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月沙辭遞儐任(或云許筠不參從嗾臺欲論云) 五峯代之 顧使亢甚 見儐詩若無見 時或抹改 到百祥樓 因東岳 崔顥題詩黃鶴樓 一律 始蒙許可 伊時 免辱國 賴有此耳 有如許之才 而終不借金鑾一步地 使之徊徨於州郡 昏朝則不足言 窃為淸時惜之

 

월사가 접반사에서 체직되고 오봉이 대신했다. 고천사가 아주 심해서 접반사의 시를 보고서도 못본 척하고는 때로는 혹 뭉개어 고치기도 했다. 백상루에 이르러 동악의,

 

최호가 황학루에서 시를 지었네.

 

라는 율시 한 수에 비로소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때 우리나라가 모욕을 면한 것은 이 시가 있어서였다. 이러한 재주를 가지고서도 끝내 한림원에 한 발자국도 내디디지 못하고 고을로 방황하게 했으니 광해군 때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맑은 때가 되어서도 남몰래 애석히 여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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