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미국에서 오늘 새벽에 귀국했고, 나는 오늘 낮에 상경해서 모처럼 우리가족 넷이 모여 저녁을 함께 먹고 쉬는데 아들애가 부엌에서 한참을 달그락거리더니 이런 근사한 야참을 우리 앞에 떠억 들이민다. 덕분에 입도 호사, 눈도 호사. 이약이약하니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진다. 이게 바로 행복 아닌가! 아들아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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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뮤지컬?

 

뮤지컬이라, 뮤지컬이라!

나는 뮤지컬을 즐겨 본다. 그러나 오늘처럼 감동이 없는 뮤지컬은 처음 본다. 원래 나는 영화보다 뮤지컬을 보면 신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이었을까? 시골에서 뮤지컬을 본 것도 처음이거니와 기대를 지나치게 했던 내게 문제가 있었을 듯싶다.

'장성문화예술회관소공연장' 관객은 많았다. 거의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관객층도 다양해서 소아들부터 나같은 노인네까지. 그래도 나와는 달리 대부분의 관객들은 감동 속에서 박수를 연방 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성공한 공연?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쓴소리다.

한 마디로 뮤지컬 자체가 수준 미달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전혀 감동이 와 닿지늘 않는다. 그건 내게도 책임이 있을 거다. 그 책임이란 오페라에 대한 내 소양이 일천하다는 것이다. 노래의 내용을 알아 들을 수도 없거니와 성량만을 자랑하는 소리를 듣고 감동을 해야 한다고 강요를 당하는 처지니 그럴 수밖에. 이런 나를 보고 '참 무식한 놈이다'라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원래 그쪽 방면에는 무식하니까. 그런데 그런 오페라를 듣고 내용을 알아 들으며 그 풍부한(?) 성량에 감동하는 분이 몇이나 될까? 혹시 남들이 좋다니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처럼 솔직하게 말을 하면 무식하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아는 척, 그런 척하는 것을 아닐까.


예를 들어 보자.

출연진의 국적은 어디인가? 그들이 예술을 한다고 열심인 그 노래를 그 본 고장 사람들이 와서 본다면 과연 감동을 할까? 오스트리아 독일 이태리 프랑스 영국 사람들이 오늘의 이 공연을 본다면 감동할까? 예술에 감동이 없다면 그게 예술이라고 우길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소극장에 모인 박수를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동을 하는데 너만 왜 감동이 없다고 하느냐? 너만 예술 감각이 없어서 감동이 없는 거다."

맞을 수도 있는 말이다. 아니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는 거다. 오늘 옳다고 믿는 것이 내일은 틀린 것이라는 예는 우리 역사에 수도 없이 많다. 옳다는 기준은 사실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애꾸 세상에서는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병신이다. 오늘은 내가 틀린 거다. 그래도 나는 감동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으니 어쩌란 말인가!


나는 사실 무식해서 그 숱한 노래의 내용을 거의 알아 듣지 못한다. 다만 영어 노래에서 몇 마디를 알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내게 감동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무슨 예긴고 하니 남의 것을 가져와서 그 흉내를 내면서 우리더러 감동하라는 거다. 그리고 고상한 예술을 한다고 하는 것으로밖에 내게는 보이지가 않는다. 마지막 노래가 <신아리랑>이다. 앞의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들의 배경화면은 모두 서양이고 서양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노래하는 이들은 모두 한국인(내 생각에는 겉만 한국인이고 속은 서양인이다)이다. 노래하는 이가 한국인이면 배경화면을 한국으로 바꾸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런데 <신아리랑> 배경화면은 한국의 초가집이고 노래하는 이도 한국인이다. 그런데 입은 옷은 서양 옷이다. 거기에 무슨 감동이 있단 말인가?


그 마지막 화면만이라도 한국이니까, 여기가 한국이니까 복장이 우리옷이면 감동이 반감될까? 우리옷을 입고 노래하면 예술이 아닐까? < 향수>를 부른 박인수는 비난을 받았다. 딴따라와 노래를 했다고. 그리고는 그런 딴따라와 노래하는 놈(?)과 공연을 같이 할 수 없다고 고상한(?) 서양음악을 하는 이들은 출연을 거부했다. 그 아류가 오늘의 악쓰는(적어도 내게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식해서) 이들이 아닌가? 아마도 나는 그 배경화면처럼 가수가 한국 사람이니까 복장도 우리옷으로 치장하고 우리 판소리로 했으면 앞의 노래들이 더 빛을 발해 손뼉 발뼉을 치며 발광(?)했을 거다. 내가 하는 말,


"왜, 오스트리아 독일 이태리 프랑스 영국 남의 나라는 그들만의 것을 내세우면서 정작 중요한 우리것은 그렇게 엉터리로 했다는 말인가? 차라리 우리 것을 넣지 말거나, 넣었으면 제대로 하거나."


이 책임은 거슬러올라가면 개화기 소위 선각자(?)라는 이들에게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우리것은 낡은 것, 뒤떨어진 것 그리고 서양것은, 일본것은 모두 좋은 것 이런 생각으로 우리것을 다 버리고 천대하고 했던 거다. 물론 우리 조상들은 노래부르고 연기하는 이들을 '광대'라 해서 천대를 했다. 그 '천한' 이들이 하는 행위를 보며 웃고 떠들고 즐거워했으면서도 내 자식이 내 손자가 그걸 하려 들면 질색을 했다. 그것이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서양것은 '고상한' 예술이고 우리것은 그대로 '딴따라'라고 해서 무시했던 것이다. 지금도 서양것을 '전공'한다는 이들 머리 속에는 우리 것을 무시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니 이동원과 같이 향수를 불렀던 박인수와는 같은 무대에서 노래부를 수 없다고 출연을 거부하는 웃지 못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만 거다.

그 동안 그것이 당연한 것이거니 하고 아이들에게 주입시켜온 교육이 문제인 거다. 음악으로만 국한시켜 얘기를 해 보자,

우리나라 학교 음악책을 들여다보면 거의 전부가 서양음악이다. 그중에 겨우 20-30% 정도가 우리 음악이다. 물론 악보는 서양 악보다. 우리 악보에 '정간보'가 있다는 사실조차 아는 이가 드물다. 이러한 일이 100년 이상 지속되어 와서 이제는 무감각하게 되고 말았다. 오늘 내가 본 뮤지컬만이 예술이고 우리 판소리 공연은 광대짓이라고 폄하하는 생각 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건 그걸 예술이라고 자랑하면서 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관객도 책임이 크다. 오늘 공연에는 객석이 거의 찰 정도로 많은 관객이 입장을 했다. 그런데 판소리 공연을 한다고 했다면 이렇게 많이들 왔을까? 그건 노인네들이나 보는 거라면서 아마도 객석이 텅텅 비었을 것이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제것은 시시하다고 버리고 남의 것은 좋다고 열광하는 우리네 사고방식과 행동. 그것이 오늘의 뮤지컬을 만든 거다.

우리가 유럽을 미국을 왜 갈까? 무얼 보러 여행을 갈까? 거기 가서 한국 것을 보려 할까? 그건 아마도 유럽다운 것, 미국다운 것을 보러 갈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왜 올까? 뭘 보러 올까? 63빌딩 보러 올까? 지하철을 보러 올까?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어 한국에 오는 거다. 그럼 우리는 그들을 끌어들이려면 한국적인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제것은 버리고 남의 흉내나 내는 것을 '고상한 예술'이라고 떠받들고 있으니 한심해도 한참이나 한심하다. 넋이 빠진 민족 과연 장래가 있을까? 제것을 버린 민족은 장래가 없다. 그 좋은 예가 만주족이다. 국가는 물론 민족까지 중국화되고 말았지 않은가?


제 집에서 걷어차이는 개는 남들도 걷어찬다는 옛말이 새삼 떠오른다. 제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귀하게 여길 때 남들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보아 준다. 우리만의 것을 개발하고 계발하고 발전시켜서 세상에 내놓을 때 남들이 그것을 보러 올 것이고 또 탄복을 할 것이다.


이제 뮤지컬로 되돌아가 보자.

마지막 우리것을 <판소리>로 넣었더라면, 아니 복장만이라도 우리옷을 입었더라면 이 뮤지컬은 그래도 한 편의 잘 짜인 작품이 될 수도 될 수 있었다. 많이 아쉽다.


그리고 사족 한 마디.

극중에 여행객으로 등장해서 극을 이끌어가는 이가 한 말.

"너무 좋다."

이 '너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다.

"너무 (부) : 정도에 지나치게. ~ 뜨겁다."

이 말은 정도에 지나쳐서 좋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제대로 쓰지를 않았다. 말하는 배우도, 듣는 관객도 관심이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만다.

너도 나도 하물며 공중파 방송의 어나운서도 그렇게 쓰고들 있으니 일반화된 말이라고, 그걸 따지는 너만 바보라고 할 수도 있다. 언어란 신생 성장 사멸 과정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이기는 하니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기는 하다. 이 말이 왜 그렇게 변해서 쓰일까? 아마도 이랬을 듯싶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

애기곰은 너무 귀여워


이 어린이 노래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를 나는 모른다. 그런데 이 노래글을 애기 때부터 듣고 배우고 중얼거렸으니 그렇게 배우고 만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려서 그것도 언어습득기에 익힌 내용이니까.

방송에서는 가끔 출연자는 '너무'라고 하는데 자막에는 '정말'로 바꾸어 나오는 때가 있다. 자막을 내보내는 이는 그걸 아시는 거고 배우와 청취자는 그냥 무심한 거다.


"정말 좋다. 무척 좋다."

"애기곰은 정말 귀여워."


이렇게 바꾸어 쓰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바꾸어 쓰면 너무 좋겠다." 괜찮은가요?


출처 : 문례헌서울사대국어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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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이 없다.

당당하다.

꽃대에 에너지가 넘친다.

붉은 꽃이 아니어도 시선을 집중 시킨다.


하나의 표현에서

무엇이 가벼운 그림이고

어찌해야 무거운 그림인가.


꽉 차 있는 공간과 화면은

소극적이지도 않다.








출처 : yemardan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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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례헌서울사대국어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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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婦孺人晉州蘇氏之墓

孝婦蘇氏甫, 踰筓歸金永允, 越五年戊辰十二月五日庚申, 急痞而歿, 得年二十一. 其舅碧湖金肯鉉甚悼惜之, 不欲其同於凡墳而謀所以表之者, 石旣具, 請於余曰,

新婦性溫靜, 語言有度, 步履以正, 一言蔽之曰不凢(=). 善事我, 而宜家人, 閨門之內, 和氣藹然. 雖婢背有大過, 止曰汝何失常度而已, 不出惡言以詈, 亦不言畜生. 此文饒之所難. 吾嘗患痢, 一晝夜十餘上厠, 夜則新婦伺吾起, 如持燭立圖外容, 光以照內, 盖慮登降跧躓也? 病且滿三月, 食性全失, 如嚼絮. , 新婦雪裏採菜, 菜蔬魚肉, 一案十數合, 亦冀吾隨合下箸, 以或有可口者, 未嘗有一日間. 古語云, ‘孝則生福.’, 心中期以唐夫人緣. 吾祗簿失此賢哲, 痛矣乎哉!"

余曰, ‘夫子以人不問其父母昆弟, 稱閔子之孝, 今於孝婦, 孰能問其舅之言? 孝旣如此, 而天且無育, 誰尢尢(=)眞宰乎?’

蘇氏晉州著姓, 父禹永, 祖前度支部主事錫斗, 大提學陽谷諱世讓后. 永允光山大姓, 黃龍湖又名家, 序次世德實行.

系以銘曰,

嗟哉孝婦! 天性芳玆! 胡秀不實, 長令舅悲? 至行難泯, 石以揭辭! 戒爾樵牧, 無或近之!

 

歲庚午 正月 下休

濯新 金漢穆 撰

少石 奇東衍 書

 

효부 유인 진주 소씨의 묘

효부 소씨는 16세에 김영윤에게 시집와서 5년이 지난 무진1928125일 경신에 갑자기 배앓이를 하다가 죽으니 나이 21세였다. 그녀의 시아버지 벽호 김긍현이 이를 매우 슬퍼해서, 여느 무덤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아 비석까지 이미 갖춰놓고서 나에게 청하며 말했다.

새 며느리는 성정이 따뜻하고 조용하며 말에 법도가 있고 걸음걸이도 단정했으니, 한 마디로 말해서 평범하지 않았다. 나를 잘 섬겼고 집사람과도 화목하여 안채에는 화기가 넘쳐흘렀다. 비록 여종이 뒤에서 크게 잘못된 행동거지를 해도, 단지 너는 어찌하여 상도를 잃었느냐?’라고 할 뿐이지 악한 말로 꾸짖지 않았으며, 또한 짐승처럼 취급하여 말하지도 않았다. 이는 글을 넉넉하게 읽은 이도 하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일찍이 이질에 걸려 하루 밤낮을 십여 차례나 뒷간에 올라갔는데, 밤이면 새 며느리는 내가 일어나는 것을 살피다가 촛불을 들고 서서 밖에서 불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해서 안을 비추고 있었는데 아마도 오르내리다 넘어질 것을 염려해서였다. 병세가 꼭 석 달이나 가서 식성을 모두 잃어 마치 솜을 씹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새 며느리가 눈 속에서 나물을 뜯어다가 채소와 어육을 한 밥상에 십 수 그릇이나 차려서, 접시에 따라 젓가락이 가기를 바라고서는 구미에 혹 맞는 것이 있으면 일찍이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옛 말에 이르기를 효도하면 복이 생겨난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저 사람과의 인연을 크게 하려고 기약을 했더니 내가 복이 없어 이런 현철을 잃었으니 아프고도 아프도다.”

나는 말한다. 부자께서는 남들이 그(閔子)의 부모와 형제들이 하는 말을 따지지 않았기에 민자(閔子)의 효를 칭송하셨는데, 지금 효부를 칭찬하는 그 시아버지의 말을 누가 따질 수 있겠는가? 효행이 이미 이와 같았는데도, 하늘이 장차 돌보지 않았는데 누가 조물주를 탓하고 탓하랴?

소씨는 진주의 저명한 성씨로 아버지는 우영이요, 할아버지는 이전 탁지부 주사 석두로 대제학을 지낸 양곡 휘 세양의 후예이다. 영윤은 광산인으로 황룡호의 명가인데 차례로 대를 이어 아름다운 덕을 실행하였다.

이어 명하여 왈,

아아! 효성스런 며느리여! 타고난 성품이 아름답도다! 어찌 꽃만 피우고 열매를 맺지 못하여 두고두고 시아버지를 슬프게 하는가? 지극한 효행 잊기 어려워 돌에 사연을 새겨 너희 초동과 목동에게 경계하노니 혹여라도 묘비에 가까이 하지 마라!

경오1930년 정월 하순

탁신 김한목 짓고

소석 기동연 쓰다.

* 인곡 선생께서 번역을 도와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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