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詩家最忌剽竊 古人曰 文章當自出機杼 成一家風骨 何能共人生活耶 此言甚善 而先輩亦多犯之 李容齋詩 一身千里外 殘夢五更頭 用唐顧況詩 一家千里外 百舌五更頭之句 林石川 江月圓還缺 庭梅落乂開 用金克己 多情塞月圓還缺 少格山花落乂開之句 蔡湖洲 荒林秋盡雨 窮店夜深燈 用唐司空圖詩 曲塘秋盡雨 方渚夜深船之句 三人皆沿襲前人詩 蔡又有贈僧詩云 法門有三乘 最下是輪回 去從何處去 來從何處來 盡用佛家語也 金河西麟厚詩 載續靑邱風雅 其詩云 來從何處來 去從何處去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許 蔡下句 全用金上句 此李相國所謂拙盜易擒體歟 金息菴斯百 甞以接慰官 至東萊府 登海雲臺 俯瞰滄溟浩浩漫漫 一碧萬里 賦詩一絕曰 錦帳出季倫 古人尙云侈 誰家碧綾羅 鋪盡千萬里 蓋出於麗朝崔拙翁瀣 咏雨荷詩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如何碧玉斗 竟日量明珠 金乂於滄海中 見時有微波獨湧雪色亂洒 咏一絕曰 聞道海觀音 高拱蓮花座 怳有白玉童 擎出雙雙朶 蓋出於宋楊大年 咏白芙蓉詩 昨夜三更裡 姮娥墮玉簪 馮夷不敢受 捧出碧波心 皆模倣古作 終無痕跡 眞得奪胎之法 為詩者 宜可戒可法

 

시인은 표절을 가장 꺼린다. 옛 사람들은, 글은 응당 자기 틀에서 나와서 일가의 풍골을 이루어야 한다. 어찌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라 했다. 이 말은 아주 옳다. 그러나 선배들도 이를 범한 이가 많다. 이용재 시.

 

이 몸은 천 리 밖에 있는데

오경 벽두에 새벽꿈 꾸네.

 

는 당나라 고황의 시,

 

집은 천 리 밖

새벽에 떼까치 우네.

 

라는 시를 쓴 것이다. 임석천의,

 

강에 떴던 달 둥글었다 다시 이그러지고

뜨락의 매화는 이울었다가는 또 피네.

 

라는 시는 김극기의 다음 구절을 쓴 것이다.

 

다정한 변방의 달은 둥글었다가 이지러지고

소격산의 꽃은 졌다가 또 피네.

 

채호주의,

 

거친 숲에 늦가을 비 그치고

시골 주막 늦은 밤에도 등불 켜놓았네.

 

라는 구절은 당나라 사공도의 시,

 

굽이진 못에 늦가울 비 그치고

네모난 깊은 밤에 배 띄우네.

 

라는 구절을 쓴 것이다. 이 세 사람 다 앞 사람들의 시를 답습한 것이다. 채의 증승시,

 

법문에는 삼승이 있나니

가장 낮은 것이 윤회로다.

가기는 어디로 가며

오기는 어디서 오는가.

 

는 불가의 말을 쓴 것이다. 하서 김인후의 속청구풍아에 실려 있는 시,

 

오는 것은 어느 곳에서 오고

가는 것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오감이 정해진 자취가 없는데

유유히 한평생 살아가려네.

 

에서 채는 아래 구절을, 김은 윗 구절을 그대로 쓴 것이다. 이것이 이상국이 말한 졸도이금체라는 것이 아닌가. 선비 김식암이 일찍이 접위관으로서 동래부에 이르러 해운대 올라 푸른 바다를 굽어보니 넓고넓어 푸른 바다가 만 리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는 절구 한 수를 지었다.

 

비단 장막은 계륜에게서 나왔다지만

옛사람들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했네.

누가 푸른 비단을

천만 리에 펼쳐 놓았나.

 

아마도 고려조 졸옹 최해의 영우하시에서 나왔을 것이다.

 

후추 팔백 섬을 갈무리했다가

그 어리석음은 천 년이나 조롱당했네.

어떤 푸른 옥국자 같은 것으로

종일 맑은 구슬을 헤아리는가.

 

김이 또 푸른 바다 가운데서 잔잔한 물결 속에서 유독 흰색이 솟아올라 어지럽게 뿌리는 것을 보고는 절구 한 수를 지었다.

 

듣자 하니 바다의 관음보살이

높이 연화대를 받들었다 하대.

하물며 백옥동이 있어

쌍쌍이 꽃송이를 받들고 오네.

 

아마도 송나라 양대년의 영백부용에서 나왔을 것이다.

 

어젯밤 삼경녘에

항아가 옥비녀를 떨어뜨렸는데

풍이가 감이 받지 못하여

받들어 푸른 파도 가운데 두었네.

 

모두 옛 작품을 모방한 것인데도 끝내 흔적이 없어 참으로 환골탈태의 묘법을 체득한 것이니 시를 쓰는 이들이 마땅히 경계하고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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