 저기 물봉선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양이 마귀할멈 같다고 했더니 과연 그럴까 하신다. 직접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물봉선-9993.jpg

잘 보시면 아마도 마귀할멈 얼굴이 보일 것이다. 마음씨 고운 이에게만 보이는 것일까?

봄의 산과 가을의 산은 판이하다. 생기에 넘쳐 움터오는 봄에는 눈을 돌리는 대로 꽃들이 보이는데 가을의 산에는 그저 을씨년스런 분위기라서 그런지 아무리 둘러봐도 올라갈수록 꽃은 없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개여뀌.

개여뀌-9992.jpg

가다가 우리는 다리를 건너 삼거리에서 잠시 쉰다. 그리고 배낭을 뒤진다. 나오는 것은 간식이다. 황선생께서 구워오신 밤 네 알과 초코우유 한 병이 내몫이다. 감사

간식-9969.jpg

간식을 맛있게 먹고는 황선생께서는 우리보다 한 가지 더 드신다. 구름사탕 한 두름.

돌길을 걷자니 참 불편하다. 그런데도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숲속길에는 우리 외는 아무도 없다.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보다. 한참을 가다가 황선생께서 한 건을 하신다.

21-9974.jpg

무슨 열매일까? ---> 참회나무

걷고 걸어서 드디어 우리는 남문을 통과. 입암산성에 입성. 잠깐 다리를 쉬면서 충식 군이 캔맥주를 하나씩 배급을 한다. 맛있게 마시고 빵도 하나씩 감추고,그리고 의논이 되돌아가기로 한다. 내가 착각을 해서 습지를 간다는 것을 길을 잘못 든 거다. 아까 잠깐 다리를 쉬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얀단다.

 

그래서 우리는 되돌아서 내려오고 만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한 컷 찰칵. 이삭여뀌다.

이삭여뀌-9997.jpg

내려오는 길에 낯선 열매를 또 만난다. 이름을 모른다는 말이다. ---> 누리장나무?

31-9978.jpg

내가 약간 앞서서 내려오다 보니 일행과 꽤 앞섰나 보다. 뒤돌아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 삼거리에 오니 산행을 오신 두 분이 쉬고 계신다. 나도 앉아서 땀을 식히려니 일행이 한 5분 후에 도착. 황선생 왈,

"산행에서 참 얄미운 사람, 먼저 와서 쉬다가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출발하자고 하는 사람. 설마 김선생께서는 출발하자고 안 하시겠지요?"
내 말이,

"회식을 하면 술을 먼저 마시고는 다른 사람 다 마시고 먹고 끝나갈 때서야 밥먹어야 한다고 밥뚜껑을 여은 사람도 참 얄밉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한참을 쉬다가 습지가 있다는 왼쪽길로 접어들었다. 습지에는 물매화가 있겠거니 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먼저 출발한 우리는 쉬엄쉬엄 가고 뒤늦게 출발한 다른 등산객 둘은 우리를 앞지르고........ 돌길을 지나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셋 지나니 그곳에 평지같은 흙길이, 삼나무 숲이 우리를 반긴다. 황선생과 나는 그냥 좋다를 연발한다. 오른쪽에 돌탑이 두세 개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도 눈에 안 들어온다. 한참을 올라가니 낯익은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투구꽃과 개승마를 찾았던 몇해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물찾기를 해도 없다. 그래도 찾아 헤매니 뭔가 있기는 하다.

1-9970.jpg

뚝갈열매

2-9973.jpg

산박하

천남성-9989.jpg

이건 천남성 열매다 나중에 빨갛게 익는다

주위에는 뻐꾹나리가 열매를 달고 지천으로 널려 있다. 7,8월 꽃이 필 때 오겠다던 다짐을 잊고 이제서야 또 왔으니 꽃은 없고 열매만 있다. 황선생과 나는 내년에 때를 맞추기로 입을 맞추고..........

 

드디어 습지에 들어서기는 했는데 웬걸, 기대했던 물매화는 어느곳에도 없다. 다만 여기저기 널려 있는 쑥부쟁이, 참취, 기름나물 그렇다.

41-9994.jpg

숫잔대

미역취-9998.jpg

미역취

쑥부쟁이2-9991.jpg

쑥부쟁이

아무리 찾아도 물매화는 흔적도 없다. 두 분을 먼저 가시라고 하고 나는 다시 꼼꼼히 둘러봐도 없다. 실망 또 실망. 몇 해 전에 봤으니 그동안 개체수가 없어져 버린 것인가? 내가 너무 빨리 온 것인가? 단념하고 돌아서 나오니 두 분은 길가 바위 위에 앉아 쉬고 계신다.

터벅터벅 내려오는 발길이 무겁다. 5시간쯤 걸었을 거다. 중간에 황선생 왈,

"충식아, 내 백 작은 주머니에서 담배 좀 꺼내 주라."

꺼내 주고 멀찍이 물러앉았던 충식 군이 다시 다가간다. 왤까?

"꺼내 주었으니 넣어도 주어야지."

"야아, 오늘 충식이 서비스가 만점이네에....."

"기왕에 하는 거 다하지 뭐."

그렇게 황선생은 기분좋게 한 대 꼬나무시고, 우리는 농담반 진담반.

"나는 담배를 37년 피웠는데도 담배냄새가 싫다."

"나도 17년을 피웠는데 끊은 지 딱 30년."

"저런.... 나는 끊은 지 8년."

황선생 왈,

"이 담배가 약한가 봐요. 냄새가 덜 나거든요. 내색시도 냄새 안 난다고 하고, 내 딸도 안 난댑니다."

나도 황선생이 담배를 피우는 줄은 알지만 같이 차를 타도 그렇게 역겨운 담배냄새를 맡은 기억이 없다. 그말이 맞기는 맞나 보다.

 

내려오는 길에서 등산객을 7분을 더 만났다. 우리는 내려오고 그들은 올라가고. 인사를 받는 이도 있고, 같이 인사하는 이도 있고, 인사를 해도 들은 척도 아니하는 이도 있었다. 자라온 환경 탓이겠지 아마도.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타고 출발하자마자 충식 군이 쐐기를 박는다.

"오늘은 점심을 내가 살 테니까 누가 내느니 안 내느니 하지 마세요."

우리 둘은 할 말이 없다. 그저 황선생이 한 말씀하신다.

"오늘 정말 충식이 서비스가 끝까지 좋아뿌네잉."

그렇게 해서 우리는 댐 위의 탕집엘 갔다. 나는 핸들을 잡는다는 핑게로 알콜을 사양하고, 두 분이서 소주 한 병에 맥주로 간을 맞추어 드시고 배가 넉넉하게 탕을 먹고 그리고는 주인장이 타 주시는 커피까지 마시고 일어섰다. 오는 길에 조각공원엘 가려다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황선생 말씀에 나는 그만 흥미를 잃어 그냥 통과하고 말았다. 성산에 와서 즐거운 하루를 마무리하고 각자 집앞으로 가아.

 

오늘도 정말 즐겁고 유쾌한 하루다. 내 말이,

"이렇게 판판 놀고도 밥이 입에 들어가니 내 팔자도 참 좋오타아!"다. 모든 이에게 감사.

출처 : 문례헌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