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申企齋光漢 以詩名世 尤工七絕 甞過金參判世弼舊居 感作一絕曰 當時逐客幾人存 立馬東風獨斷魂 烟雨介山寒食路 不堪聞笛夕陽村 寄送成遯齋世昌 要和 遯齋以為 詩固淸絕 而其用介山為料者 特因寒食而寓言爾 豈眞有此等山名耶 試走一蒼頭探訪 則果有所謂介峴者 距金居百弓地 遯齋擊節曰 是果不可及矣 停不和 蓋詩家引事 雖非上乘 而精襯如申詩者 未易得也 遯齋稱賞 宜矣
기재 신광한은 시로써 세상에 이름이 났으며 칠언절구가 아주 공교로웠다. 일찍이 참판 김세필의 옛집을 지나면서 느낌을 쓴 절구 한 수.
당시에 쫓겨난 사람 중 몇이나 살아 있는가
봄바람에 말 세우고 홀로 애를 끊네.
안개비 내리는 개산 한식날 길에는
석양녘 마을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 차마 못 듣겠네.
둔재 성세창에게 붙여 보내고는 화답을 요청했는데 둔재는, 시가 참으로 맑고도 빼어나지만 그가 개산을 소재로 삼은 것은 다만 한식이기 때문이어서 빗댄 것이지 어찌 참으로 이런 유의 산 이름이 있겠는가라 했다. 시험삼아 노복 하나를 보내 봤더니 과연 소위 개현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는데 김의 거처에서 백궁은 떨어져 있었다. 둔재가 무릎을 치며, 이는 정말 미칠 수가 없는 것이다라 하고는 그만두고 화답하지 않았다. 대개 시인들의 용사는 비록 최고의 경지는 아니나 신의 시처럼 교묘하게 들어맞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둔재가 칭찬한 것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