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華使唐皐之來 容齋為儐相 湖陰鄭士龍 退休堂蘇世讓 安分堂李希輔 為從事 華使絕不吟咏 到安州 始次板上韻 兩聯云 佳句偶來樓上見 旅懷秪向客邊傷 龍飛有詔頒高麗 鳳去何人歎楚狂 華使以示儐伴諸公 安分易之 頗摘疵病 退休以為 句語深厚 必是大手 湖陰亦以為然 容齋曰 麗字音尼 恐失平仄 退休曰 不然 高麗之名 本取山高水麗之義 中國人雖作尼音 我國則猶從仄音 華作必因是也 容齋然之 自此以後 酬唱不絕 華作愈出愈好 容齋乃歎曰 天才也 華使亦推容齋為騷壇老將 戒副使 切勿浪作云

 

중국 사신 당고가 왔을 때 용재가 접반사가 되고 호음 정사룡 퇴휴당 소세양 안분당 이희보가 종사관이 되었는데, 중국 사신이 절대로 시를 읊노리지 않다가 안주에 이르러 비로소 시판의 운을 차운해서 두 연을 지었다.

 

빼어난 시구를 어쩌다 누대에서 보니

나그네의 심회를 더욱 아프게 하네.

전자의 조칙을 고려에 내리시지만

봉황이 떠나니 어느 뉘 초광을 탄식하리.

 

중국 사신이 접반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니, 안분이 쉽게 보고 자못 병통을 지적하였고, 퇴휴는 어구가 심후해서 틀림없이 대가일 거라 여겼고, 호음 역시 그렇게 여겼다. 용재가, 여자는 음이 니이므로 평측을 잃을까 싶다고 하니. 퇴휴가, 그렇지 않다. 고려라는 이름은 본래 산고수려의 뜻에서 취한 것이니 중국인들이 비록 니음으로 시를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측음을 따르니 중국 사신의 시도 틀림없이 이 때문일 것이다라 했고 용재도 그러했다. 이후부터 수창이 끊이지를 않았는데 중국 사신의 작품은 나올수록 더 좋았다. 용재가 이에 탄복하며 천재라 했다. 중국 사신도 용재를 칭찬하며 소단의 노장이라 했고 부사에 경계하기를 절대로 섣불리 시를 짓지 말라고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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