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凡詩得於天機 自運造比〔化〕之功者 為上 此則世不多有 其次 學唐學宋者 各得其體則 俱有可取 至於近世 不無數三以詩稱者 而無論軆格之高下 能得詩家意趣者 絕少 奚暇更論唐與宋之近不近乎 世傳一詩曰 我生後彭祖 彭祖不如余 蜉蝣出我後 我生猶不如 往古不必羨 來短方有餘 此未知誰氏之作 而辭理俱到 有無限趣味 雖在唐宋之間 而若非自運造化者 安能〔及〕此 무릇 시란 천기를 얻어서 절로 조화의 공을 운행하는 것이 최고인데, 이는 세상에 흔하지가 않다. 그 다음은 당을 배우고 송을 배우는 것인데, 각기 그 체를 얻으면 다 취할 만한 것이 있다. 근세에 이르러 시로 칭송받은 이가 두어 사람 없는 것은 아니나 체격의 고하는 말할 것도 없고 기가의 의취를 얻었다고 할 만한 이조차 아주 드무니 어느 겨를에 다시 당송에 가깝다거나 그렇지 않은 것을 논할 것인가. 세상에 전하는 시 한 수. 나는 팽조보다 뒤에 살았으니 팽조도 나만 못하다네. 하루살이가 나보다 뒤에 나오면 내 생은 하루살이만 못하다네. 지나간 옛 것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니 올 것은 짧을지라도 남음이 있다네. 이는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사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어 무한한 맛이 없지 않다. 비록 당송 사이에 있더라도 절로 조화를 부리는 이가 아니고서는 어찌 이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漢文學
終南叢志 30
終南叢志 29
29) 朴仲久長遠文才早成 十二歲時 有父執壬子生者被謫 於別席 群丈命仲久作詩 仲久卽題曰 前後生同壬子年 去留心事此離筵 天無竟日雷霆怒 莫恨潮州路八千 仲久亦壬子生 人稱奇童 仲久甞以正言 製進月課 反哺鳥一絕曰 士有親在堂 貧無甘旨具 微禽亦動人 淚落林烏哺 仁廟覽之傳曰 此人父母生存乎 承旨回啓曰 此人只有偏母 傳曰 觀其絕句 誠孝非凡 一家忠孝 令人感嘆 風樹之比 古之所傷 令該曹優給米布 俾免不待之痛 此誠異數也 盖仲久外祖沈公 以前都正 年七十遇丁丑亂 隨廟社人江華 聞賊兵已渡甲串 索筆書遺疏 夫妻俱自縊而死 仲久上其疏 仁廟覽而嘉之 為旋其閭 故上敎以一家忠孝稱之 仲久號久堂 與余善焉
중구 박장원는 문재가 일찍 이루어졌는데, 열두 살 때 아버지 친구 중 임자생인 분이 귀양을 가게 되어 이별하는 자리에서 여러 어른들이 중구에게 시를 지으라 하니 즉석에서 지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임자년에 함께 태어나
이별하는 이 자리에 떠나는 이 남는 이의 심사
하늘은 종일토록 천둥만 치지는 않는 법
조주 팔천 리 길이 멀다 한하지 마오.
중구 역시 임자생이었다. 사람들이 기동이라 했다. 중구가 일찍이 정언으로서 월과를 지어 올렸는데 반포조 절구 한 수다.
선비의 어버이 집에 계시나
가난해서 맛있는 음식이 없네.
하찮은 날짐승이 사람을 감동시키니
숲속의 새 반포에 눈물 흘리노라.
인조께서 이를 보시고 전교하시기를, “이 사람의 부모가 생존해 계시는가?”라 하니, 승지가 회계하기를, “이 사람은 단지 어머니만 계십니다.”라 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이 절구를 보건대 진실로 효성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한 집안의 충효가 사람을 감탄케 하는구나. 바람과 나무에 비유한 것은 옛 사람들이 슬퍼한 바다. 해당 관청에 영을 내려 쌀과 배를 넉넉히 주어 모시지 못하는 고통을 면하게 하라.”하셨으니 이는 진실로 특별히 예우한 것이다. 중구의 외조부 심공은 전임 도정으로서 나이가 칠십에 정축년 난리를 만났는데, 종묘사직을 따라 강화도에 들어가다가 적병이 이미 갑곶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붓을 찾아 유소를 쓰고는 부부가 함께 목을 매어 죽었다. 중구가 그 소를 임금께 올리니 인조가 보시고 가상히 여기시어 그 마을에 정문을 세우고 그 때문에 임금이 교지를 내려 일가충효라 칭찬했다. 중구는 호를 구당이라 하고 나와 사이가 좋았다.
終南叢志 28
28) 洪叔鎭柱世 申季良最 俱以文鳴 建幟詞壇 洪詩曰 庭草階花照眼明 閑中心與境俱淸 門前盡日無車馬 獨有幽禽時一鳴 申詩曰 滿地梨花白雪香 東風無賴損柔芳 春愁漠漠深如海 栖燕雙飛繞畵樑 洪申相友善 才名亦相埒 余甞問於澤堂曰 洪申兩人之文 孰優 曰 叔鎭之文 若天然梅菊 季良之文 如彩畫牧丹 盖天然梅菊 眞性自持者也 彩畫牧丹 雕飾而成者也 惜乎 以二公之才 賈忌於時 終不能大展布 此非所謂文章憎命達者歟
숙진 홍주세와 계량 신최는 모두 글로 이름이 나서 시단에서 깃발을 세웠다. 홍의 시.
뜰의 풀 섬돌의 꽃 눈에 밝게 비치는데
한가로움 속에 마음과 경계 모두 밝도다.
문전에는 종일토록 거마도 없는데
다만 숨은 새 때때로 우네.
신의 시.
눈같이 흰 배꽃 땅에 가득 향기 솔솔
봄바람 심술궂게도 가냘한 꽃 망치네.
끝없는 봄 근심 바다인 양 깊고
깃든 제비 한 쌍 단청한 대들보에 날아드네.
홍과 신은 서로 벗으로 잘 지냈는데 재명도 역시 서로 대등했다. 내가 일찍이 택당에게, 홍과 신 두 사람의 글은 누가 더 나은가라고 물었더니, 택당이, 숙진의 글은 매화나 국화처럼 자연스럽고, 계량의 글은 채색한 모란과 같다라 했다. 대개 매화나 국화처럼 자연스럽다는 것은 참된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채색한 모란은 다듬어서 꾸몄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두 사람의 재주는 당시에 시샘을 받아 끝내 크게 퍼질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이것이 소위 문장이 현달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79th Lecture of Hanyegibi Course 漢禮器碑講座 第79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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甫클보 任맡길임 城재성 番차례번 君임금군 擧들거 任밑길임 城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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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南叢志 27
27) 姜叔久百〔栢〕年 金剛山道中詩曰 百里無人響 山深但鳥啼 逢僧問前路 僧去路還迷 世或傳 叔久甞以此作 誦告於東溟鄭君平 君平稱善 仍曰 但字改以山字 則尤佳 叔久歎服云 余意 此詩佳處 只在於但之一字 若改以山字 則一篇精神 都沒了 且但鳥啼三字 出自唐詩 君平豈點金成鐵耶 決知傳者妄耳 知此者 可與言詩 不知者 擯於談詩之席矣
숙구 강백년의 금강산도중 시.
백 리를 가도 인적은 없고
산은 깊어 산새 소리만 들리네.
스님 만나 길을 물었으나
스님 떠나자 여전히 길을 헤매네.
세상에 혹 전하기를, “숙구가 일찍이 이 시를 짓고는 동명 정군평에게 외어 알리니 군평이 좋다고 칭찬하고서는 곧, ‘단 자를 산 자로 고치면 더욱 좋겠다’고 하자 숙구가 탄복하며, 내 생각에는 이 시의 좋은 곳이 오직 단 자 한 자에 있는데 만약 산 자로 고치면 이 한 편의 정신은 모두 없어지고 만다.”라 했다 한다. 또 단조제 세 자는 당시에서 나왔는데 군평이 어찌 쇠를 달구어 금을 많들었으랴? 전하는 이들의 망년된 생각임을 확실히 알겠다. 이를 아는 이와는 함께 시를 말할 수 있지만, 이를 모르는 이는 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다.
終南叢志 26
26) 柳道三號紫霞翁 甞奉使北關 遍遊花酒塲 還到安邊釋王寺 賦一律曰 三千官路往來忙 到底繁華閱幾塲 卽此機心還寂寞 從前豪興太顚狂 晨鍾洗盡笙歌耳 晚茗淸開酒肉膓 暫借蒲團成一睡 滿山松籟夢中凉 脫洒繁華之境界 剩得淸閑之意趣 詩與神會 發語蕭爽 才格之不凡 可想矣
유도삼의 호는 자하옹인데 일찍이 함경도에 사신으로 가서 두루 여색과 술에 빠져 놀다가 돌아올 때 안변 석왕사에서 율시 한 수를 지었다.
삼천리 벼슬길 오가며 바쁜 중에도
도대체 번화가를 몇 번이나 들렀던고.
이곳에 이르고 보니 기심은 도리어 쓸쓸하니
예전의 호방한 흥취 너무 미친 짓.
새벽종소리 피리와 가락 듣던 귀 씻어 주고
해질녘 찻물, 고기와 술 마시던 창자 씻어 주네.
잠시 자리 빌려 한 잠 이루니
온 산의 소나무 소리 꿈속에서도 시원쿠나.
번화한 경계를 깨끗이 벗어나 맑고 한가한 의취를 한껏 얻었다. 시와 정신이 만나 시어가 상쾌하니 재주가 범상치 않음을 알 만하다.
終南叢志 25
25) 東溟鄭君平 登凌漢山城詩曰 山勢崚嶒地勢孤 眼前空濶九州無 樓看赤日東臨海 城到靑天北備胡 共賀使君兼大將 何勞一卒敵千夫 鯨〔鲵〕寂寞風濤穩, 朱雀門開醉酒徒 筆力壯健 人不可及 余甞問於東溟君平曰 子之詩 於古 可方何人 君平笑曰 李杜則不敢當矣 至於高岑輩 或可比肩 其淸心樓詩一絕 送客高樓秋夜闌 一 雙白鷺在前灘 酒酣起望蒼蒼色 月落江淸霜露寒 韻格高絕淸爽 若喚起太白 以余觀之 可出高岑之上
동명의 등능한산성시.
산세는 우뚝서고 지세는 외로운데
눈앞 드넓은 들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듯.
누에서 보노라니 붉은 해는 동해에서 뜨고
성은 하늘에 맛닿아 북녘 오랑캐 방비하네.
대장을 겸한 사또를 함께들 경하하고
졸개 하나가 천 명의 적을 대적한다네.
고래가 조용하니 파도도 잔잔
북쪽 문 열리자 술에 취한 무리들
필력이 장건하여 남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 내 일찍이 동명 군평에게, “그대의 시는 옛날 누구와 견줄 수 있소?” 하고 물으니, 군평이 웃으며, “이백과 두보는 감히 당할 수 없으나, 고적과 잠삼 들에 이르러서는 혹 견줄 수 있을까?”라 했다. 그의 청심루시 한 수.
나그네 전송하는 누대 깊은 가을 밤
백로 한 쌍이 앞 여울에 있네.
술기운 오른 푸르디푸른 강물을 보니
달은 지고 강은 맑은데 서리와 이슬은 차갑도다.
운격이 아주 높고 맑고도 시원하여 마치 이태백을 불러 일으킨 듯하다. 내 소견으로 보건대 고적이나 잠삼보다 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