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白雲居士先生自號也 晦其名 顯其號 其所以自號之意 其在先生白雲語錄 家屢空 火食不續 居士自怡怡如也 性放曠無檢 六合爲隘 天地爲窄 嘗以酒自昏 人有邀之者 欣然輒造 徑醉而返 豈古淵明之徒與 彈琴飮酒 以此自遣 此其實錄也 居士醉而吟一詩曰 天地爲衾枕 江河作酒池 願成千日飮 醉過太平時 又自作贊曰 志固在六合之外 天地所不囿 將與氣母遊於無何有乎

백운거사는 선생의 자호다. 그 이름을 감추고 그 호를 쓰고 있다. 그가 자호를 쓰는 까닭은 선생의 백운어록에 드러나 있다. 집에 자주 양식이 떨어져 끼니를 잊지 못해도 거사는 스스로 즐거운 빛이다. 성품이 방광하고 검속함이 없었다. 온 세상이 좁다 하고 천지가 비좁다 했다. 일찍이 술로써 스스로 혼미해지고자 했다. 어떤 이가 만나자고 하면 흔쾌히 곧 가서 가볍게 취해서 돌아온다. 어찌 옛날 도연명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는 것으로 소일을 한다. 이것이 그것에 대한 실록이다. 거사가 취해서 한 수를 읊었다.

 

하늘과 땅이 이불과 베개요

장강과 황허는 술못이로다.

바라건대 천 날 동안 술을 마셔

취해서 태평세월 보내고자.

 

또 그 자신이 다음과 같은 찬을 지었다.

 

뜻은 육합 밖에 있어 천지의 구속을 받지 않으니

기모와 더불어 무하유에 노닐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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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三韓 自夏時 始通中國 而文獻蔑蔑無聞 隋唐以來 方有作者 如乙支之貽詩隋將 羅王之獻頌唐帝 雖在簡冊 未免寂寥 至崔致遠入唐登第 以文章 名動海內 有詩一聯曰 崑崙東走五山碧 星宿北流一水黃 同年孤雲曰 此句卽一輿誌也 蓋中國之五岳 皆祖於崑崙山 黃河發源於星宿海故云 其題潤州玆和寺詩 一句云 畵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學士朴仁範 題涇州龍朔寺詩云 燈撼螢光明鳥道 梯回虹影落岩扃 參政朴寅亮 題泗州龜山寺詩云 門前客棹洪波急 竹下僧棋白日閑 我東之以詩鳴于中國 自三子始 文章之華國有如是夫

 

삼한은 하나라 때부터 중국과 통했으나 문헌이 남아있지 않아 아는 것이 없다. 수당 이래로 작자가 있었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에게 보낸 시, 신라왕이 당나라 임금에게 바친 송시와 같은 시는 비록 기록에는 남아있으나 그 수가 적어 쓸쓸함을 면할 수 없다. 최치원이 당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함에 이르러 문장으로써 이름을 해내에 날렸다. 다음과 같은 한 연의 시가 있다.

 

곤륜선아 동으로 달려 다섯 산은 푸르고

성수는 북으로 흘러 물은 누렇네,

 

같은 해에 고운이 이 구절은 곧 일종의 여지지다라 했다. 중국의 오악은 대개 곤륜산에서 뻗어 나왔고 황하는 성수해에서 발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의 제윤주자와사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림이 있는 피리소리 속에 조석으로 물결 일고

청산 그림자 속에 고금의 사람 오가네.

 

학사 박인범의 제경주용삭사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흔들리는 등불은 반딧불인 양 험한 길 비춰주고

구불구불 사다리는 무지개인 양 돌난간에 닿아 있네.

 

참정 박인량의 제사주구산사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문전의 나그네 노는 큰 물결 휘젓느라 바쁘고

대나무 밑에 스님 바둑 대낮에 한가롭네.

 

우리나라가 시로써 중국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이 세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문장으로 나라를 빛내는 것이 이와 같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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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按唐書藝文志 載崔致遠四六一卷 又刊桂苑筆耕十卷 余未嘗不嘉其中國之廣蕩無外 不以外國人爲之輕重 而旣載於史 又令文集行于世 然於文藝列傳 不爲致遠 特立其傳 余未知其意也 若以爲其事績不足以立傳 則致遠十二渡海入唐遊學 一擧中甲科及第 遂爲高騈從事 檄黃巢 黃巢氣沮 後官至道統巡官侍御史 及將還本國也 同年顧雲贈儒仙歌 其一句曰 十二乘船渡海來 文章感動中華國 其自敘亦云 巫峽重峯之歲 絲入中華 銀河列宿之年 錦還東國 蓋言十二而入唐 二十八而東還也 其跡章章如此 以之立傳 則固與藝文所在沈佺期 柳幷崔元翰 李頻輩之半紙列傳 有間矣 若以外國人則已見于志矣 又於藩鎭虎勇 則李正己黑齒常之等 皆高麗人也 各列其傳 書其事備矣 奈何於文藝 獨不爲致遠立其傳也 余以私意揣之 古之人 於文章 不得不嫌忌 況致遠以外國孤蹤 入中朝 躪踏當時名輩 若立傳 直其筆 恐涉其嫌 故畧之歟 是余所未知者也

당서 예문지를 보면 최치원의 사륙 한 권이 실려 있고 또 계원필경 열 권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나는 중국 사람은 생각이 넓고 호탕하여 외국인이라고 하여 경중을 따지지 않고 사서에 싣고 또 문집을 세상에 간행한 것을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문지 열전에 최치원의 전을 입전하지 않은 저의를 알지 못하겠다. 그의 사적이 입전에 부족한 것 때문인 것 같다. 치원이 12살에 당에 들어가 유학하여 일거에 중국 갑과에 급제하고 마침내 고변의 종사관이 되고 그의 토황고격문이 황소의 기를 꺾어놓았다. 후에 벼슬이 도통순관시어사에 이르렀다. 그가 본국으로 돌아올 때 그해 유선가를 지어 주었다. 그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열두 살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문장으로 중국을 감동시켰네.

 

그의 자서에도 씌어 있다.

 

열두 살에 배옷 입고 중국에 들어갔다가

스물여덟에 비단옷 입고 본국에 돌아왔네.

 

이는 열둘에 당에 들어갔다가 스물여덟에 귀국한 것을 말한 것이다. 그의 행적이 이처럼 뚜렷하게 드러나 있으니 이것으로 입전한다면 진실로 예문지에 올라 있는 심전기 유병 최원한 이빈 등의 반장짜리 열전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만약 외국인이기 때문이라면 이미 예문지에 보인다. 또 진번호용에는 이정기 흑치상지 등이 다 우리나라 사람임에도 각기 그들의 전을 두어 그 사적의 기록을 갖추었다. 어찌 문예열전에만 최치원을 위해 입전하지 않았을까? 나는 혼자 생각으로 추측건대 옛 사람들은 문장에 부득불 꺼리는 것이 있었는데 하물며 치원이 외국인으로서 홀로 중국에 들어와 당시의 명성 있는 무리들을 유린했음에랴? 만약 입전을 해서 곧이곧대로 쓴다면 혐기할까 두려워 일부러 생략한 것인가? 이는 내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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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崔致遠孤雲 有破天荒之大功 故東方學者 皆以爲宗 其所著琵琶行一首 載於唐音遺響 而錄以無名氏 後之疑信未定 或以洞庭月落孤雲歸之句 證爲致遠之作 然亦未可以此爲斷案 如黃巢檄一篇 雖不載於史籍 巢讀至不惟天下之人皆思顯戮 抑亦地中之鬼已議陰誅 不覺下床而屈 如非泣鬼驚風之手 何能至此 然其詩不甚高 豈其入中國 在於晩唐後故歟

 

최치원 고운은 파천황의 큰 공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모두 종주로 삼는다. 기가 지은 비파행 한 수가 당음유향에 실려 있는데 무명씨로 기록되어 있다. 후세에도 의심하고 믿지 않아 확정되지 않았는데 어떤 이는 동정월락고운귀라는 구절을 가지고 최치원의 작품이라고 증거를 삼았다. 그러나 역시 이것으로 단안을 내릴 수는 없다. 황소격 일편 같은 것은 비록 사적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황소가 오직 천하 사람들이 모두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게다가 땅속의 귀신들마저 이미 몰래 죽이기로 의논했다는 데까지 읽고는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굴복하였다는 것이다. 만약 귀신을 울리고 바람을 일으키는 솜씨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시는 그렇게 좋지는 않으니 어찌 그가 중국에 들어간 것이 만당 이후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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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新羅眞德女主太平詩 載於唐詩類紀 其詩高古雄渾 比始唐諸作 不相上下 是時 東方文風未盛 乙支文德一絶外 無聞焉 而女主乃爾 亦奇矣 詩曰大唐開鴻業 嵬嵬皇猷昌 止戈戎衣定 修文繼百王 統天崇雨施 理物體含章 深仁諧日月 撫運邁時康 幡旗旣赫赫 鉦鼓何煌煌 外夷違命者 剪覆被天殃 和風凝宇宙 遐邇競呈祥 四時調玉燭 七曜巡萬方 維岳降帝輔 維帝用忠良 五三成一德 昭載皇家唐 按小註曰 永徽元年 眞德大破百濟之衆 乃織錦 作五言太平詩 以獻云 按永徽 乃高宗年號也

신라 진덕여왕의 태평시는 당시류기에 실려 있다. 이 시는 고고하고 웅혼하여 초당의 여러 작품들과 견줄만하여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이때에는 우리나라 문풍이 성하지 못하여 을지문덕의 절구시 하나 외에는 알 수가 없는데 여왕의 것이라니 기이하다. 시는 이렇다.

 

당이 나라를 열었을 때 황제의 위엄이 높게 빛났도다.

전쟁이 그치니 군복도 정해졌고 문덕을 닦아 모든 왕을 도왔도다.

천하를 통일해서 비내리듯 은총을 베풀고 만물을 다스려 덕을 머금었네.

깊은 어짊은 일월에 화합하고 운수를 어루만져 평안한 세상으로 나아가네.

깃발을 이미 찬란히 빛나고 징과 북은 어찌나 황황한지.

변방 오랑캐로 천명을 어긴 이는 엎어지고 뒤집어져 하늘의 재앙을 받으리라.

온화한 바람이 우주에 서리고 원근에서 다투어 상서로운 것을 바치네.

사시는 옥촉과 조화를 이루고 칠요는 만방을 순행하네.

다만 맹주는 보필할 제상을 내리시니 황제는 다만 충성되고 어진 이를 등용하네.

삼화오제가 한 가지로 덕을 이루니 그 밝음이 당나라에까지 실려 있네.

 

소주에는 이렇다. 영휘 원년에 진덕여왕이 백제의 무리를 크게 깨뜨리고 이에 비단을 짜서 오언태평시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영휘는 당 고종의 연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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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小說

 

(1) 我東邦 自殷太師東封 文獻始起 而中間作者 世遠不可聞 堯山堂外記 備記乙支文德事 且載其有 遺隋將于仲文 五言詩句 詩曰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句法奇古 無綺麗雕飾之習 豈後世委靡者 所可企及哉 按乙支文德 高句麗大臣也

 

우리 동방은 은나라 태사가 동방에 봉해진 후로 문헌이 비로소 일어났으나 중간의 작자는 시대가 멀어서 알 수가 없었다. <요산당외기에 을지문덕의 사건이 갖추어 기록되어 있고 그가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내는 오언시구가 실려 있다. 시에 이르기를,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교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다. 전승의 공로가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구법이 기이하고 고졸하며 화려하게 꾸미려는 투가 없으니 어찌 후세의 맥빠진 이들이 미치기를 바랄 바이랴? 을지문덕은 고구려 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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