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俗傳唐天使到東坡驛 戲題一句曰 東坡謫海南 胡為來此哉 促儐使足成之 時 李容齋為遠接使 卽題其下曰 散為百東坡 無乃一者來 天使見之 極歎賞 蓋百東坡之言 正自坡詩中出 用事親切 東詩亦有 搖波散作東坡百之句

 

세상에 전해오는, 중국 사신 당고가 동파역에 이르러 장난삼아 지은 한 구절.

 

동파는 해남으로 유배를 갔는데

어찌 이곳에 와 있을까.

 

그리고는 접반사에게 끝맺기를 재촉했다. 이때 이용재가 접반사였는데 즉시 이어서 지었다.

 

흩어져 동파가 백이나 되었으니

그 중 하나가 온 것이 아닌가.

 

중국 사신이 이를 보고서는 매우 감탄했다. 아마도 백동파라는 말은 바로 동파의 시에서 나온 것으로 용사가 딱 들어맞는다. 동파의 시에도, 물결이 일렁이자 동파가 백이 되었네라는 구절이 있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10  (0) 2020.01.04
玄湖瑣談 9  (0) 2020.01.03
玄湖瑣談 7  (0) 2019.12.31
玄湖瑣談 6  (0) 2019.12.29
玄湖瑣談 5  (0) 2019.12.28

7) 申企齋光漢 以詩名世 尤工七絕 甞過金參判世弼舊居 感作一絕曰 當時逐客幾人存 立馬東風獨斷魂 烟雨介山寒食路 不堪聞笛夕陽村 寄送成遯齋世昌 要和 遯齋以為 詩固淸絕 而其用介山為料者 特因寒食而寓言爾 豈眞有此等山名耶 試走一蒼頭探訪 則果有所謂介峴者 距金居百弓地 遯齋擊節曰 是果不可及矣 停不和 蓋詩家引事 雖非上乘 而精襯如申詩者 未易得也 遯齋稱賞 宜矣

 

기재 신광한은 시로써 세상에 이름이 났으며 칠언절구가 아주 공교로웠다. 일찍이 참판 김세필의 옛집을 지나면서 느낌을 쓴 절구 한 수.

 

당시에 쫓겨난 사람 중 몇이나 살아 있는가

봄바람에 말 세우고 홀로 애를 끊네.

안개비 내리는 개산 한식날 길에는

석양녘 마을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 차마 못 듣겠네.

 

둔재 성세창에게 붙여 보내고는 화답을 요청했는데 둔재는, 시가 참으로 맑고도 빼어나지만 그가 개산을 소재로 삼은 것은 다만 한식이기 때문이어서 빗댄 것이지 어찌 참으로 이런 유의 산 이름이 있겠는가라 했다. 시험삼아 노복 하나를 보내 봤더니 과연 소위 개현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는데 김의 거처에서 백궁은 떨어져 있었다. 둔재가 무릎을 치며, 이는 정말 미칠 수가 없는 것이다라 하고는 그만두고 화답하지 않았다. 대개 시인들의 용사는 비록 최고의 경지는 아니나 신의 시처럼 교묘하게 들어맞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둔재가 칭찬한 것도 마땅하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9  (0) 2020.01.03
玄湖瑣談 8  (0) 2020.01.01
玄湖瑣談 6  (0) 2019.12.29
玄湖瑣談 5  (0) 2019.12.28
玄湖瑣談 4  (0) 2019.12.27

6) 華使唐皐之來 容齋為儐相 湖陰鄭士龍 退休堂蘇世讓 安分堂李希輔 為從事 華使絕不吟咏 到安州 始次板上韻 兩聯云 佳句偶來樓上見 旅懷秪向客邊傷 龍飛有詔頒高麗 鳳去何人歎楚狂 華使以示儐伴諸公 安分易之 頗摘疵病 退休以為 句語深厚 必是大手 湖陰亦以為然 容齋曰 麗字音尼 恐失平仄 退休曰 不然 高麗之名 本取山高水麗之義 中國人雖作尼音 我國則猶從仄音 華作必因是也 容齋然之 自此以後 酬唱不絕 華作愈出愈好 容齋乃歎曰 天才也 華使亦推容齋為騷壇老將 戒副使 切勿浪作云

 

중국 사신 당고가 왔을 때 용재가 접반사가 되고 호음 정사룡 퇴휴당 소세양 안분당 이희보가 종사관이 되었는데, 중국 사신이 절대로 시를 읊노리지 않다가 안주에 이르러 비로소 시판의 운을 차운해서 두 연을 지었다.

 

빼어난 시구를 어쩌다 누대에서 보니

나그네의 심회를 더욱 아프게 하네.

전자의 조칙을 고려에 내리시지만

봉황이 떠나니 어느 뉘 초광을 탄식하리.

 

중국 사신이 접반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니, 안분이 쉽게 보고 자못 병통을 지적하였고, 퇴휴는 어구가 심후해서 틀림없이 대가일 거라 여겼고, 호음 역시 그렇게 여겼다. 용재가, 여자는 음이 니이므로 평측을 잃을까 싶다고 하니. 퇴휴가, 그렇지 않다. 고려라는 이름은 본래 산고수려의 뜻에서 취한 것이니 중국인들이 비록 니음으로 시를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측음을 따르니 중국 사신의 시도 틀림없이 이 때문일 것이다라 했고 용재도 그러했다. 이후부터 수창이 끊이지를 않았는데 중국 사신의 작품은 나올수록 더 좋았다. 용재가 이에 탄복하며 천재라 했다. 중국 사신도 용재를 칭찬하며 소단의 노장이라 했고 부사에 경계하기를 절대로 섣불리 시를 짓지 말라고 했다 한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8  (0) 2020.01.01
玄湖瑣談 7  (0) 2019.12.31
玄湖瑣談 5  (0) 2019.12.28
玄湖瑣談 4  (0) 2019.12.27
玄湖瑣談 3  (0) 2019.12.26

5) 華使之來 容齋為儐相 湖陰諸公為從事 及其還也 諸公以詩送之 長篇傑句 郁燁璀璨 而華使皆不許可 獨容齋絕句 明月莫須出 天風休更吹 月出有驚鳥 風吹無定枝 華使稱賞不已 湖陰竊怪之 及還朝 沈誦此句數月 然後始知其妙 盖臨別時 觸物易感 彼月出而鳥驚 風吹而枝動 俱可以助離懷 有言外之意 華使之獎 蓋以此也

 

중국 사신이 오자 용재가 접반사가 되고 호음과 여러 사람이 종사관이 되었는데 그가 돌아갈 때 여러 사람이 시로써 그를 전송했는데 장편 걸구가 빛나고 아름다웠으나 중국 사신은 하나도 좋다 하지 않았다. 유독 용재의 절구,

 

밝은 달은 반드시 뜰 것 없고

바람아 다시는 불지도 마라.

달이 뜨면 새가 놀라게 되고

바람이 불면 고요한 가지도 없으니.

 

만을 중국 사신이 칭찬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호음이 은근히 이상해했다. 조정에 돌아와 이 구절을 깊이 암송하기를 두세 달 하고 나서야 그 묘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대개 헤어질 때는 접촉하는 사물마다 쉬 감상에 빠지게 한다. 저 달이 떠서 새가 놀라고, 바람이 불어서 가지가 흔들리는 것들은 다 이별의 정회를 돕는 것들이라서 말 밖에 뜻이 있다. 중국 사신이 칭찬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7  (0) 2019.12.31
玄湖瑣談 6  (0) 2019.12.29
玄湖瑣談 4  (0) 2019.12.27
玄湖瑣談 3  (0) 2019.12.26
玄湖瑣談 2  (0) 2019.12.24

4) 沈貞作己卯士禍 後出居逍遙亭 作題咏 釘板于壁上 其一聯曰 靑春扶社稯 白首臥江湖 一日夜 有俠少 持劍 開戶而入 捽貞髮 數之曰 汝作士禍 善類殆盡 宗社幾覆 汝何敢以 扶社稯 臥江湖 等語 作詩懸板乎 汝若不亟改 扶 臥 兩字 ,吾當斬汝 貞顫伏謝曰 當如敎扶字改以危臥字改以蟄何如 俠少曰 否 然則當改何字耶 願敎之 俠少曰 扶字改以傾臥字改以汚宜矣 貞只曰 唯命是從 其四代孫 逍遙亭感古詩 一聯曰 舊恨波難洗 新愁酒欲春 盖追其先愆 有無限歎嘅底意 句亦淸新可喜

 

심정은 기묘사화를 일으켰고 뒤에는 소요정에 나가 살면서 제영을 짓고 벽에다 쇠 시판을 박았는데 그 한 연.

 

젊었을 때는 사직을 지탱하고

머리 허열 때는 강호에 누웠네.

 

어느 날 밤 어떤 젊은 협객 하나가 칼을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심정의 머리카락을 잡아쥐고는, 너는 사화를 일으켜 착한 이들을 다 없애서 종묘사직이 뒤집어질 지경인데, 너는 어찌 감히 부사직이라 하고 강호에 누웠다 등의 말로 시를 지어 시판을 내걸 수 있느냐? 네가 빨리 부와 와 두 자를 고치지 않으면 내 마땅히 너를 참하고 말겠다고 따졌다. 심정이 꿇어 엎드려 사죄하면서, 당연히 시키는 대로 부자를 위자로 고치고 와자를 칩자로 고치면 어떻겠습니까라 했다. 젊은 협객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자로 고쳐야 하겠습니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라 하자, 젊은 협객은, 부자는 경으로, 와자는 오자로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라 했다. 심정은 다만 명대로 따를 뿐입니다라 했다. 그의 사대손 소요정감고시 한 연.

 

옛 한은 물결로도 씻어내기 어렵고

새로운 시름 술 마시자 녹네.

 

아마도 그 선조의 잘못을 더듬어 보고서는 무한히 개탄하는 뜻이 깔려있고 글귀도 청신하여 좋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6  (0) 2019.12.29
玄湖瑣談 5  (0) 2019.12.28
玄湖瑣談 3  (0) 2019.12.26
玄湖瑣談 2  (0) 2019.12.24
玄湖瑣談 1  (0) 2019.12.17

3) 麥秀歌出於欲泣 為近婦人 而古詩所謂悲歌可以當泣者 此也 李白詩 平生不下淚 於此泣無窮 李義山詩 三年已制思鄉淚 更入東風恐不禁 黃山谷詩 西風壯夫淚 多為程顥滴 元人牛繼志 卽牧隱榜元也 牧隱東還也 牛繼志贈詩曰 我有丈夫淚 泣之不落三十年 今日離亭畔 為君一灑春風前 率相蹈襲 而句法漸下 我朝鄭士龍詩 向來制淚吾差熟 今日當筵自不禁 亦祖義山者也

 

맥수가는 흐느끼고 싶은 데서 나온 것이어서 부인들이 지은 것에 가깝다. 그러나 고시에서 슬피 노래해서 당연히 울어야지라고 하는 것이 이른바 이것이다. 이백의 시.

 

평생 눈물 한 방울 아니 흘리더니

이곳에서 끝도 없이 흐느끼네.

 

이의산의 시.

 

고향 그리는 눈물 이미 세 해나 참았는데

다시 봄바람 불어오니 참을 수 없을 것 같네.

 

황산곡의 시.

 

가을바람에 장부가 흘리는 눈물은

정호를 위한 눈물이 많다네.

 

원 나라 우계지는 목은의 장원급제자인데 목은이 우리 나라로 돌아올 때 그가 써 준 시.

 

내게도 장부의 눈물이 있었으나

삼십 년이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네.

오늘 정자 곁에서 이별하며

그대 위해 봄바람 앞에서 한 번 뿌리네.

 

서로 답습했으나 구법이 점점 낮아졌다. 우리나라 정사룡의 시.

 

지금까지는 눈물 참는 일 나도 익숙했는데

오늘 이 잔치에서는 절로 참을 수가 없네.

 

역시 의산의 시를 본받은 것이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5  (0) 2019.12.28
玄湖瑣談 4  (0) 2019.12.27
玄湖瑣談 2  (0) 2019.12.24
玄湖瑣談 1  (0) 2019.12.17
壺谷詩話 65  (0) 2019.12.13

2) 自古詩家 以題咏為難 非作句難 難其相稱也 樹影中流見 鍾聲兩岸聞 為金山寺之名句 樓觀滄海日 門對浙江潮 為靈隱寺之絕唱 盖趣與境會 寫出眞景也 金黃元 浮碧樓詩云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徐四佳甞歇看 然登斯樓 咏斯作 則始覺其模寫如畫 鄭松江 統軍亭詩 我欲過江去 直登松鶻山 西招華表鶴 相與戱雲間 這二句 未甞道得統軍亭一語 而世以為古今絕作 何也 盖是亭也 遠臨遼碣 氣像嚝邈 松翁乃托興於意象之表 趣格飄逸 與玆亭相侔也

 

예로부터 시인들은 제영을 어렵게 여겼는데 구절을 짓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서로 부합시키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나무 그림자는 강물 속에 보이고

쇠북종소리 양안에 들리네.

 

금산사의 유명한 시구로 여긴다.

 

누각은 푸른 바다에 솟아오르는 해를 보고

문은 절강의 파도를 마주하고 출렁이네.

 

영은사의 절창이다. 대개는 의취와 경관이 부합되어야 진경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김황원의 부벽루시.

 

길고긴 성 한 쪽에는 강물이 넘실넘실

크고큰 들판 동쪽 끝에는 점점이 산이로다.

 

서사가는 일찍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아넘겼으나 이 누각에 올라가서 이 작품을 읊조려 보고는 비로소 그가 모사한 것이 그림 같다는 것을 알았노라고 했다. 정송강의 통군정시.

 

내 강을 건너가서는

곧바로 송골산에 오르고저.

서쪽 화표학을 불러들여

서로 함께 구름 속에서 놀과저.

 

이 두 구절은 통군정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세상에서는 고금의 절작이라고들 하는데 왤까? 아마도 이 정자가 멀리 요동과 갈문에 닿아 있어서 기상이 넓고도 먼데 송강이 의상의 겉에 흥취를 의탁해서 취격이 표일해져 이 정자와 서로 짝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4  (0) 2019.12.27
玄湖瑣談 3  (0) 2019.12.26
玄湖瑣談 1  (0) 2019.12.17
壺谷詩話 65  (0) 2019.12.13
壺谷詩話 64  (0) 2019.12.12

玄湖瑣談

任璟

 

1) 驢背春眠穩 靑山夢裡行 覺來知雨過 溪水有新聲 此一絕未知誰作 而世稱絕佳 余以為不然 雨過而有水聲 則雨之暴也 遇暴雨而不覺 猶作驢背之夢 語不近理 唐人詩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 趣眞而語得 自成韻格 詩當如此矣 大抵泥於意趣 墬失格律 詩家之禁 而專務格律 失其意趣 尤不可也 趣屬乎理 格屬乎氣 理為之主 氣為之使 從容乎禮法之塲 開元之際 其庶幾乎此 宋人滯於理 明人拘於氣 雖有淸濁虛實之分 而均之有失也 評者曰 開元之詩 雍容君子 端委廟堂也 宋人之詩 委巷腐儒 擎跽曲拳也 明人之詩 少年俠客 馳馬章臺也 亦可謂善喩也

 

나귀 등에서 편안히 봄잠 들어

꿈속에서 푸른 산 속에 노니네.

깨어나서야 비 지난 줄 알고 보니

시냇물 소리 새롭게 들려오네.

 

이 절구 한 수는 누구 작품인지 아지 못하나 세상에서는 빼어난 작품이라고들 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비가 지나서 물소리가 있으려면 비가 세차게 쏟아져야 한다. 폭우를 만나고서도 깨지 않고 오히려 나귀 등에서 편안히 꿈을 꾸었다고 쓴 것은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당나라 사람의 시,

 

봄잠에 빠져 날 새는 줄 몰랐더니

곳곳에 새소리 들려오네.

 

는 사실에서 취해 시어를 얻어서 저절로 운격이 이루어진 것으로 시는 마땅이 이와 같아야 한다. 대저 의취에 빠져 격률을 잃는 것은 시가의 금기지만, 오로지 격률에만 힘써 의취를 잃어버리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의취는 이에 속하고 격률은 기에 속하니, 이가 주가 되고 기가 부림을 당하게 되면 예법의 장에 딱 들어맞을 것이다. 개원 시절에는 이에 가까웠으나, 송나라 사람들은 이에 빠졌고 명나라 사람들은 기에 얽매었다. 비록 청탁 허실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결함이 있다. 평자는, 개원의 시는 점잖은 군자가 묘당에 단정히 앉은 모양새고, 송인의 시는 길거리의 썩은 선비가 꿇어앉아 두 손을 모은 모양새고, 명인의 시는 소년협객이 장대에서 말을 달리는 모양새라고 했는데 역시 비유를 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漢文學 > 詩話叢林'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玄湖瑣談 3  (0) 2019.12.26
玄湖瑣談 2  (0) 2019.12.24
壺谷詩話 65  (0) 2019.12.13
壺谷詩話 64  (0) 2019.12.12
壺谷詩話 63  (0) 2019.12.11

+ Recent posts