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天使祈順 奉詔來也 徐四佳居正為遠接使 一日祈順 遊漢江濟川亭 四佳先唱 風月不隨黃鶴去 烟波長送白鷗來之句 有若挑戰者 天使卽次曰 百濟地形臨水盡 五臺泉脉自天來 回顧四佳曰 是否 四佳色沮 先輩以先交脚後仆地為譏 蓋烟波之句 只咏景物 着處可用,百濟之句 漢江形勢,模得眞狀 祈以中華之人 足未會到 而領略山川 輪入一句 立談之間 造語絕特 宜乎 四佳之膽落也 余甞與諸文士論詩 余曰 四佳此句 全用中菴蔡洪哲詩一聯 而只改相逐二宇 為長送 可發一哂 諸人皆駭然曰 四佳 國朝之大家 豈如是剽竊他人全句乎 必是中菴踏襲四佳 而用之矣 余曰 中菴卽麗朝人 此詩乃月影臺所賦 而明載於東文選 則蔡用徐作耶 徐用蔡作耶 且東文選 卽四佳受命所撰者也 眼目宜慣 欲竪天使之降幡 故為取用爾 諸人始乃釋然 蓋後世之傳誦此句者 皆稱四佳之作 不知中菴之為本主 余自笑曰 中菴不幸遇四佳 而沒其警語 又幸遇余而辨其主客 若使中菴有知於九原 必當鼓掌稱快矣
중국 사신 기순이 조칙을 받들고 왔을 때 사가 서거정이 접반사가 되었다. 하루는 기순이 한강 제천정에서 유람할 때 사가가 먼저 읊은,
풍월은 황학 따라 가지를 않았고
안개 속 파도는 늘 흰 갈매기를 보내오네.
라는 구절은 마치 도전하는 것 같았는데 중국 사신이 즉시 차운하여,
백제의 지형은 물에 이르러 다했고
오대산 샘물 맥은 하늘에서 내려오네.
라 읊고는 사가를 돌아보면서 됐느냐고 하니 사가는 기가 질렸다. 선배들이 먼저 발을 걸었다가 땅에 엎어졌다고 놀렸다. 아마도 연파라는 구절은 다만 경물을 읊조린 것으로 어디에나 쓸 수 있다. 백제라는 구절은 한강의 지형을 실제의 형상으로 그려내었다. 기순은 중국인으로서 와본 적도 없는 산천을 알고서 한 구절에 집어넣었고 말하는 순간에 말을 만드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으니 사가가 낙담한 것도 당연하다. 내 일찍이 여러 문사들과 시를 논하는데 내, 사가의 이 구절은 중암 채홍철의 시 한 연을 그대로 쓴 것인데 다만 상 축 두 자를 장 송으로 고친 것일 뿐이니 한바탕 웃음거리가 될 만하지요라 하니, 여러 사람들이 놀라, 사가는 우리나라의 대가인데 어찌 다른 사람의 시구를 그대로 표절할 리가 있을 것인가. 틀림없이 이는 중암이 사가를 답습하여 쓴 것일 것이요라 했다. 내가, 중암은 고려 사람인데 이 시는 월영대에서 지은 것으로 동문선에 분명하게 실려 있으니, 채가 서거정의 작품을 사용했겠는가, 서가 채의 작품을 사용했겠는가. 또 동문선은 사가가 명을 받아 편찬한 것이니 안목에 익었을 터이니 중국 사신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일부러 가져다 쓴 것일 뿐이오라 했다. 여러 사람들의 의심이 그제야 풀렸다. 대개는 후세에 전하여 암송되는 이 구절이 다 사가의 작품이라고 말하면서 중암이 본래 주인이라는 것을 아지 못한다. 내가 혼자 웃으며, 중암이 불행히 사가를 만나 그의 빼어난 싯구를 잃었고 또 다행히 서를 만나 주객을 가리게 되었다. 만약 중암이 구천에서라고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할 것이다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