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林垂胡芑 博覽群書兼有過人之聰凡於九流百家奇書古文無不目涉而口誦嘗在都下文人才子叢萃其家各以所聞見問難於垂胡垂胡左顧右眄應口答無疑如懸河走汞莫有窮已湖陰每指之曰行祕書湖陰或於酒場狼藉賦詩其用事時時有未曉處蓋出於僞而人不能知垂胡嘗侍湖陰於燕坐問之曰相公之詩多以僞語欺人謂後世無人耶湖陰答曰世間畜眼者如君幾人戲作不載於私稿中寧被後人之見耶遂相與一笑湖陰疾病屬垂胡曰君必註吾詩垂胡許諾後十餘年湖陰詩稿印行於世而無註家君問之垂胡則曰吾嘗收其詩稿旣註一卷其下用事及文字率多重出取以遍閱重出處逾去逾多遂迺輟止云云垂胡雖博洽如是顧不閒於詩亦不肯賦詩壬申迎詔時以日記官隨林塘到龍灣習齋權學士 擘 次詔使詩韻有仲宣樓上開襟北子美詩中首路西之句垂胡曰改樓上作賦裏則如何林塘目家君曰歐彼賦裏可矣一座絶倒吾東方諺言喙與賦裏音似故也然曾茶山送曾宏守天台詩頷聯曰興公賦裏雲霞赤子美詩中島嶼靑垂胡豈無據而發此言歟

 

수호 임기는 여러 서적을 널리 읽은데다가 남보다 뛰어난 총기가 있었다. 무릇 9류 백가의 기이한 책과 고문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섭렵하고 입으로 암송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찍이 서울에 있을 때, 문인 재자들이 모두 그 집에 모여들어 제각기 보고 들은 것 중에서 어려운 것을 수호에게 물었는데, 수호가 좌고우면하면서 응해서 답을 하는 데 의문이 없었고 물에 걸려 달리는 수은처럼 끝까지 막힘이 없었다. 호음이 그를 가리켜 늘 걸어다니는 비서라 했다. 호음이 간혹 술자리에서 멋대로 시를 지으면서 그가 용사를 하는 데 때때로 그 출처를 알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대개는 엉터리로 끌어다 썼는데도 사람들은 아지 못하였다. 수호가 한가한 자리에서 호음을 모실 때 물었다. “상공의 시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인 것이 많은데 후세에 알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호음이, “세상에 그대만큼 견식을 쌓은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재미삼아 지은 시는 시고에 싣지 않을 터인데 어찌 후세 사람들 눈에 띄겠는가?”라며 마침내 서로 한바탕 웃었다.

호음이 병중에 수호에게 부탁을 했다. “그대가 내시를 꼭 주석해 주오.” 하자 수호가 허락했다. 십여 년 후에 호음의 시가 세상에 인쇄되어 나왔을 때는 주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수호에게 주가 없는 것을 물으니, “제가 일찍이 그의 시고들을 거두어들여 이미 한 권에 주를 달았는데 그 이하의 용사와 문자는 거듭되는 것이 많고 두루 열람해서 취한 것이 거듭된 것이 더욱 멀고 더욱 많아 마침내 곧 그만두었다.”고 했다.

수호는 비록 널리 통하는 것이 이와 같았으나 돌아보건대 시를 돌아보지 않았고 또 시를 지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임신에 조사를 영접할 때 일기관으로 임당을 수행해서 용만에 이르러 습재 권학사 벽이 조사의 시를 차운한 중에,

 

중선루 위에서 북쪽으로 옷깃을 열고

두보의 시중에 길을 서쪽으로 향하네.

 

라는 구절이 있었다. 수호가, 누상을 부리로 고치면 어떠한가요라 하자, 임당이 아버지를 보며, 저 부리를 쥐어박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자 좌중이 포복절도하였다. 우리나라 속어에 부리와 부리의 음이 유사한 까닭이다. 그러나 일찍이 증다산의 송증광수천태시의 함련에, 흥공의 부 안에는 구름과 노을이 붉고 두보의 시 중에는 섬이 푸르다라 한 것이 있다. 수호가 어찌 근거 없이 이런 말을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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