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바위

거북바위





奇巖怪石


그냥기냥 돌인데 멀리서 보았더니

거북도 되었다가 자라로 변신토다

못 믿을손 사람눈커니, 따로없네 조화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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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들이 벌이는 전쟁의 목적은 약탈이다. 그래야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은 누구보다 더 먼저 더 많이 약탈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야 병사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기에 약탈을 방조 아니 촉구하는 장군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동족간의 전쟁이 아니고 이민족간의 전쟁이면 더욱 참혹하다. 몽골족은 여러 부족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그 우두머리를 單于라 했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족과 흉노는 쉴새없이 침략과 방어를 거듭해 왔다. 그래서 한 원제는 침략해온 선우를 달래기 위해 양녀로 삼은 궁녀 왕소군을 선우의 왕비로 주어 화친을 맺었고, 볼모로 잡혀가 왕비가 된 왕소군을 두고 당나라 동방규가 지은 한 시 <소군원>. 그 한시 중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네"가 가장 많이 인구에 膾炙되어온 구절이다. 우리가 가서 본 대로 봄이 다 가는데도 그곳은 봄이 아니었지 않은가. 예나 이제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곧 여자였다. 힘없는 백성이었고.



東方虬昭君怨

 

漢道方全盛 (한도방전성) 한나라는 막 융성한 때여서

朝廷足武臣 (조정족무신) 조정에는 무신들도 많은데

何須薄命妾 (하수박명첩) 어찌하여 박명한 여인에게

辛苦事和親 (신고사화친) 슬프고 괴로운 화친을 시키나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소군이 구슬 안장 추어올려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에 오르니 홍안에는 눈물 흐르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사람인데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에는 오랑캐 땅의 첩이로세

 

掩淚辭丹鳳 (엄루사단봉) 눈물을 가리고 궁궐을 떠나

含悲向白龍 (함비향백룡) 슬픔을 머금고 백용구로 향하네

禪于浪驚喜 (선우랑경희) 선우는 놀라고 기뻐하지만

無復舊時容 (무복구시용) 다시 옛 모습은 돌아오지 않으리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화초도 없어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네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저절로 허리띠가 느슨해짐은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몸매를 다듬어서가 아니라네

 

萬里邊城遠 (만리변성원) 만 리 밖 멀고 먼 변방의 성에

千山行路難 (천산행로난) 산첩첩 가는 길 험난하네

擧頭惟見日 (거두유견일) 머리 들어 해를 바라볼 뿐이니

何處是長安 (하처시장안) 어느 곳이 장안이런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한 정복자 징기스칸의 동상아니 銀像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 군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군데 많이 있단다. 그들은 기마민족이어서 이동성이 탁월했다. 더구나 건량을 가지고 다녔으므로 마상에서 건량을 먹어가면서 진격을 하는 까닭에 상대의 예상을 뒤엎고 벼락같이 들이닥쳐 공격을 해대니 당할 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광대한 칸제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직 고려만은 여러 차례 침략을 하면서도 병탄을 하지 못하고 사위나라로 부르며 고려왕의 시호에 忠자를 얹어 놓게 하고는 자치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탐라까지 물러나면서 저항을 한 그 유명한 삼별초의 항쟁이 아마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 역사의 기록은 이긴 자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삼별초의 난'이라고 부르고, '삼일운동'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겨우 동학란이라 부르다가 이제 겨우 동학혁명이라 고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의식 속에는 알게 모르게 事大가 자리잡고 있다. 그 예로 지금도 우리는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쓴다..

"미국에 내일 들어간다."  주체가 누구란 말인가? 미국에 내일 나간다고 왜 아니하는가? 미국이 고국인가? 신종 아니 이제는 백년이나 된 사대의식이다. 이를 누구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라 했다.

 


독수리를 잡아 매놓고 구경거리로 삼는다. 손가락을 돌리면 독수리가 그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휘휘돌린다. 이 독수리는 얼마 동안 그렇게 묶여 방문객의 놀이개감이 되었다가 또 방생되고 다른 독수리가  잡혀온단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두지 않는 것이라 다행이라 할까?



칸의 동상 아니 은상 옆에는 게르가 있고 그 앞에 기마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그 옛날 저 병사들이 나타나면 백성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은상 앞에서 180도 눈을 돌리니 저 멀리 산야에 게르들이 즐비하다. 저 산야가 모두 파랗게 물들면 얼마나 장관일까? 7,8,9월이 그렇단다. 그때는 관광비용도 3배로 뛴단다.

하얀 눈 같아 보이는 것은 강이다. 밤새 기온차로 얼었던 얼음이다. 4월 중순인데 말이다. 春來不似春이 실감나지 않은가?

은상 앞 독수리 곁에 거만하게(?) 버티고 있는 이가 우리의 기사 가나다. 옛날 인간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저 기마병과 거인처럼 독수리 앞에 버티고 있는 몽골인 가나가 겹쳐지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독수리 嘆


어쩌다가 저 독수리 순한 양되어

이 사람 저 인간 지문을 봐주느라

오늘도 분주하지만  얻은 것이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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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열사 기념공원 한 켠에 자리한 게를 두 채다.

이태준 열사


빼앗긴 내 조국을 멀리도 떠나와서

물 설고 산 선 고비 온갖 고초 겪어내고

그래도 웅큼이라도 모으고느 또 모아


행여나 겨레의 빛 되찾을까 노심초사

병자 구완 의료인의 지난한 그 세월을

忍苦코 독립자금을 상해까지 보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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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기념탑이다. 일명 자이승전망대라고도 하며, 우란바타르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높이가 27미터이다. 오른 손에는 승리의 배너가, 왼손에는 자동소총이 들려 있다. 계단을 수도 없이 많이 올라가야 한다. 내려오는 것이 두려운 이는 아니 올라감만 못하다. 꼭대기에는 원형 광장이 작게 펼쳐져 있고 주위 벽에는 화려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우리가 올라갔을 때는 4월 12일이어서 날씨 값을 하느라고 무척이나 추웠다. 덜덜 떨 지경이어서 어떤 이는 괜히 올라왔다는 푸념마저 내뱉는다. 우란바타르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풍광이 참 멋지다. 바로 아래에는 우리나라와 몽골 불교가 합작한 여래상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완공이 안 되어서 어수선하기는 하다.


날씨는 말 그대로 청명하지만 추워서 후강 선생처럼 모두가 뒤집어쓰고 있다. 추운 걸 어쩌랴?

그렇게 추운데도 기념촬영은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 아닌가! 표정이 '나, 많이 춥습니당!'이다.



우란바타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전사 영웅들의 모습이다.

그래도 그 많은 계단을 추위 속에서 오르고서는 앉아서 쉬고들 있다. 우리 일행 화이팅!

전사들의 행동들을 형상화해서 그린 벽화들이다. 우리의 호프인 가이드 졸라 양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고 우리 일행은 경청. 박총부가 제일 진지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추운 걸 어쩌랴?.

우리 권철 군은 마치 거인 같다. 벽화에 나오는 영웅들인 전사의 모습을 보는 듯. 우리의 선회장께서는 벽화에 심취하신 듯 고개는 아프지 않으신지? 역시 손을 주머니 안.

내려다보이는 이 불상이 한몽합작품이다. 아직을 완공전이란다. 거대하다.

자이승 전망대


하늘도 쾌청 맑아 온 계단 오르르니

발아래 펼쳐지는 바타르 시가지여

정복자 칸의 후예로 이 땅을 되찾았네


영웅은 간 데 없고 돌비석만 외로워

한 손에 횃불이요 한 손엔 소총이라

인간의 더러운 욕망 저 부처는 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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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4박5일 동안 안내해 줄 가이드 졸라양이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밝은 두 애기 엄마란다.

우리가 4박5일 동안 타고 타닐 애마 24인승 승합차 가나가 운전기사다. 교통지옥의 도로를 잘도 끼어들어 우리를 안전하게 안내하느라 무진 애를 쓴 가나. 어떤 때는 아찔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가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웬만한 접촉사고는 서로 금방 해결하고 헤어진다고 한다. 오래 시간을 끌면 교통방해로 양쪽 모두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접심을 먹고 승하자를 타고 가다가 차 안에서 저런 간판이 눈에 들어와 반가와 찰칵 한 컷. '외국에 가면 누군들 애국자가 아니랴'라는 말에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Korean Food


'한국 25' 반갑고야 한국식품 가게라니

외국에서 살다보면 그리움에 사무쳐서

내 나라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난다더니


박물관 건물과 현관 앞에 비치된 쇠종이다. 몽골의 역사가 시대별로 펼쳐져 있어 그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소천이 내게 왈,

"이곳에서 그 먼 나라까지 쳐들어가는 멍청한 짓거리를 왜 했을까? 참 멍청한 놈들 아닌가?"

두 번, 세 번 듣다가 내가 왈,

"사막지대고 초원이어서 유목민족인 그들에게는 먹거리와 생필품이 모자라 약탈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노획물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한 거지요. 약탈을 방조한 게 아니라 권장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던 전쟁. 약탈물의 대부분은 재물 그리고 여자였다오."라 했더니, 소천이 고개를 끄덕끄덕.



달리는 버스에서 찰칵한 것이라 정상적으로 대상을 다 담지 못했다. 부분을 연결해서 봐야 한다. 제9대 밧드가 거처하던 집이란다. 우리로 말하면 宮殿에 속한다고나 할까. 고색이 창연한 유일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이었다. 마지막 지배자, 티벳으로 말하면 마지막 다라이라마와 같은 지위를 가진 이가 살던 궁전이란다.


그리고는 우리는 국립백화점엘 갔다. 마지막 날에 다시 쇼핑을 할 거라는 가이드의 약속은 안 지켜져서 백화점 안을 다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1층 식료품부만 둘러보며 쇼핑으로 만족. 저들은 모두가 수입한 과일들이란다. 내 아내는 포도가 정말 맛있다고 감탄 감탄 또 감탄. 어디나 그렇듯 백화점 안에서는 찰칵을 꺼려한다. 여기도 마찬가지여서 사진이 이게 다다. 아쉽다.


백화점 정면이고 그 앞에 선 우리 일행들이다. 누군가는 빈 손, 누군가는 뭔가 비닐봉지도 들고 있다.


여기는 백화점 건너편 광장이다. 모두가 뭔가 한가락씩 하시는 분들 같다. 멋지다.

광장의 5인


쇼핑도 마쳤겠다 마음도 가벼워서

너도나도 질세라 선그라스 끼고서는

보무도 당당 경쾌히 전진전진 또 전진


우란바타르 기차역이다.

우란바타르 거리의 집들로 차 안에서 찰칵한 풍경. 울긋불긋 모두가 새집들이다. 이제 막 개발하는 시가지여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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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0시20분. 장성병원 주차장 앞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아니 보인다. 루치아는 내가 너무 서둘러서 이렇게 추운 데서 떠는 거라고 불평이고, 사람들은 아니 나오고 그래서 따르릉을 했더니 아직 출발도 아니 했단다. 내가 참 무참하다. 기다리기를 한참 콜롬비아 앞쪽에서 누군가가 내는 소리가 익숙해서 이제 오는가 보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밤에도 까맣게 보이는 24인승 차가 도착 우리를 싣고 출발. 한 밤중을 달린다. 김해공항 청사에 도착해 보니 문들이 꽁꽁 잠겨 있고 들어갈 수도 없다. 4시반에 문을 연단다. 그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 3시가 아니 되었으니 기사양반이 운전을 아주 잘 한 것인가 보다. <모두투어>에서는 김해공항 사정을 몰랐던 것일까, 알았던 것일까?

들어갈 데도 없어서 공항청사를 나와 편의점 앞에 차를 대놓고 차안에서 1시간 반을 대기. 창 이런 여행도 있나 보다 하고 만다.

김해공항


꼭두새벽 장성을 어쩌나고 출발해서

김해청사 도착하니 문들이 모두 꽁꽁

그래서 하는 말들이 여행사는 알까나


2층 <모두투어> 앞에서 또 한 시간여를 기다려 여권을 받고서는 짐을 붙이고 항공권을 받고도 또 기다리는 일만 남아서 그 틈에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식당도 6시가 되어야 문을 연대서 또 그 앞에서 기다려 입장. 다들 전복죽을 주문.

민생고를 해결하고 나도 시간이 남는다. 공항이라는 곳이 의례 기다림의 연속 아닌가? 그래서 3번 탑승구 앞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소천 선생이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박회장과 나는 열심히 경청.

소천 선생이 어느새 공항출발시간을 넣어 사진을 편집까지 하셔서 카톡에 올리셨다.

그런데 두 분이 뭘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시는지?

몽골행


기다리면 뭔가가 이루어지기는 할까

그 시간의 소망은 오직 몽골행 탑승뿐

시간에 꼭 맞추어서 움직이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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