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南壺谷龍翼所選箕雅 載余族會祖慕堂 挽栗谷詩 七言律 而其頷聯曰 洛下政逢司馬日 蜀中新喪孔明時 改孔明二字 為臥龍 豈壺谷誤聞而然耶 司馬臥龍為巧對 故抑以其私見改之耶 不聞於其子孫 而改下則謬矣 慕堂亦豈不知司馬臥龍之為巧對 而乃曰 孔明者 非但取其響韻 臥龍則隱時之稱 旣為漢相以後 不當用此號也 余堂叔泛翁 亦常曰 儷語云 孔明不死 雖復漢而何難 召虎再生 此興周之有望 龍虎之對 不為不巧 而儷中以為不對 王父不曰臥龍 而曰孔明 亦用此也 此豈非明證乎 且金柏谷得臣 龍山一絕 起句曰 古木寒雲裡 秋山白雨邊 壺谷選入此詩於箕雅 而以寒為黃者 亦何耶 豈以黃與白色對而然耶 余與柏谷最相善 故慣聞此詩 其所著詩話及本集中 載此詩 而亦曰寒雲 然則箕雅之誤錄 可知也
호곡 남용익 가려뽑은 기아에 실려 있는 내 족증조부 모당의 칠언율시 율곡 만시의 함련.
낙양에서 바로 사마를 만난 날
촉중에서 막 공명을 잃은 때로다.
를 고쳐 공명 두 자를 와룡으로 했으니 어찌 호곡이 잘못 듣고 그런 것인가? 사마와 와룡을 교묘한 대구를 위해서 일부러 그가 그렇게 바꿔본 것인가? 그 자손에게서도 듣지를 못했으니 아래 글자를 고친 것은 잘못이다. 모당 역시 사마와 와룡이 교묘한 대가 된다는 것을 어찌 몰랐을 것인가? 이는 곧 공명을 쓴 것은 다만 그 향운만을 취한 것이 아니다. 와룡은 은거했을 때의 칭호니 이미 한의 재상이 된 후에 이 호를 쓰는 것이 부당하기 때문이다. 내 당숙 범옹도 늘, 대우에서는 공명이 죽지 않았으면 비록 한을 다시 일으키는 일도 어찌 어려웠겠는가? 소호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는 주를 일으킬 희망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용과 호의 대구가 공교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대우문 중에서는 대가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와룡이라 하지 않고 공명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어찌 명확한 증거가 아니겠느냐라 하였다. 또 백곡 김득신의 용산이라는 절구의 기구.
고목은 차가운 구름 속에 있고
가을 산은 부연 비 저편에 있네.
호곡은 이 시를 기아에서 뽑아 넣었는데 한을 황으로 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어찌 황색과 백색이 대가 된다고 여겨서 그런 것인가? 나는 백곡와 아주 잘 지냈으므로 이 시를 귀에 익도록 들었다. 그가 지은 시화와 본집 중에도 이 시가 실려 있다. 그러나 역시 한운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즉 기아가 잘못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