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을 심는다고 둥글레 앉힌다고

낮 지나 삽 괭이 어깨에 둘러매고

텃 밭을 파고 또 파고 이랑고랑 만드네

 

하던 일 마치고는 허리펴니 살 것 같아

저 멀리 앞산 눈길 발 아래 머물다가

앗뿔사 이것이 뭐냐 노루귀가 아닌가

 

어찌나 놀랍던지 한 달음에 달려들어

눈 씻고 다시 봐도 연분홍 노루귀라

이놈아 어디 숨었다 이제서야 왔느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낮이 지나 텃밭을 일구고 그곳에 더덕이랑, 둥글레랑 심느라 허리가 끊어질 듯하다. 이제는 두 줄만 더 파면 되겠네. 어서 끝내고 쉬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는데, 아 글쎄 눈을 들어보니 텃밭 뒤로 우리 산자락에 연분홍 노루귀란 놈이 귀를 쫑긋거리고 있지를 않은가! 얼마나 놀랐던지......... 세상에 가까운데 두고 그 많은 세월을 모르고 지냈다니 눈 뜬 장님이로고. 하 기분이 좋아 한 컷 찰칵 할 수밖에. 조물주께 감사.

출처 : 素亭김옥자
글쓴이 : 지누랑 원글보기
메모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장독대  (0) 2009.12.31
[스크랩] 우리집뒷산매화야  (0) 2009.12.28
[스크랩] 1226탐사기  (0) 2009.12.26
[스크랩] 아! 향일암  (0) 2009.12.24
[스크랩] 수유  (0) 2009.12.21

 25일 크리스마스. 10시 반 당숙모를 모시고는 미사에 다녀와서 하루 종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는 9시. 커텐도 내리고 보던 티비도 끄고 막 내 방에 들어가려는데 따르릉이 울린다. 반가운 소식. 회장님께서 내일은 출사를 가자신다. 가까운 어디 호수를 수소문하시겠단다. 나야 不敢請이언정固所願이라. 만약 곁에 내 안 식구라도 있어서 날 봤다면 또 그랬을 거다.

"그냥 얼굴에서 빛이 나고 눈이 반짝반짝한다니까요."

황고에게 5시 반까지 우리집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고는, 대충 짐을 꾸리고 일기예보를 보니 중부지방과 서해안에 밤에 눈이 온단다. 걱정반, 기대반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3시 반이다. 마치 내가 옛날 어릴 때 소풍간다고 잠을 설치는 식 바로 그 꼴이 아닌가!

5시 반까지 온다던 황고는 소식이 없고, 6시가 다 되어 가는데 회장님께서 따르릉. 곧 도착하신단다. 황고에게 전화하니 집이란다. 금방 출발한다는 걸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성 IC 못미쳐 있는 주유소에서 동승. 그리고는 나주 삼한지로 출발.

새벽의 깜깜한 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서 찾아가니 생소하기 그지없다. 그곳에는 사암지는 있어도 삼한지는 없다. 어둠 속에서 헤매기를 한 20여 분 하고 나니 암담하다. 사람이 없어서 물을 곳도 마땅히 없다. 갈대가 무성한 둑방길을 돌고 마을 길을 돌아도 결국은 사암지다. 회장님 기지를 발휘하시어 무슨 촬영장 앞에 차를 대고는 약도를 살피신다. 그 사이 황고는 곁에 있는 팻말에서 그곳 어느 음식점 전화번호를 보고는 그곳에 전화해서 비로소 갈 곳을 찾는다.

아까 갔던 길로 다시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나오고 찾던 사행천이 눈에 들어오고 산위의 촬영지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찾던 바로 그곳. 날은 밝아오고, 저 멀리 산 위에 부연 햇살 기운이 보이기는 한데 구름이 끼어 일출은 기대난이지 싶다.

 

사행천 뒤로 부연 하늘에 해가 솟아오르려 하나 보다

 

蛇行川

질펀한 논밭이여 그 젖줄 한 줄기가

새벽 기운 가득 안고 흘러서 가노라니

삼한의 어린 넋들아 이제서야  오르나

 

물안개가 피어나서 사행천을 휘감아 저 멀리 촬영장의 누각까지 올라오는 날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섰다. 아마면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할까나?

찰칵을 거두어들고는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돌아서 모퉁이 안고 도니 그곳에 정자 하나 우뚝도 솟아 있다.

그 앞에 서서 황고가 하는 말.

"저 예쁘게 찍어 주실 거지요?"

그래서 한 컷 찰칵.

 모두들 산길을 오르는 모습이 가관이다. 손들이 없지 않은가! 춥다 춥다는 얘기다.

그래도 비탈길을, 통로라고 아마도 시에서 나무들을 잘라 길을 터 주었던 모양이다. 여기 저기 잘린 소나무가 널려 있다. 이 소나무들은 나이들은 많은 것도 같은데 하나같이 작달막하다. 아마도 바람탓에 자라기를 더디 하나 보다. 황고와 회장님 찰칵에 여념이 없으시다. 아마도 황고는 멀리 있는 누각과 산을 잡을 것이고, 활빈당님은 찰칵하는 우리를 몰래 잡으시는 모습이리라. 나무에 숨으신(?)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저렇게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기대면 떨림을 줄일 수 있다. 그게 바로 삼각대 대신 찰칵하는 방법이다.

 

 

산 위는 전망이 참 좋다. 차가운 공기면서 상쾌하기만 하다. 내려오는 길에는 겨울 산이라서 오로지 청미래열매만이 여기저기 빨갛다.

 

삼한지는 연못이나 호수가 아니다. 땅이름이다. 삼한지라는 호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걸 호수라고 알고 간 우리의 선입견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걸 연못이라고 한참을 그 어둠 속에서 찾아 헤맸으니 말이다.

날이 훤이 밝아서 돌아 나오는 길에서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햇살이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받으시는 우리 회장님 말씀.

"누가 언제 저 구름을 찢어 놨나 봐요!"

그래서 빛이 샌다는 이야기다. 달리는 찻속에서 창도 안 내린 채 찰칵한 사진이니 양해하시기 바란다.

 인제 귀로. 한참을 가다가 회장님 핸들을 잡으신 이후로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하신다. 차 방향이 이상하다는 거다.

'장성 가는 길 맞는데요?" 했더니 회장님 왈,

"아니, 여기까지 와서 기냥 간다고요? 영산포 강을 따라가며 여기저기 널린 모래섬들이라도 구경하고 가야지요."다. 그런데 이정표가 이상하다. 자꾸 영암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는 거다. 알고 보니 나주에서 영암 가는 길과 광주 장성 가는 길이 갈라지게 되어 있었다.

영산강 변에 다다르니 그곳에 친절하게도 찰칵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강을 내려다보며 감탄하고 있다가 눈을 드니, 저 멀리 산이, 하늘이 다가온다.

 

물오리

강물 새 노니다가 잠깐 새 날아올라

맵시도 우아할사 사뿐히 내려앉아

강물에 원을 그리는 그 솜씨야 물오리

 

 경치에 취해 있는 사이 우리 회장님 찰칵에 여념이 없으시다. 하필이면 그곳에 갇혀 있으실까? 멀리 파랗게 보이는 것이 유채다. 가을에 심어서 겨울을 나고 나면 이른 봄에 노랗게 꽃을 피워 아마도 강변을 장관으로 바꾸어 놓으리라.

그제서야 배가 소식을 보내왔나 보다. 회장님 왈,

"오새 곰이 비쌉니까?"

내가 무슨 말인지를 몰라 뻥하니, 빙그레 웃으신다. 곰탕 한 그릇 하자시는 말씀이시다. 내가,

"아점으로 하시지요." 하니, 부리나케 먹을 것을 찾으신다. 빵도 드시고, 커피도 드시고, 과자도 드신다. 이따 아점 맛이 없을 거라 해도 막구가내시다. 내 기억에 회장님은 평소에 아침은 거르시고 점심으로 떼우셨는데, 식습관을 바꾸셨나?

평림댐 아래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상상하고 왔더니 아니 이게 웬 말? 바빠서 안 된단다. 두부 만드시기에 여념이 없으시댄다.

"아뿔사! 평소에는 미리 전화도 잘 하고 오더니만 오늘은 그냥 왔더니 이렇다."

황고 왈,

"그러게요."

배는 고프지 다음 들를 곳이 '요월정'이니 동화에서 해결해야 했다. 추어탕. 배가 고프니 맛이 좋을 수밖에. 한 그릇씩을 뚝딱 해치우고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출발.

 

한 번 와 봤다고 눈에 익숙하다. 솔숲 사이에서 요월정이 우리를 반긴다. 머리에는 눈까지 아직 얹고 있다. 그 아래 그나마 남아 있는 강물과 절벽이다. 朝鮮第一黃龍里라는 고사가 이제는 무색하다. 강물이 없고 하늘과 숲만 있으니 격이 떨어지고 말았다. 거기다가 인공이 가해져서 볼상 사나와지고 말았다. 그곳에 송덕비가 웬 말인가! 차라리 그대로 두고 훼손이나 말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어쩔 것인가! 체념하고 왼쪽으로 돌계단을 밟으며 오르니 이런 소나무 갈비가 쌓인 오솔길도 나온다. 그나마 감지덕지. 

 

 

 그 길을 돌아드니 반가운 요월정이 눈앞에 버티고 섰다. 단청도 산뜻하다. 달을 부르는 정자라! 얼마나 달맞이가 기막혔으면 저런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요월정이라, 요월정이라!

 

  앞마당에 올라서니 잘 단장해 놓은 무덤과 비와 문무백관상이 무성한 소나무숲 사이에 자리잡고 앉았다.

 소나무 굵은 몸매 사이로 저 멀리 산들이 웅자를 뽐낸다.

그곳을 관리하는 분이 오늘은 출타 중이신가 보다. 다 잠겨 있어 차 한 잔 못 얻어 마시고 돌아나오는 길이 어지럽다. 시멘트로 범벅이 되어 있는 길.

 

 

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지나친 정비가 오히려 본래 모습을 손상시키는 일이 다반사니 이를 어쩔 것인가! 그들은 다 잘 한다고 하는 일일 터인데, 한번 훼손이 되어 버리면 영영 복구는 불가능. 신중에 신중, 고증에 고증을. 그것이 우리 후손이 할일이리라.

내황마을에서 황고는 내리고, 비끼촌에 수국도 내리고, 나는 구산마을에서 내리고, 회장님은 또 북하로. 오늘도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감사. 늘 건강하고 행복 속에 편안히 사십시오.

출처 : 야생화바람꽃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메모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우리집뒷산매화야  (0) 2009.12.28
[스크랩] 우리집뒷산노루귀  (0) 2009.12.28
[스크랩] 아! 향일암  (0) 2009.12.24
[스크랩] 수유  (0) 2009.12.21
[스크랩] 삶  (0) 2009.12.21

 

 

출처 : 야생화바람꽃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메모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우리집뒷산노루귀  (0) 2009.12.28
[스크랩] 1226탐사기  (0) 2009.12.26
[스크랩] 수유  (0) 2009.12.21
[스크랩] 삶  (0) 2009.12.21
[스크랩] 왜현호색  (0) 2009.12.15

 

 

출처 : 야생화바람꽃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야생화바람꽃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메모 :

산나물  지천으로 널린 곳 찾아드니

돌틈새 여기 쫑긋 남기 밑 저기 쫑긋

고렇게 곱사론 임은 왜현호색 아닌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백양야생화연구회
글쓴이 : 진우 원글보기
메모 :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와 무슨 MOU를 맺었기에 明史를 찾아보아도 내용이 없습니다.

있을리 만무하겠지요. 조선초까지 있있던 모든 고사서 비서를 3대왕에 걸쳐 수거하라

명합니다.

이로서 그나마 맥을 이어왔던 한국의 고대사는 명맥이 끊어집니니다.

이래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여진족이 아닌가하는 최후의 의심을 사는것 입니다.

 

조선왕조의 비밀입니다. 명과 무슨관계였는지...이리하여 한국의 고대역사는 없어지게

됩니다.

추정적 정황으로 볼때 조선이 고려의 중원 및 산동,절강의 옛 영토와 후예민 등을

명나라 주원장에게 넘겨주는 대신에 한반도와 만주를 경영할수 있는 댓가를 인정받지

않았나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마치 전두환 장군처럼 자기의 정권을 인정해달라는 대신 미사일계획과 국가기밀을 미국에

넘겨준 정황과 같지 않았던가 하는것이지요.

실제 <明史>를 보면 동시기에 명의 주원장의 본거지인 南京에서 北京으로 올라오기까지  

많은 강소,절강지역 산동지역민의 반란등을 진압하는데  23년이 걸리고, 같은시기에 홍건족

반란자중 사천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명승사>가 아들과 함께 고려로 도망갔다는 기록과,  

고려,조선실록에는 倭寇라고 일컬어지는 강소,절강출신 무장세력이 대량으로 조선으로 넘어

오는데 고려말,조선세종까지 골머리를 앓고 전라도 지방에 약 30만명을 정착시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1. < 세조 3년 5월 26일 >
세조 3년 5월 26일(무자) :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 대변설(大辯說)
- 조대기(朝代記)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誌公記)
-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 안함노 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 도증기 지리성모 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 동천록(動天錄)
- 마슬록(磨슬錄)
- 통천록(通天錄)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2.< 예종 1년 9월 18일(무술) >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예조(禮曹)에 전교하기를,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志公記)》
- 《표훈천사(表訓天詞)》
- 《삼성밀기(三聖密記)》
- 《도증기(道證記)》
- 《지이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명경수(明鏡數)》 및
-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
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외방(外方)에서는 가까운 도(道)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道)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자 및

공사 천구(公私賤口)에게는 면포(綿布) 50필(匹)를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論賞)하고,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3.< 성종 원년 12월 9일(무오) >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천문·음양·지리에 관한 책을 수납하는 것에 대한 글을 보내다
여러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전일에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志公記)》
- 《표훈천사(表訓天詞)》
- 《삼성밀기(三聖密記)》
- 《도증기(道證記)》
- 《지리성모(智異聖母)》
- 《하소량훈(河少良訓)》
-  문태(文泰)·왕거인(王居仁)·설업(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권 과,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명경수(明鏡數)와 무릇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

여러 서책(書冊)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 보낼 일을 이미 하유(下諭)했으니,
상항(上項) 명경수(明鏡數) 이상의 9책과
-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
- 《도선참기(道銑讖記)》

전일의 하유(下諭)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 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收納)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收納)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

 

운영자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