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余與同年元壽翁偕赴京 壽翁鼻楂赤 行至平壤 適侍房之妓 鼻亦楂赤 余作詩戱之曰 箕都城內朔風寒 春色如何上鼻端 醉後一雙金橘爛 樽前兩葉晩楓丹 帳中光影偏相照 客裡風情慘不歡 我是直言吳可立 爲傳聲譽滿長安 甑山有老宦吳可立 若見行客呢妓之事 每說於人 故詩語及之也

 

나는 동년배인 원수옹과 북경에 간 적이 있다. 수옹의 코는 아가위나무처럼 붉었는데 행렬이 평양에 이르니 마침 방에서 시중드는 기녀의 코가 역시 아가위나무처럼 붉었다. 내가 시를 지어 그것을 놀렸다.

 

평양성 안에는 북풍이 차가운데

봄빛이 어찌하여 코끝에 올랐는가?

취한 뒤에 한 쌍의 노란 귤이 무르익었고

술동이 앞의 두 잎은 단풍이 무르익었네.

휘장 속의 빛 그림자 한 쪽으로만 비추니

객지의 풍정은 참담하여 즐겁지를 않네.

나는 바른 말을 잘하는 오가립이니

성예를 전하여 장안을 가득 채우리라.

 

증산에 늙은 환관 오가립이 있었는데 행객이 기생과 친해지는 것을 보면 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으므로 시어가 이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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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李參判子野嘗赴京 有書狀官適遊街市 見美人在紗窓裡刺繡 書狀目注不轉 美人開窓 以水揮之 衣盡濕 參判聞而作詩曰 河水橋邊柳絮飛 酷探春色却忘歸 多情忽有窓間雨 飛洒分司御史衣 其後再赴京師 行至通州 無疾暴卒 人皆昔之

 

참판 이자야가 일찍이 경사에 갔을 때다. 어떤 서장관이 마침 저잣거리에 놀러 나갔다가 미인이 사창 안에서 수를 놓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있었는데 미인이 창을 열고서는 물을 흩뿌려서 옷이 모두 젖었다. 참판이 이 소문을 듣고서 시를 지었다.

 

하수 다리 가에 버들개지 나는데

춘색을 탐하다가 돌아가기를 잊었노라.

정도 많아 문득 창 사이에서 비가 내리니

흩날려 사신 온 서장관의 옷에 뿌리도다.

 

그 후 다시 경사에 갈 때 행차가 통주에 이르자 병도 없이 갑자기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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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襄陽南數里 有石立路傍 諺傳 昔一按廉酷愛州妓 臨遞別妓 作詩題于石曰 汝石何時石 吾人今世人 不知離別苦 獨立幾經春 或云咸傅林所作

 

양양 남쪽 수 리 떨어진 곳 길 곁에 돌이 하나 서 있는데, 항간에서는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어느 안렴사가 기생을 몹시 사랑했는데, 체직되어 기녀와 이별하게 되자 시를 지어 돌에 썼다고 한다.

 

너 돌은 어느 때 돌이냐?

나는 요즘 사람이다.

이별의 아픔을 아지 못하고

홀로 서서 봄을 몇 번이나 지냈던고?

 

어떤 이는 함부림이 지은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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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太宗少年習擧子業 於辛禑壬戌 擢進士第二名 又於翌年癸亥 擢文科 金漢老爲壯元 沈孝生居二 太宗居十 李來成溥尹珪尹思修朴習玄孟仁皆同榜也 及登寶位 漢老之女爲世子禔之夫人 每於進退之際 常呼壯元而不名 太宗嘗作扇詩曰 風榻依時思朗月 月軒吟處想淸風 自從削竹成團扇 郞月淸風在掌中 以文士而成大業者 古所未有 帝王文章亦未有如此之奇巧者 其引物譬喩 涵蓄義趣 非聖人不能也

 

태종이 젊었을 때 과거 공부를 하더니 신우 임술에 진사시험에 이 등으로 뽑혔고, 또 이듬해 계해에는 문과에 뽑혔는데, 김한로가 장원이 되고 심효생이 이 등을 했고 태종은 십 등이었다. 이래 성부 윤규 윤사수 박습 현맹인 등은 모두 같이 과거에 합격한 이들이다. 보위에 오르자 한로의 딸이 세자 제의 부인이 되었는데, 매번 진퇴할 때에는 늘 장원이라 부르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태종이 일찍이 부채시를 지었다.

 

바람 부는 의자에 기대었을 때는 밝은 달을 생각하고

달 밝은 난간에서 읊조리며 맑은 바람을 생각했노라.

대를 깎아 둥근 부채를 만들면서부터는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손바닥에 있도다.

 

문사로서 대업을 이룬 이는 옛날에는 없었고 제왕의 문장 역시 이처럼 교묘한 것도 없었다. 그가 사물을 끌어다가 비유한 것과 함축된 의취는 성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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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世祖設內經廳 聚朝士寫經 伯氏與洪益城姜仁齋鄭東萊趙稚圭李期叟輩 常在宮禁 不得出外浪遊 伯氏戲作詩曰 手執毛錐子 辛勤過一春 濛濛花影裏 爛醉是何人

 

세조가 내경청을 설치하고 조정의 선비들을 모아 경전을 베끼게 했다. 내 큰형이 홍익성 강인재 정동래 조치규 이기수 등과 늘 대궐 안에 있으면서 밖에 나와 놀지를 못하였다. 큰형이 장난삼아 시를 지었다.

 

손에는 붓을 쥐고

고되게 봄 한 철을 지냈도다.

자욱한 꽃 그림자 속에서

흐드러지게 취한 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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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有士人鄭某喪偶 聞南原有富家寡婦 欲以爲後配 擇日定婚 及到府下 寡婦遣女僕 覘其擧止 女僕還報曰 鬚鬚長鬱 且被毛帽 眞老病者也 寡婦曰 余欲得年少壯夫 以娛暮境 奚用此老物爲 府之官吏 多張炬燭 圍擁而往 則寡婦閉門不納 鄭不得入而還 又有樂官鄭某 晩年亦喪偶 媒富家女爲妾 其日往富家 女窺而見之曰 非七十 過六十也 凄惋有不豫之色 乘夜驅逼而入 女叱鄭曰 何處老物來入我室 排窓而出 不知所之 有一儒戱作詩曰 紛紛俗喙幾騰讙 二鄭風流是一般 欲作好緣還作惡 早知如此不如鰥

 

어떤 선비 정모가 아내를 잃었는데 남원에 부유한 과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후처로 삼고자 했다. 택일하여 정혼하고서는 부의 근처에 이르자 과부가 계집종을 보내서 그의 행동거지를 엿보게 했더니 계집종이 돌아와 아뢰었다. 수염이 길고 많은 데다 털모자를 썼으니 늙은 병자가 틀림없습니다. 과부가 말하기를, 내가 나이 젊은 장부를 얻어 늘그막을 즐기려 했는데 어찌 이런 늙은 것이 소용이 된단 말인가? 하였다. 부의 관리들이 횃불을 많이 켜들고 옹위하여 과부집에 가 보니, 과부는 문을 닫아걸고 받아들이지를 않아서 정이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또 악관 정모라는 이가 있었는데 만년에 역시 아내를 잃고 매파를 보내 부잣집 여자를 첩으로 삼고자 했다. 그날 부잣집으로 가니 여자가 엿보고 말하기를, 일흔 살이 아니면 예순 살은 넘었으리라 하고는 처량하여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어둠을 틈타 박차고 들어가니, 여자가 정을 꾸짖기를, 어느 곳에 사는 늙은이가 내 방에 들어오는가 하고는 창문을 열고 나가버리니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어떤 유생이 놀리는 시를 지었다.

 

어지러운 속인들이 얼마나 입방아를 찧었는고?

두 정씨의 풍류가 매한가지로구나.

좋은 인연을 맺으려다 도리어 악연이 되었나니

일찍 이럴 줄 알았더라면 홀아비로 지냄만 같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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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釋屯雨者 幻庵之高弟 自幼力學 內外經典無不探討 精究其意 又能於詩 詩思淸絶 與牧隱陶隱諸先生相酬唱 我朝佛崇釋敎 名家子弟不得祝髮 以故緇徒無知書者 而師名益著 四方來學者如雲 集賢之士皆就問榻下 蔚爲儒釋士林之表 人皆敬之 我伯仲氏嘗讀書于檜巖寺 見師年九十餘 容貌淸癯 氣體尙强 或倂日不食 不甚飢餒 人若饋之飯 則或喫盡數鉢 亦無飽意 雖至數日 未嘗如廁 恒兀坐虛室懸玉燈 張淨几 徹夜看書 絲毫細字 一一硏究 未嘗交睫偃臥 辟人不許在旁 若有所召 則手擊小錚 門下隨而應之 未得高聲大喚也 日本國使僧文溪求詩搢紳 作者數十人 師亦承命賦詩 詩曰 水國古精社 洒然無位人 火馳應自息 紫主更誰親 楓岳雲生屐나막신극 盆城月滿闉성곽문인 風帆海天濶 梅柳古園春 時春亭主文 改酒然無位之句 爲蕭然絶世人 師曰 卞公眞不知詩者 蕭然豈如酒然 絶世豈如無位 是斲깎을착喪自然無爲之趣耳 每見文士 悵悵不已 今有千峰集行于世

 

중 둔우는 환암의 뛰어난 제자로, 어려서부터 힘써 배워 내외 경전을 탐독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뜻을 정밀하게 탐구하였다. 시에도 능하여 시상이 청절했고 목은과 도은 등 여러 선생과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우리 조선에서는 불교를 숭상치 않아 명가의 자제는 머리를 깎을 수가 없어서 중의 무리로서 글을 아는 사람이 없기에 스님의 이름이 더욱 드러났다. 사방에서 배우려는 이가 구름처럼 모여들고 집현전의 학사들도 모두 문하에 나아가 묻곤 해서 우뚝하게 유불 사림의 사표가 되어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였다. 내 맏형과 둘째 형이 일찍이 회암사에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스님을 보고는 말하였다. 나이가 90여 세인데 용모가 맑고 수척했으며 기체가 아직 강하였다. 혹 이틀 동안 먹지 않고도 심히 배고파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밥을 드리면 두세 그릇을 모두 먹어도 역시 배부른 느낌이 없고 비록 이삼 일이 되어도 측간에 간 적이 없었다. 항상 빈 방에 오도마니 앉아서 옥등을 달고 깨끗한 책상을 놓고 밤새도록 책을 보아 아주 작은 글자라도 하나하나 연구하며, 눈을 붙이거나 드러눕는 법이 없었다. 사람을 피해서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부를 일이 있으면 손으로 조그마한 징을 쳐서 문하생이 따라 응하도록 했고 큰소리를 질러 부르지 않았다. 일본 사신 중 문계가 사대부들에게 시를 구하니 지은 이들이 수십 명이었는데, 스님 또한 명을 받들어 시를 지었다.

 

수국의 옛 절간에

말쑥한 벼슬아치가 아니로다.

불길처럼 달릴 것도 응당 그칠 것이오,

땔나무처럼 서 있으니 다시 누구와 친하리.

풍악의 구름은 신발 아래서 일고

분성의 달빛은 성문에 가득하도다.

너른 바다에는 바람 머금은 돛단배 떠 있고

매화 버들 어우러진 옛 동산의 봄이로다.

 

그때는 춘정이 문형이었는데 洒然無位라는 구절을 고쳐서 蕭然絶世로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변공은 참으로 시를 모르는 사람이로다. 쓸쓸하게가 어찌 말쑥하게 만하며 세상의 인연을 끊은 것이 어찌 벼슬 없는 것만 하겠는가? 이것은 자연 무위의 아취를 깎아 없애는 것이라 하고는 매번 문사를 보면 섭섭해 마지않았다. 지금도 천봉집이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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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我伯氏三度爲黃州宣慰使 與安岳妓相別於龍泉館前潭水上 其後又與州妓相別於潭水上 任西河亦以平壤宣慰使 率妓來別於此 時有人戱作詞曰 川鳴咽而如泣兮 旭朝暾之凄凉 因名潭曰 鳴咽灘 徐相國剛中作詩戱之曰 皇恐灘前皇恐意 喜懽山下喜懽情 如何鳴咽龍泉水 却似情人哭別聲 黃州館裏花滿開 前度劉郞三度來 鳴咽灘聲何日歇 朝朝送別哭如雷

 

내 맏형이 세 차례 화해도 선위사가 되었을 때, 안악 기생과 용천관 앞 못가에서 이별하고 또 그 후 고을 기생과 못 가에서 이별을 했다. 이서하도 역시 평양 선위사로서 기생을 거느리고 와서 이곳에서 이별을 하였다. 그때 어떤 이가 희롱하여 시를 지었다.

 

시내가 흐느끼니 우는 것 같고

아침 햇살 솟아오르니 처량하도다.

 

그래서 그 못을 오열탄이라 했다. 서상국이 시를 지어 희롱하였다.

 

황공탄 앞의 황공한 마음이요

희환산 아래 희환한 정이로다.

어찌하여 용천수는 흐느껴서

정인들이 울며 헤어지는 소리 같은고?

황주 객관에 꽃은 활짝 피었는데

전번에 왔던 유랑이 세 번째 왔도다.

흐느끼는 여울소리는 어느 날에나 그칠꼬?

아침마다 송별하며 우는 소리가 우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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