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學
농가월령가3월
玄湖瑣談 27
27) 吳判書道一 號西坡 幼時 逐童隊游戱 至壯洞水閣 時諸名官會集 見吳容貌問曰 爾乃誰家兒 答曰 吾小字某也曰 兩班子否曰 吾乃楸灘之孫 公輩不知灘爺耶 諸人異之 問能作詩否 答曰 若飲一大白 則可矣 卽擧觴屬之 以三字呼韻 應口對曰 樓頭醉臥吳挺一 松下吟詩柳道三 諸人責以長者名為詩 吳答曰 吳挺一 柳道三相會 出韻三字 安得不爾 一座悚然 又有一句曰 雲愁九疑月千古 水滿三湘秋萬里 趙松谷復陽大奇之 竟有東床之選
판서 오도일은 호가 서파인데 어렸을 때 아이들을 좇아 놀다가 장동 물가 누각에 이르렀는데, 그때 여러 이름난 관리들이 모여 있어서 오의 용모를 보고 물었다. 너는 어느 집의 아들이냐? 오가 제 소자는 모입니다라 했다. 양반 집의 자제인가 아닌가 하고 물으니, 오가 저는 추탄의 손입니다. 공들은 추탄을 모르십니까라 했다. 여러 사람들이 이상이 여겨, 시를 지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큰 잔으로 한 잔 마시면 할 수 있습니다라 했다. 곧 잔을 들어 그에게 주고 삼자로 운을 부르니 즉시 입으로 대답했다.
누대 머리에 취해 누운 오정일이오
소나무 아래 시 읊조리는 유도삼이라.
여러 사람들이 어른 이름으로 시를 지었다고 나무라자 오가, 오정일 유도삼이 서로 모였고 삼자 운은 내니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좌석에 모인 이들은 흠칫했다. 또 한 구절을 지었다.
구름 걱정하는 구의산엔 천고의 달이 뜨고
물 가득한 삼상에는 가을빛이 만리라네.
송곡 조복양이 크게 기특하게 여겨 마침내 사위를 삼았다.
玄湖瑣談 26
26) 洪于海 少時 與息菴金相 同做郊亭 一日 有一白衲 負册橐 拜前 金問曰 何來何僧 背負何書 僧曰 貧道住金剛十年 住智異亦十年 今向妙香山 路過門前 故敢謁 因解橐 出所負書 乃五家解一部也 僧備說楓岳 頭流之勝 千岩萬壑 若羅在目前 僧臨行請曰 願兩措大 各賦一詩 以侈行橐 洪先書一絕曰 錫杖隨雲過野亭 蕭然一橐負禪經 談移萬瀑雙溪勝 山在山人舌上靑 萬瀑在金剛 雙溪在智異 金閣筆驚歎 洪促金繼之金曰 此正詩人妙境 吾不可效嚬也
홍우해가 젊었을 때 식암 김상과 함께 교외에 정자를 지었다. 하루는 흰 장삼을 입은 이가 책보따리를 지고 앞에 와서 절을 했다. 김상이, 어찌 온 무엇 하는 중이며, 등에 진 것을 무슨 책이오 하고 물었다. 중이, 저는 금강산에 십 년, 지리산에 십 년 살았고 지금은 묘향산을 향하다가 문앞을 지나는 길에 감히 뵙고자 한 것입니다라 하고서는 보따리를 풀어서 지고 있는 책을 꺼내는데 곧 오가해 한 부였다. 중은 풍악과 지리의 명승지 천암만학을 마치 눈앞에 펼쳐놓은 듯이 갖추어 설명을 했다. 중이 길을 떠나면서, 원컨대 두분 선비께서 각각 시 한 수씩 지어주셔서 나그네의 보따리를 풍성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 했다. 홍이 먼저 절구 한 수를 지었다.
중이 구름 따라 가다 시골 정자에 들러
초라한 자루에 불교 경전을 짊어졌네.
말이 만폭동과 쌍계사 승경으로 옮아가니
산이 산인의 혀에서 푸르기도 하구나.
만폭동은 금강산에 있고 쌍계사는 지리산에 있다. 심이 붓을 내려놓으며 경탄했다. 홍이 김상에게 이어 지으라고 재촉하니, 김이, 이것이 바로 시인의 묘경이니 내가 흉내낼 수 없다고 했다.
玄湖瑣談 25
25) 雙泉成汝學 工於詩律 與柳於于夢寅 為詩酒友 年過六十 未得一命之官 時 李月沙廷龜秉銓 於于薦成于月沙曰 露草蟲聲濕 風枝鳥夢危之成汝學 豈可使空老乎 月沙卽擬除詩學敎官 近世洪于海萬宗 有詩名 號夢軒 落拓喜著書 甞纂成東國歷代總目 一臺官以為擅作史法 啟請定配 時明谷崔相語人曰 席上又兼絲竹肉 人間何羨鶴錢州之洪于海 忍令竄謫乎 上奏救解 得不被配 前後事雖殊 其愛才之意 則一符矣
쌍천 성여학은 시율에 뛰어나서 어우 유몽인과 시와 술을 즐기는 벗이 되었으나 나이 육십이 넘도록 아직 벼슬 한 자리 못하였다. 그때 월사 이정구가 전형을 맡고 있었는데 어우가 성을 월사에 천거하면서, 이슬 맺힌 풀엔 벌레소리 젖어들고, 바람 부는 가지엔 새의 위태롭구나를 지은 성여학을 어찌 헛되이 늙게 하겠습니까라 했다. 월사가 즉시 시학교관을 제수했다. 요즈음 우해 홍만종이 시명이 있는데 호가 몽헌이다. 가난하고 실의한 중에서도 저서를 좋아하여 일찍이 동국역대총목을 편집하여 완성했다. 어떤 대관이 역사를 함부로 지었다고 유배 보낼 것을 계청했다. 그때 명곡 최상이 사람들에게, 자리에는 사죽성과 육성이 같이 있으니 인간세계에서 어찌 돈이 차기를 바라리라고 한 홍우해를 차마 귀향을 보낼 것인가라 하고는 주청하여 풀어 주기를 구하니 유배를 면할 수 있었다. 앞뒤의 일이 비록 다르기는 하나 그 재주를 아끼는 마음은 한가지다.
106th Lecture of Hanyegibi Course 漢禮器碑講座 第106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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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湖瑣談 24
24) 余宗丈任大仲埅 號水村 工於詩 其拱北樓詩云 垂楊拂地亂鶯啼 夢罷高樓歸思迷 細雨飛花村遠近 煙烟芳草水東西 春如棄我無情去 詩為逢君得意題 霽後憑欄獨回首 亨亭落日下江提 藻思淸婉 又一絕云 一抹炊烟生 孤村在山下 柴門老樹枝 來繫行人馬 寫出孤村暮景 宛在眼中
내 가문 어른이신 대중 임방은 호가 수촌인데 시에 빼어나셨다. 그의 공북루시.
수양버들 땅에 늘어지고 어지러이 꾀꼬리 우는데
꿈 깬 높은 누각에 고향 생각 그칠 줄 모르네.
가랑비에 꽃 날리는 속에 마을은 가까이도 멀리도 있는데
안개 아지랑이 싱그런 풀과 물이 동서에 있네.
봄이 날 버린 듯 무정하게도 가버리지만
그대 만나 시를 뜻대로 지을 수 있네.
비 갠 뒤 난간에 기대어 홀로 고개 돌리니
시원한 지는 해 강둑에 쏟아지네.
시상이 맑고도 아름답다. 또 절구 한 수.
한 줄기 저녁 연기 피어나니
산 아래 한적한 마을 있네.
삽작 곁 늙은 나무 가지에는
행인이 와서 말을 매네.
한적한 마을의 저녁 풍경을 묘사한 것인데 완연히 눈에 보이는 듯하다.
玄湖瑣談 23
23) 趙光甫持謙 以淸直不容於朝 長逝之日 有白鳥十數翔集屋上云異哉 有人以詩弔之曰 如何大鳥來相弔 昔在關西今海濱 微禽亦悼仁人逝 人若不哀人不人 任公輔相元挽曰 涇渭未分心獨苦 風霜相薄舌猶存 人以為實錄
광보 조지겸은 청직함으로 해서 조정에 용납되지 못하다가 죽는 날 흰 새 십수 마리가 옥상에 모여들었다고 하니 이상하도다. 어떤 이가 시로써 그를 조상했다.
어찌해서 많은 새가 조문을 하는가
예전에는 관서에 있더니 지금은 바닷가에 있네.
미물인 새도 어진 이 죽음을 슬퍼하는데
사람으로서 슬퍼하지 않다면 사람도 아니네.
공보 임상원이 지은 만사.
경수와 위수가 나뉘지 않아 마음 홀로 괴롭고
풍상 몰아쳐도 혀는 아직 살아있다네.
사람들은 실제로 있는 일을 기록했다고 여겼다.
玄湖瑣談 22
22) 李參判瑞雨 號松坡 漁村卽事詩云 急雨懸山風湧波 數間茅屋掩靑蘿 箇中人事商量得 兒補魚罾父織簔 此詩盖襲朴思菴 籬掛簔衣簷晒網 望中漁屋夕陽多之句 而商量得三字 不雅
참판 송파 이서우의 어촌즉사시.
소나기 산에 쏟아지고 바람은 파도처럼 몰아치니
두어 간 초가집이 댕댕이덩굴에 덮혔네.
그 속에서 사람의 일 헤아려
아이는 고기가리 고치고 아버지는 도롱이 짜네.
이 시는 아마도 박사암의,
울타리에 도롱이 걸어두고 처마에는 그물 말리는데
바라보니 고기잡이집은 석양녘에 많기도 하더라.
를 답습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상량득 세 자는 우아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