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李唐諸子作詩 用盡一生心力 故能名世傳後 如吟安數箇字 撚斷幾莖髭 吟成五字句 用破一生心 兩句三年得 一吟雙淚流 欲識吟詩苦 秋霜若在心 又夜吟曉不休 苦吟鬼神愁 如何不自閑 心與身為仇之類 是也 余亦有此癖 欲捨未能 戲吟一絕曰 為人性癖最耽詩 詩到吟時下字疑 終至不疑方快意 一生辛苦有誰知 噫 唯知者 可與話此境 今人以淺學率爾成章 便欲作驚人語 不亦踈哉

 

이씨의 당나라 여러 시인들은 시를 짓는데 일생 마음과 힘을 다 쏟아부었다. 그래서 이름을 날려 후세에 전할 수 있었다.

 

두어 자 읊고 즐기느라

몇 가닥 수염 꼬아 다 빠졌네.

 

다섯 자 시구 이뤄 읊느라

한평생 마을 다 써 버렸네.

 

삼 년만에 시구 둘 얻고서는

한 번 읊조리니 두 눈에 눈물 주르르.

 

시 읊조리기 괴롬 알고프면

가을 서리가 가슴 속에 있는 것 같다네.

 

,

 

밤새 읊조리느라 새벽에도 쉬지 못하고

괴로이 읊조리니 귀신도 걱정하네.

어찌해서 스스로 한가롭지 못하나

마음과 몸이 원수가 되었네.

 

라는 부류의 시구가 이것이다. 나 역시 이런 버릇이 있어 버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장난삼아 절구 한 수를 읊조렸다.

 

내 시를 탐하는 버릇이 첫째인데도

시 읊조릴 때 글자 쓰기를 주저했다네.

끝내 주저하지 않아야만 마음속이 시원했는데

한평생의 이 괴롬을 누가 알아나 줄까.

 

, 오직 아는 이만이 이런 경지를 말할 수 있는데, 이제 사람들은 얕은 학문으로 마구 문장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시를 짓고자 하니 이 또한 엉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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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th Lecture of Hanyegibi Course 漢禮器碑講座 第83講.hwp


역사사 성설 염려할우 아름다울소 일어날흥 벼슬공 성설 활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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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詩人意思 或有暗合 未甞得一聯 花色艷於官妓艷 溪光淸似使君淸 後閱唐人詩集 有秋水淨於僧眼碧 晚山濃似佛頭靑之句 其韻格雖有工拙 而句法則同

 

시인들의 의도와 생각은 간혹 은연 중에 맞아떨어지는 수가 있다. 내가 일찍이 시 한 연을 얻었는데,

 

꽃이 아름다움은 관기보다 곱고

시내가 맑음은 그대와 비슷하도다.

 

후에 당나라 사람의 시집을 열람해 보니,

 

가을 물 맑기가 스님 눈보다 푸르고

석양 짙은 산빛은 푸른 부처 머리 같도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 운격이 비록 공교롭고 그렇지 못한 차이는 있으나 구법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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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東崖金建中 甞携余遊於其漢江亭榭 時晚洲洪元九與久堂朴仲久 竝轡而來 至酒酣 泛舟 仍與賦詩 仲久謂余曰 昔謝逸蝴蝶詩曰 狂隨柳絮有時見 舞人梨花何處尋 人呼為謝蝴蝶 趙嘏秋夕詩曰 殘星數點鴈橫塞 長笛一聲人倚樓 時稱趙倚樓 鄭谷鷓鴣詩曰 雨昏靑草湖邊過 花落黃陵廟裡啼 人謂躑鷓鴣子之 吟病老僧秋閉殿 覔詩孤客夜登樓之句 可號金老僧 又謂元九曰 子之似惜落花春鳥語 解分長日午鷄鳴之句 亦可稱洪午鷄 建中顧左右曰 仲久可謂知詩善評 子公貌類老僧 宜得其號 元九晝亦執鷄 實符此名 子公卽余之字 而余頭童髯脫 故以僧戲之 且俗語 以狎婢為種雞執 元九素有此癖 故云 相與鼓掌而笑

 

동애 김건중이 일찍이 나를 데리고 그 한강정사에 유람할 때 만주 홍원구와 구당 박중구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왔다. 술기운이 거나해지자 배를 띄우고 함께 시를 지었다. 중구가 내게. “옛날 사일의 호접시에,

 

미친 기운 버들개지 따라 나타나고

배꽃 속에 춤추는 이 어디서 찾을까.

 

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람들이 사호접이라고 불렀고, 조호의 추석시에,

 

넘어가는 희미한 별빛 속 변방 하늘에 기러기 비껴 날고

긴 피리 한 소리에 사람들은 누대에 기대섰네.

 

라는 구절이 있어서, 사람들이 조의루라고 불렀고, 정곡의 자고시에,

 

비내리는 석양녘 푸른 풀 돋은 호수가 지나더니

지는 꽃 속 황릉 묘당 안에서 새가 우네.

 

라는 구절이 있어 사람들이 정자고라고 불렀으니, 그대도

 

아파 신음하는 노승은 가을 절간 문을 닫고

시구 찾는 한 나그네 밤중에 누대 오르네.

 

라는 구절이 있으니, 김노승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했다. 또 중구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지는 꽃 아쉽다는 듯 봄 새 지저귀고

긴 봄날을 나누려고 낮닭이 우네.

 

라는 구절 역시 홍오계라 부를 만하다고 했다. 건중이 좌우를 돌아보며, “중구는 시를 알고 평을 잘한다고 할 만하고, 자공은 모습이 노승과 유사하니 마땅히 그렇게 부를 만하고, 원구는 낮에 역시 닭을 잡으니 정말 이 이름이 알맞겠다.“고 했다. 자공은 곧 내 자이어서, 내 머리가 아이처럼 다 빠져서 중이라고 나를 놀린 것이다. 또 속어에 계집종을 놀리는 말로 종계집이라 하는데 원구는 본디 이런 버릇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서로 함께 손뼉을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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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知詩者 以詩取人 不知詩者 以名取詩 余少也 名稱未著 雖有佳作 人不為貴 及得詩聲 雖非警語 輒皆稱誦 良可笑也 余於丙子亂中 有 晝常聞野哭 夢亦避胡兵之句 澤堂咏歎 謂余曰 君詩極有杜格 讀杜幾許耶 有文章局量 須勉之 時余方讀杜詩 若澤堂可謂有明鑑也 彼不知詩者 譽之不足喜也 毁之不足怒也

 

시를 아는 이는 시로써 사람을 취하고 시를 아지 못하는 이는 이름으로써 시를 취한다. 내 어려서 아직 이름이 나지 않았을 때는 비록 아주 뛰어난 작품이 있어도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다가 시로써 명성을 얻고 나서는 비록 뛰어난 시가 아니어도 갑자기 모두 칭송하니 정말 가소롭다. 내가 병자호란 중에,

 

낮에도 항상 들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고

꿈에서도 오랑캐 병사를 피해 다녔노라.

 

라는 구절을 지었는데 택당이 읊조리고는 탄식하며 내게 말하기를, “그대의 시는 두보의 시격에 잘 맞는데 두보의 시를 몇 번이나 읽었는가? 문장을 잘 할 국량이 있으니 모름지기 열심히 하게나.”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막 두시를 읽는 참이었으니 택당 같은 이는 감식안이 있다고 할 만하다. 저들 시를 아지 못하는 이들이 칭찬을 한다고 기뻐할 일이 못 되며 헐뜯는다고 해도 화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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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唐岑參毎作一篇 人人傳寫 雖戎狄蠻貊 無不吟誦 李益毎一篇成 天下皆被之絃歌 施之圖畫 二子之詩 何令人景慕至此哉 今之世 雖有出類之作 人無篤好者 豈今與古異 而不遇賞音者耶 余甞於龍湖亭榭 有一絕云 古木寒雲裡 秋山白雨邊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人皆傳誦 余之平日所作勝於此者 多矣 而此詩最得膾炙 豈詩亦有遇不遇者耶 孝廟甞使畫工繪禁屛也 書下此詩 命模進此詩之景 噫 拙句非有聲之畫 而猥蒙睿覽 至被繪畫 實曠世之盛事也

 

당의 잠삼은 매번 한 편의 시를 지으면 사람들이 전해가며 베꼈고 비록 사방의 오랑캐라도 읊조리고 외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익은 매번 시를 한 편 완성하면 천하가 다 음악에 맞추어 노래부르고 그림으로 그렸다. 이 두 사람의 시가 어찌하여 사람들의 경모가 이에 이르게 했을까? 요즘 세상에는 비록 뛰어난 부류의 작품이 있어도 아주 좋아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예와 이제가 달라서인가?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해서인가? 내가 일찍이 용호전사에서 절구 한 수를 지었다.

 

고목은 차가운 구름 속에 있고

가을 산은 소나기 저편에 있네.

저물녘 강에는 물결이 이니

고기잡이는 후다닥 배 돌리네.

 

사람들이 모두 전하며 외웠는데 내가 평소에 지은 작품 중에는 이보다 나은 것이 많다. 그러나 이 시가 가장 많이 회자되었으니 아마 시 역시 때를 만나고 못 만남이 있는 것인가? 효종이 일찍이 화공에게 대궐의 병풍을 그리게 했는데 이 시를 써 주고서는 이 시의 경치를 그려 올리라 했다. , 내 이 시는 성가가 그림까지 그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외람되게도 임금의 눈에 들어 그림까지 그리게 되었으니 실로 온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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