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余於己酉年以製述官隨柳爺西坰向龍灣行至平壤李蓀谷年踰七十客居城中平壤之老官妓老官奴頗能說少年時行樂云在昔徐學士益爲大同察訪崔學士慶昌爲本府庶尹館李於浮碧樓選妓中之最有名者及善歌者善琴者凡十餘人令擁侍不離崔庶尹每日向夕公務稍屛與徐察訪肩輿到浮碧樓行酒賦詩盡歡而罷逮崔秩滿還朝乃已其不論貴賤優愛才華至如此浮碧樓板上有鄭知常絶句卽雨歇長堤草色多送君南浦動悲歌大同江水何時盡別淚年年添綠波之詩古來傳以爲絶唱一日崔庶尹謂座上曰吾三人每賦詩此樓之上山川魚鳥嘲詠殆盡盍命題賦一絶句耶徐學士曰以採蓮曲命之可也崔學士曰以板上詩爲韻可也三人各把筆沈吟務勝刻苦徐旣書李乃繼就竟推李作爲絶唱其詩曰蓮葉參差蓮子多蓮花相間女娘歌歸時約伴橫塘口辛苦移舟逆上波崔徐之作未必讓於此而特以李作爲第一有閣筆之擧其崇奬布衣之意益可見此則蓀谷爲余備言之以愚見言之第二句相間兩字似未必矣

 

내가 기유년에 제술관으로 서경 유근을 따라 용만을 향해 가다가 평양에 이르니 손곡 이달이 나이 70이 넘어 성중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었다. 평양의 늙은 관기와 관노가 자못 소년 시절의 행락에 대해서 말을 했는데, 옛날에 학사 서익이 대동찰방이었을 때 학사 최경창이 본부 서윤이 되어 부벽루에 묵게 하고 기녀 중 가장 이름이 있는 이와 노래를 잘하는 이, 가야금을 잘 타는 이를, 모두 십여인 뽑아서 옹위하여 모시며 떠나지 못하게 했다. 최서윤이 매일 저녁이 되어 공무가 한가해지면 서찰방과 함께 나란히 남여를 타고 부벽루에 이르러 술을 마시며 시를 지으며 실컷 즐기고는 파하곤 하다가 최경창이 만기가 되어 조정으로 돌아간 뒤에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들이 귀천을 따지지 않고 재주 있는 이들을 우대하고 사랑한 것이 이와 같았다. 부벽루 시판에 정지상의 절구가 걸려 있었는데, 곧 비 그치자 긴 둑에는 봄풀도 파릇파릇, 그대를 남포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꼬,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파도에 더해지니라는 시로 예부터 절창으로 전해 내려온다. 하루는 최서윤이 앉은 자리에서, “우리 세 사람이 매번 이 누각에서 시를 짓는데, 산 물 물고기 새 읊조리기를 곡진하게 했는데 어찌 절구 한 수 짓지 않을 것인가라 했다. 서학사가, 채련곡으로 하면 될까라 하니, 최학사가, 시판의 시로써 운을 삼기로 하자라 했다. 세 사람이 각기 붓을 잡고는 침읍하며 이기려고 애쓰고 있었다. 최와 서는 이미 썼고 이도 곧 이어서 이루었으나 결국 이의 작품을 들어 절창으로 삼았다. 그 시.

 

연잎 들쑥날쑥 연밥도 많은데

연꽃 새에서는 아가씨들 노래 부르네.

돌아갈 때 횡당 모퉁이에서 만나기로 언약하고는

물결 거슬러 어렵게 배를 옮기네.

 

최와 서의 시가 이보다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특히 이의 시로 제일로 삼은 것은 그들이 포의를 추켜세우려는 의도를 알 수 있겠다. 이는 곧 손곡이 나를 위해서 준비한 말이었으니 내 우견으로 이를 말하자면 상간두 자는 타당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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