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學
- 壺谷詩話 29 2019.10.16
- 壺谷詩話 28 2019.10.15
- 91th Lecture of Hanyegibi Course 漢禮器碑講座 第91講 2019.10.14
- 壺谷詩話 27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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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壺谷詩話 26 2019.10.09
- 壺谷詩話 25 2019.10.09
- 壺谷詩話 24 2019.10.05
壺谷詩話 29
壺谷詩話 28
28) 李石樓慶全之詩 豪放 或不循彀率 而如應呼 絕句最佳 如題畫鷹 曰 欲向畫中容一倩 世間狐兎太紛挐 題雪曰 三等土堦編白玉 帝堯會是儉中奢 乂鍾城守, 乘暮往辭 乞別詩 而時適擧烽 則口呼曰 門對終南管燧祠 北來消息最先知 知吾卷箔思君處 正是譙樓擊柝時 意甚新奇
석루 이경전의 시는 호방하다. 어떤 것은 형식에 억매이지 않고 부름에 응하는 것 같았는데 절구가 아주 좋다. 제화응,
그림 속의 매에게 한 번 빌리고자 하는 것은
세간의 여우나 토끼가 너무 설치고 다녀서지.
제설,
세 계단 흙섬돌에 백옥이 깔리니
요임금이 검소한 가운데 사치한 듯.
같은 시다. 또 종성의 유수가 저녁을 틈타 하직하러 가서 이별시를 지어달라 했는데 마침 봉화를 올리고 있었다. 곧 입으로 부르기를,
문은 종남산의 봉수대를 대하고 있어
북에서 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아네.
내 발을 걷고 그대를 생각하는 곳은
바로 성문 누대에서 딱따기를 치던 때네.
시의 뜻이 아주 새롭고 기이하다.
91th Lecture of Hanyegibi Course 漢禮器碑講座 第91講
宙집주 季끝계 將장수장 千즈믄천 御임금어 史역사사 魯둔할로 孔구멍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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壺谷詩話 27
27) 昏朝時 號為能詩者 不過柳夢寅 許筠 朴鼎吉數人而已 柳文固奇 而詩不如文 筠才固不可及 而詩格亦不至甚高 下於兄姊 宮詞 百首 可謂奇妙 而韻響則未盡合於本體 鼎吉則 哀金應河 絕 壓卷 而此外別無可稱者 至若朴燁則不是作者 而如歌低琴苦別離難等句 近於絕調 或云 得詩魔云 然百體俱備 妙解旁通 雖盛代 無出筠右者
광해군 때 시에 능하다고 할 만한 이는 유몽인 허균 박정길 등 두어 사람에 불과했다. 유의 글은 정말 기묘했으나 시는 문 같지는 않았다. 허균의 재주는 정말 미칠 수 없으나 시의 격조 역시 지극히 높지는 못하여 형이나 누나의 아래였다. 궁사 백 편은 기묘하다고 할 만하나 운향은 본체에 합당하지는 않으며, 정길의 애김응하라는 절구는 압권이지만 이외에는 칭송할 만한 것이 없다. 박엽 같은 이에 이르면 이 시인은 아니나 가저금고별이난 등 같은 구절은 절조에 가까워 어떤 이는 시마를 얻은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온갖 체를 두루 갖추었고 시를 이해하여 두루 통하기로는 비록 융성한 시대라 하더라도 허균보다 윗자리에 나아갈 이는 없다.
90th Lecture of Hanyegibi Course 漢禮器碑講座 第90講
90th Lecture of Hanyegibi Course 漢禮器碑講座 第90講.hwp
趙나라조 煇빛날휘 彦선비언 臺돈대대 郞사내랑 中가운데중 魯둔할로 孔구멍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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壺谷詩話 26
26) 東岳恩怨甚明 常以月沙為知己 而甲子繫獄時 月沙判金吾 多有救解於爰書 而猶憾其不盡力也 到謫所 寄一律 其一聯曰 退之不負裵丞相 白也難逢郭令公 用事甚精切
동악은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었는데 항상 월사를 지기로 여겼다. 그러나 갑자계옥 때에는 월삭 판금오로서 조서에서 그를 구하려고 애를 많이 썼으나 그가 힘을 다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섭섭해 했다. 적소에 이르러서 율시 한 수를 보냈는데 그 한 연.
퇴지는 배승상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백야는 곽령공을 만나기도 어렵구나.
용사가 아주 정밀하면서도 적절하다.
壺谷詩話 25
25) 月沙辭遞儐任(或云許筠不參從嗾臺欲論云) 五峯代之 顧使亢甚 見儐詩若無見 時或抹改 到百祥樓 因東岳 崔顥題詩黃鶴樓 一律 始蒙許可 伊時 免辱國 賴有此耳 有如許之才 而終不借金鑾一步地 使之徊徨於州郡 昏朝則不足言 窃為淸時惜之
월사가 접반사에서 체직되고 오봉이 대신했다. 고천사가 아주 심해서 접반사의 시를 보고서도 못본 척하고는 때로는 혹 뭉개어 고치기도 했다. 백상루에 이르러 동악의,
최호가 황학루에서 시를 지었네.
라는 율시 한 수에 비로소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때 우리나라가 모욕을 면한 것은 이 시가 있어서였다. 이러한 재주를 가지고서도 끝내 한림원에 한 발자국도 내디디지 못하고 고을로 방황하게 했으니 광해군 때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맑은 때가 되어서도 남몰래 애석히 여기노라.
壺谷詩話 24
24) 我朝之有權李 如唐之李杜 明之滄弇 而李之慕權 乂如子美之於太白 元美之於于鱗 少時 作詩 不就正于權 則不敢示人 及聞枉死 作詩一聯曰 浩蕩神農藥 蕭條大禹謨 乂過東城殞命處 有吟曰 行過郭東花落處 故人詩骨至今悲 可謂一字一淚
우리나라의 권과 이는 당의 이와 두와 같고 명의 창과 엄 같아서 이가 권을 흠모하는 것이 또 자미가 태백을 흠모하던 것과, 원미가 우린을 흠모하던 것과 같다. 젊어서 시를 지을 때 권에게 나아가 바로잡지 않으면 감히 남에게 보이지를 않았다. 권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지은 한 연의 시.
호탕하기는 신농씨의 약이고
쓸쓸하기로는 대우의 계책이라네.
또 운명한 동쪽 성문을 지나며 읊음 시.
성의 동쪽 꽃이 지던 곳을 지나노라니
고인의 시혼이 지금도 서럽도다.
한 자 마다 눈물 한 번씩 흘릴 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