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卒壽이신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잘 다니던 직장을 명퇴로 그만두고 낙향한 것이 벌써 10년째 접어든다. 다 낡은 옛 가옥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27평의 아담한 황토집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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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아버지와 만 8년을 살았다. 그때만 해도 九旬이신 아버지는 뒷산에 간벌해서 누워 있는 통나무들을 톱질하시고는 도끼질까지 하셔서 산의 군데군데에 무더기로 쌓아 놓으셨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화목보일러용으로 지개로 져날라 마당 한 켠에 쌓아두고 겨우내 땔감으로 쓰고는 했다. 그렇게 사오년을 살았다. 그런데 재작년부터는 내가 지개질을 할 수가 없었다. 무릎에 무리가 와서 관절이 삐걱거리기 시작해서다. 물론 아버지께서도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산에 오르기도 어려운 처지다. 그래서 작년말에는 산에 눕혀져 있는 통나무를 아예 포기했다. 그리고는 만 8년이 지난 집을 수리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토방이 비바람에 엉망으로 망가져 가고 있어서다.
토방을 다시 자연석을 넣어가면서 쌓고, 화목보일러도 떼어내고 가스보일러로 바꾸었다. 별채부엌도 말끔하게 수리를 했다. 그 덕에 별채 맞은편에는 아담한 닭장이 하나 생겼다. 그러니 그곳에 닭을 넣어 기르고 싶은 욕망이 움트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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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내와 나는 벼르다가 황룡장에 가서 노란토종닭 암컷3마리와 오골계 암컷 3마리와 수컷 1마리를 사와 기르기 시작했다. 유정란을 얻어 먹겠다는 욕심과 또 하나 진짜 목적은 지내퇴치를 위해서였다. 누군가가 귀뜸하기를 닭소리만 들어도 지내가 도망을 간다는 것이었다. 어느 시골엔들 지내가 없을까마는 뻘건 발이 수북히 달린 시꺼먼 지내가 방과 거실을 활보한다고 생각해 보라. 누군들 소름이 끼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닭을 우리집 주변 마당에 방사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방사를 했더니 웬걸 토방이며 온 뜰이 닭똥투성이가 되어 지내퇴치도 좋지만 냄새가 코를 찔러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고민 또 고민 끝에 결국은 닭장 앞에 닭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그곳으로 그들의 생활공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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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도 황룡시장 곡식전에 들러 겉보리를 자그만치 8만 원 어치나 사들고 와서 아침저녁으로 모이를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닭장문을 열던 내 눈은 화등잔만 해졌다. 가장 실팍하고 강인하리라고 믿었던 오골계 수탉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그 녀석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살쾡이나 다른 짐승이 물어 죽인 흔적은 물론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적어도 그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중에 떠오른 생각이지만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아마도 눈을 쪼여 못 먹어서 죽은 것 같다.

그 녀석을 뒷산에 곱게 묻어 주었다. 불쌍한 닭을 묻어 주는 심정이 영 그랬다. 그때까지도 나는 외부 짐승이 침입해서 그런가 하고 그 가능성만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흔적은 전혀 없어 의아해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닭 한 마리의 항문 쪽에 설사의 흔적이 보이지를 않는가? 그래서 조류병을 의심하고는 약국에 가서 닭마이신을 사다 세 차례 복용을 시켰더니 괜찮아지는 듯 싶더니 그만 그 닭도 묻어 주어야 했다. 그런데 염려했던 닭병은 아닌 모양이어서 나머지 다섯 마리 – 오골계 암컷 3마리, 노란닭 2마리는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식구가 너무 적어 보였고 수탉이 없어 알을 낳아도 무정란이라는 생각에 수컷을 넣어 주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곧 나와 내 아내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사다 넣으면 되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황룡장에 가서 노란 수탉 한 마리와 암탉 2마리를 사다 넣었더니 웬걸 새 식구들이 몰리기 시작을 하는데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먼저 있는 녀석들이 텃세를 해서 먹이를 독차지하는가 하면 곁에만 가도 쪼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도 얄미워 새 식구를 괴롭히는 녀석을 혼내주겠다고 막대기로 살짝 건드린다는 것이 그만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녀석이 쓰러져서는 버비적거리다가는 꼼짝도 않는 것이 아닌가? 혹시 죽은 것이 아닌가 하고는 겁이 덜컥 났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갑자기 일어서서는 훌훌 털고는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는 또 다른 녀석을 괴롭힌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그만 나는 닭장 앞을 떠나고 말았다. 먼저 사온 다섯 마리가 얼마나 티껍게 텃세를 하며 새식구 세 마리를 왕따시키는지 인간의 왕따는 저리 가라였다. 새 식구 중 둘은 결국은 눈을 쪼여서 보이지가 않으니 먹이를 못 먹어 죽고 말았다. 그래서 원하지도 않은 닭장례식을 네 번이 치르게 되었다.
이제 같이 온 새식구들 중 둘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 홀로 외롭게 남은 노란 장닭의 앞날을 험난하기만 하다.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데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 어느날 보니 그 장닭도 한 쪽 눈이 멀어 있는 것이 아닌가? 궁리 끝에 그 수탉을 방사해 주기로 했다. 백암산 산 속 물가에 그것도 바위 틈에 두고 왔다. 물은 먹어야 살 것이고 산에서 적응을 하면 산닭이 되어 멋대로 훨훨 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풀어 주었다. 가끔 아내가 그 닭 살았을까 하고 물으면 나는 그런다.

“아마도 신나게 잘 살고 있을 거야. 왕따 없는 세상에서.”

그 후 그들 다섯 식구는 그런 대로 잘 지내며 살았다. 그래도 유정란을 낳으려면 수탉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는 이에게 커다란 오골계 수탉을 부탁해 두었다. 힘이 세고 모진 성격을 가진 오골계라면 나머지 닭을 제압하고 버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이는 내게 그랬다.
“파란 알을 낳는 수탉을 구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워낙 바쁜 분이라서 틈이 영 나지를 않으시는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차에 내 난타선생님 댁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白鳳 장닭 한 마리를 얻어 왔다. 우리 닭 사정을 들으시고는 선뜻 내 주신 것이다. 백봉은 흰오골계란다. 참 잘도 생겼다.

우리 닭얘기를 들은 어떤 이는 그랬다.
“그래서 닭손님은 가지 않는 거랍니다.”
또 어떤이 는 그랬다.
“밤에 몰래 살짝 넣어두면 괜찮대요.”

그 동안 들은 얘기를 종합해서 백봉 장닭을 밤에 살그머니 넣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을 얄리는 장닭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백봉이 새벽을 알리는 소리. 암탉들은 그랬을 것이다.
"아니, 이게 웬 수컷소리?"
그렇게 우리집의 닭들의 역사는 다시 쓰이기 시작을 한 거다.
그리고 닭장 안이 수선스럽다. 백봉은 쫓겨다니고 검은 오골계는 쪼아대고.......... 그래서 먹이를 주고 닭마당에 풀어놓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백봉은 먹이 곁에 얼씬도 하지를 못하게 한다. 백봉은 눈치보기 바쁘고 달아나기 바쁘다. 그런데 지난 번 노란닭들과는 좀 다른 무엇이 보인다. 백봉 혼자 저 멀리 떨어져 있고, 나머지 다섯 녀석이 뭉쳐 있으면서 서로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서로 기싸움을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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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서로 접근을 한다. 탐색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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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지나자 이제는 좁은 닭장 안에서 같이 논다. 백봉이 접근을 시도한 것이 효과가 있어 보인다. 즉 적응을 해 간다는 이야기다. 참 다행이다. 백봉은 눈도 멀쩡하다. 그리고 밤이면 횃대 위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백봉은 늘 두 번째 자리에서 잔다. 제 자리를 찾은 것이라면 좋으련만.




출처 : 문례헌서울사대국어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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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충효가.mp3

 

오늘 뜻 밖에도 소야가 내게 따르릉을 했다.

소야 목소리가 정겹고 반갑다.

"형님, 소얍니다. 어디세요."

"아, 소야스님! 반갑습니다. 장성이요.'

"저 들어가면 차 한 잔 주십니까?"

"차 한 잔뿐이겠습니까? 어디신데요?"

"장성 톨게이틉니다. 아버님 잘 계십니까?"

"잘 계시지요. 들어어세요.'

 

그리고 나는 대문을 열려고 나가서는 한참을 개울가에서 소야스님을 기다린다.

우리 마을 개울은 요즘 공사중이라 시끄럽고 분주하다. 25톤 괴물차가 길을 막고 통행을 방해하는 중이다.

드뎌 소야스님 등장.

포도까지 한 상자 들고 내리신다. 아버지 몫인가 보다.

어느 여자분과 둘이서 아버지께 극진히 절을 올리시고 문안을 하신다.

 

커피 한 잔 끓이고 나니 소야스님 그 여자 분(호가 호정이랬다)께 웬 부채를 차에서 가져오라신다.

호정이라는 분 부채 둘을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부채를 받아든 소야 왈,

"형님 글씨 하나씩 써 주세요."다.

그러더니 호정이라는 분께 판소리 한 자리 하라신다. 아버지를 위한 공연이라면서. 그러니 나도 반론 한 마디 못하고는 그대로 한 글씨 써 넣을 수밖에. 영광대사습국악경연에서 우승한 실력이라고 소야스님 칭찬이 대단하시다. 아버지를 위한 단독공연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충효가 한 3분 남짓' 기념으로 아이폰 녹음.

 

소야 스님 부채에 -------- 회자정리

호정 장원 부채에 -------- 도법자연

 

호정이라는 분 소야스님 부채 글씨가 더 맘에 든다고 시샘이다. 소야스님 왈,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벱이지."

 

그리고는 소야스님은 일어섰다. 잰걸음에 일어서니 많이 아쉽다. 붙잡을 처지도 아니다.

 

<그림자는 착하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책 두 권을 주고 가신다.

나는 내 시조집 시디를 드리고.

 

 

 

출처 : 문례헌서울사대국어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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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는 광주호 둑이 떠억 버티고 있다. 어느집인가 커피를 파는 개인 갤러리가 있다고 그곳에 가서 커피 한 잔 하자던 황선생 왈,

"저기 가면 커피차가 있어요. 그거 마시고 갤러리 가지 맙시다."

언덕을 오르니 그곳에 이동식 커피차가 있다. 아메리카노 두 잔. 금 사천 원. 뜨거워서 기다리는 동안 몇 컷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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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야, 커피야, 빠알리 식어라아........"

광주호를 곁에 두고 송강정 식영정을 지나 가사문학관을 흘겨보며 달리다가 소쇄원도 지났다. 그 위에 뭔가가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려 얘기를 하니 황선생이 그런다.

"오른쪽 저 산에 장인장모 산소가 있어서 제가 잘 아는데 소쇄원 위에는 뭐가 없는데요?"

그래도 내가 뭔가 있는 걸로 어디선가 봤다고 우기니 소쇄원을 지나면서 그런다. 저 위에 독수정이 있기는 하단다. 그곳의 독수매가 한 300년 되어 꽤 유명하단다. 독수매 독수매............ 많이 들어본 말이다. 가다가 우회전을 해서 독수정 쪽으로 가는데 다리를 지나면서 황선생 왈,

"저 호박 말리는 거 좀 봐요. 멋지다아."

"어디요?" 했더니,

"아니 저 다리 아래 돌위에요."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니 그곳 돌 위에 누군가가 건박을 만들려고 하얗게 늘어놓았다. 한 컷 찰칵하잔다. 게으른(?) 나는 차에 앉아서 그냥 찰칵을 하고 황선생은 하차. 그런데 사실은 차를 너무 잘 대서 내 날씬한 몸매로도 차문을 열고 내릴 수가 없었다. 번거롭게 차를 다시 빼달라기가 뭐해서 그냥 괜찮다고 하고 찰칵. 사실 찰칵 위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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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을 돌아서 올라 독수정원림에 들어서니 답답하다. 어디나 사람들이 없어서 그저 형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티가 역역하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씁씁하다. 버려진 문화재 아니 버려진 조상의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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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재배했다는 독수정 북쪽에 이 소나무가 튼실하다. 잎사귀가 특이하다고 황선생 설명하신다.

북향재배라! 임금은 南面하고 신하는 북향재배하고 그게 옛 군신간의 법도였다. 그래서 경복궁도 동향으로 짓자는 무학대사의 말을 버리고 삼봉의 주장대로 남향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남향으로 지으면 한양의 풍수지리상 장자가 득세를 못하니 동향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 무학의 주장인데, 경복궁을 남향으로 지어서 그런지 실제 조선조는 장자가 순탄하게 왕이 되어 제 명을 다한 이가 드물다. 조선이 28대에 망하리라는 것을 벌써 건국초기에 알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蒼葉門(창 자의 머리부분에도 艹八, 엽 자에도 艹八이 들어있다)을 삼봉이 종묘에 세운 것을 보면 삼봉은 왜 그렇게 남향을 고집했을까? 장자면 어떻고 차자면 어떻겠냐는 생각이었을까? 삼봉은, 왕권은 그저 상징적으로만 이해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정부라는 기관을 통해 신하들의 합의체가 나라를 경영하는 것이니 왕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그 정도가 조선왕조의 운명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삼봉이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보니 신권을 가고 왕권만 남아서 조선왕조가 그런 운명이 된 것일까? 조선 27대 왕과 이승만까지 합하면 28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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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돌아 안쪽에 들어가면 그곳에 독수매가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다. 어느해 봄에 한 번 온 기억이 그제서야 난다. 내가 아는 이가 그 매화를 아껴 금 150만 원을 주고 사 두는 걸 목격했던 古梅다. 지금은 꽃은커녕 잎사귀마저 다 져 버렸으니 초라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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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례헌서울사대국어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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